엄마아빠는 아침 일찍 읍내로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델핀과 마리네트에게 말했다.
\"밤에나 올 거다. 얌전히들 놀고 절대 집 밖으로 멀리 가지 마라. 마당이든 뒤꼍이든 꽃밭이든 다 괜찮지만 저 큰길은 건너지마. 혹시라도 저 길을 건넜다간, 각오해!\"
엄마아빠는 아이들에게 눈을 부릅뜨며 다짐을 받으려 했다.
\"걱정 마세요, 건너가지 않겠어요.\"
\"어디 보자구, 어디 봐!\"
엄마아빠는 투덜거렸다. 그리고 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둘러 길을 나서며 미심쩍은 눈으로 아이들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아빠의 말을 염두에 두었지만, 마당 안에서 놀기 시작하더니 금세 잊어버렸다. 아침 아홉시경, 어쩌다 보니 둘은 큰길에 나와 있었다. 언니도 동생도 길을 건널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리네트가 건너편의 밭을 거니는 하얀 아기염소를 발견했다. 델핀이 미처 잡을 겨를도 없이 척, 척, 척, 길을 건넌 마리네트는 이미 아기염소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안녕.\"
마리네트가 인사했다.
\"안녕, 안녕.\"
염소가 연방 걸어가며 대답했다.
\"빨리도 걷는구나. 어디 가니?\"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에 가. 놀 시간 없어.\"
아기염소가 말하고 밭 속으로 쑥 들어가자 키 큰 호밀대가 스르르 닫혔다. 마리네트와 그 곁으로 달려온 델핀은 멍하니 서 있었다. 둘이 막 길을 다시 건너려 할 때쯤, 오심 미터 앞에 보송보송한 노란 털을 채 벗지 못한 아기오리 두 마리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 누에 띄었다.
\"안녕, 오리야.\"
아이들이 오리들 쪽으로 달려가 인사했다. 두 마리 아기오리는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다 배를 붙이고 엎드렸다. 쉬게 된 것이 싫지 않은 얼굴이었다.
\"안녕, 얘들아. 화창한 날씨지? 그치만 너무 더워! 내 동생은 벌써 아주 지쳤단다.\"
두 마리 중의 한 마리가 말했다. 아이들이 대답했다.
\"그건 그래. 그럼 아주 멀리서 오는 길이니?\"
\"그럴걸. 게다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단다.\"
\"아니, 어딜 가는데?\"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에 가. 이제 이렇게 쉬었으니, 가야지! 늦으면 안 되거든.\"
델핀과 마리네트는 설명을 부탁했으나, 오리들은 둘의 말을 듣지 못한 채 호밀밭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은 몹시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곧 엄마아빠가 길을 건너지 말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델핀이 동생에게 숲 근처의 풀밭에서 오락가락하는 하얀 반점을 가리켰다. 둘은 가까이 가서 확인해봐야 했다. 둘 앞에는 고양이 반만한 몸집의 아주 어리고 자그마한 하얀 강아지가 딴에는 부지런히 풀밭 속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선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비틀거렸다. 강아지가 걸음을 멈추고 두 아이들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에 가는 길이야. 하지만 제시간에 못 닿을 것 같다. 생각해봐! 점심 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요 쬐끄만 발로는 많이 갈 수도 없는 데다, 빨리 지친단다.\"
\"그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에서 뭘 할 건데?\"
\"설명해줄게. 나같이 엄마아빠가 없으면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에 가서 새 가족을 찾는 거야. 그렇지, 어제 들었는데, 작년 모임 땐 어떤 강아지가 여우의 아들로 들어갔대. 하지만 말했다시피 난 늦을 것 같아 걱정돼.\"
그러더니, 갑자기 잠자리를 발견한 강아지는 발딱 두 발로 일어서서 짖어대며 뱅글뱅글 세 바퀴 돌다가 풀밭을 구르고는, 마침내 발랑 드러누워 혀를 쑥 내민 채 쌕쌕거렸다. 잠시 후 숨을 돌린 강아지가 말했다.
\"봤지, 또 장난을 쳐버렸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단다. 알 만하지? 난 애기야. 그래서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한 걸음 뗄 때마다 장난을 치게 돼. 이래갖구 언제 가겠니. 아, 정말 도착할 가망이 없어. 그래서 큰 기대도 안 해. 나한테 너희들 같은 큰 발이 있다면 몰라도.......\"
하얀 강아지는 풀죽은 모습이었다. 델핀과 마리네트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또 이미 한참을 지나와버린 길 쪽도 쳐다보았다. 이윽고 델핀이 물었다.
\"작은 멍멍아. 내가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 까지 데려다주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니?\"
강아지가 소리쳤다.
\"아아, 그럼! 그렇게 큰 발로라면 가능하고말고!\"
\"그럼 당장 떠나자. 빨리 걸으면 금방 갔다올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약속장소는 어디니?\"
\"몰라, 한 번도 안 가봤어. 하지만 저 앞에 날고 있는 까치가 보이지? 저 까치가 길을 가르쳐줄 거야. 걱정 말고 따라가면 돼. 그곳까지 안내해줄 거야.\"
델핀과 마리네트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강아지를 보듬은 채 길을 떠났다. 아이들 앞을 나는 까치는 이따금씩은 눈에 잘 띄는 풀밭이나 오솔길 한복판에 내려앉았다가는, 이내 다시 날아올라 좀더 먼 곳에 내려앉곤 했다. 하얀 강아지는 출발하면서부터 델핀의 품에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커다란 연못가에 도착해서야 깨어났다. 까치가 마리네트의 어깨에 내려앉더니, 두 아이에게 말했다.
\"저기 갈대밭 옆에 앉아서 누군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렴. 그럼 잘해봐, 안녕!\"
까치가 날아가자 주위를 둘러보던 아이들은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연못가에는 풀밭에 무리지어 앉은 아기동물들 외에도 많은 동물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양, 노구, 멧돼지, 고양이, 병아리, 오리, 토끼 등 여러 종류의 아기들이었다. 오래도록 걸어서 지친 아이들도 앉아서 쉬었다. 델핀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갑자기 마리네트가 소리쳤다.
\"저기 봐! 백조야!\"
델핀이 눈을 뜨자 갈대숲을 건너 커다란 백조 두 마리가 작은 섬을 향해 연못을 헤엄쳐가는 광경과, 그 섬 쪽으로 또다른 백조들이 등에 아기토끼 한 마리씩을 태운 채 다가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좀더 먼 곳에서는 또다른 백조 두 마리가 갈대와 잔가지로 엮은 뗏목 위에 겁에 질려 울며 소리치는 송아지를 태운 채 끌고 가고 있었다. 연못 전체가 끊임없이 왔다갔다하는 커다란 새들로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앉았던 수풀 근처의 갈대숲에서 백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곧장 둘에게로 다가왔다. 백조가 매서운 눈매에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없는 아이?\"
\"네.\"
마리네트가 무릎에 누운 하얀 강아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고개를 돌린 백조가 길게 휘파람 신호를 보내자, 이와 동시에 다른 백조 두 마리가 뗏목을 끌고 즉각 다가왔다.
\"타라.\"
뗏목 태우기의 책임자인 듯한 백조가 명령했다. 델핀이 말했다.
\"잠깐만요, 설명을 드려야.......\"
\"설명들을 것 없어!\"
백조가 딱 잘라 말했다.
\"설명은 섬에 가서 하거라. 자, 어서 타.\"
\"말씀을 드려야.......\"
\"조용!\"
백조가 눈을 부릅뜬 채 길다란 목을 쑥 들이대고, 부리를 아이들의 종아리 부근에서 딱딱 부딪쳐 보였다. 뗏목을 끄는 백조 중의 하나가 말했다.
\"자자, 말 들어.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 없다구.\"
겁에 질린 아이들은 더 이상 항변을 하지 않고 뗏목에 올라탔다. 곧장 출발한 백조들은 연못 한복판을 지나 섬 쪽으로 헤엄쳐갔다. 기분 좋은 물놀이어서 연못가를 떠나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먼저 동물들을 데려다주고 나온 듯한 다른 백조들과도 마주쳤다. 아주 어린 고양이와 멧돼지 한 마리씩만을 가뿐히 태운 또다른 백조들은 두 아이의 뗏목을 지나 벌써 섬 부근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얀 강아지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물장난을 치려고 몇 번씩이나 마리네트의 품에서 뛰쳐나가려고 했다.
뗏목여행은 십오 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뗏목에서 내리자 백조 한 마리가 두 아이와 하얀 강아지를 맡아 자작나무 그늘로 데려가 다름, 허락없이 자리를 뜨지 말라고 당부했다. 델핀과 마리네트는 주위를 둘러싼 아기들 가운데서 조금 전 연못에서 본 몇몇 동물들은 물론, 예의 그 아기염소와 두 마리의 오리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리네트가 본 각양각색의 엄마 잃은 아가들은 마흔명을 헤아렸으며, 백조는 수시로 새로운 어린 동물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동물들은 이제 곳 새로운 엄마아빠를 갖게 된다는 설레임에 말없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또다른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덤불숲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동물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쪽 동물들은 꽤 말이 많았고, 떠드는 소리가 마리네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기다린 지 십오 분쯤 지났을 때, 델핀은 어린 동물들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아마 보살피는 책임을 맡았음직한 나이 많은 백조를 보게 되었다. 이 할아버지 백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인다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델핀이 손을 들어올리자 백조가 다가와 상냥하게 말했다.
\"안녕, 얘들아. 화창한 봄날씨지? ......실례, 난 귀가 좀 먹어서 말이다.......\"
\"뭐냐면, 제 동생이랑 전 집에 돌아가겠다구요!\"
\"그래, 고맙구나. 내 나이치곤 꽤 정정하지.......\"
정말로 가는귀가 먹은 할아버지 백조가 엉뚱하게 대답했다.
\"우린 꼭 집에 돌아가야 해요.\"
\"그러고 보니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자 델핀은 할아버지 백조의 귀에 착 달라붙어 고막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집에 가야 해요!!\"
델핀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아까 뗏목에 올라타게 한 바로 그 백조가 불쑥 덤불숲에서 나와 호통쳤다.
\"또 이 애들이야! 도대체 이 애들 소리밖엔 안 들린다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마리네트가 설명하려고 했다.
\"지금 우리 언니 말은요.......\"
\"조용히 해,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안 그러면 물 속에 집어던져 물고기밥이 되게 해줄 테다! 둘 다 제자리로 돌아가!\"
이 말과 함께 자리를 뜬 백조는 이따금씩 사나운 눈초리를 델핀과 마리네트에게 보냈다. 아이들은 말하기를 포기한 채 더위에 지쳐 자작나무 밑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 만에야 깨어나서 주위를 둘러본 아이들은 무척 놀랐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기동물 쪽으로 등을 보인 여섯 마리의 백조가 땅두덩을 연단 삼아 오른쪽으로 셋, 왼쪽으로 셋씩 나뉘어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아까 아이들 쪽과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어른 동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돼지, 토끼, 오리, 멧돼지, 사슴, 양, 염소, 여우, 황소, 심지어는 거북이까지 보였다. 이들 모두가 연단 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잠시 후, 일곱번째 백조가 연단의 가운데 자리로 오더니 정중하게 인사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이렇게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이 돌아왔습니다. 잊지 않아주신 데 감사드리며, 각자 마음의 소리에 따라, 그리고 물론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셔서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맨 처음 연단에 오른 동물은 아기양이었고, 어른 동물들 중 하나인 야에게 곧바로 맞아들여졌다. 이어 아기멧돼지는 어떤 어른 멧돼지 일가가 데려가고, 엄마 없는 아가들의 행렬은 이렇게 델핀과 마리네트가 아침에 만났던 아기오리 두 마리를 한 여우가 아들로 삼겠다고 주장하는 순간까지 별 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여우가 주장했다.
\"저보다 나은 애비도 못 구합죠, 네....... 정성을 다할 테니, 믿어주세요.\"
모임의 시작을 아렸던 백조가 옆자리의 백조들과 수군거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여우군, 이 아이들을 위한 자네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네. 오히려 온 정성을 다하리라고 확신하네. 하지만 그 행복이 너무 짧지 않을까 염려되는군. 여우에게 아기오리란 너무나 큰 유혹이야.\"
델핀과 마리네트는 느긋했다. 아무도 데려가는 이가 없으면 자신은 자유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맨 끝줄에서 새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잠든 하얀 강아지를 발견하자 잠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제 친구들도 맞아들여달라고 불독 엄마아빠에게 틀림없이 졸라댔을 것이다. 백조가 묻고 있었다.
\"아무도 데려갈 분이 없습니까? 그렇다고 이 두 여자애를 가족도 없이 내버려둘 순 없잖소. 여우군, 오리들을 데려갈 땐 그렇게나 급하더니, 저 애들한테는 어떻게 생각이 없나?\"
여우가 말했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에, 저는 마음씨가 너무 좋아서...... 무지무지 좋단 말입니다. 저런 왈가닥 여자애들을 키워낼만큼 절대로 엄하지 못하거든요. 아니, 정말 데려갈 수가 없어요. 저도 안타깝지만, 다 저애들을 위해서예요.\"
백조는 이번에는 막 아기사슴을 맞아들인 어른사슴을 향해 똑같이 물었다. 사슴이 대답했다.
\"데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미친 짓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전 인간과 사냥개와 총을 피해 평생을 뛰어다녀야 한답니다. 아니아니, 이건 현명하지 못해요. 안타깝군요. 참 예쁜 아이들인데.\"
백조는 또다른 동물들에게도 사정했으나, 아무도 두 아이를 맡으려들지 않았다. 멧돼지도 데려가지 못하겠다고 하자, 모임의 맨 첫줄에 앉아 있던 거북이가 등딱지 밖으로 목을 쑥 내민 채 태평스럽게 말했다.
\"아무도 암 데려간다니, 그럼 내가 데려가지.\"
이 뜻밖의 소리에 동물들이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 자신도 거북이의 딸이 된다는 생각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음을 멈추게 한 백조가 상냥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거북이의 너그러움을 칭찬했다. 그리고 거북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가며, 저렇게 큰 아이들을 다스리기엔 거북이가 너무 작고 걸음이 느리다는 것을 돌려서 말했다. 거북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무안한지 등딱지 속으로 목을 쑥 넣어버렸다. 좌중의 주구 하나 아이들을 원하지 않자, 백조가 옆자리의 백조들과 두런두런 상의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아진 아이들은 당황한 백조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백조가 제자리로 돌아와 소리 높여 선언했다.
\"저 아이들은 저와 제 형제들이 맞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 버릇없는 말썽꾸러기들을 길들이는 데 저희들의 노력과 기강으로는 큰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내년에 '엄마 없는 아가들의 모임'에 다시 올 때쯤이면 발전한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실 겁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다시 한 번 설명하기 위해 일어섰으나, 백조들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연단 밑으로 내려보내 다음, 섬의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귀머거리 할아버지 백조의 보호 아래 맡겨두었다.
멀리 떠나는 동물들과 연못을 건너는 동물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델핀이 동생을 안심시키느라 말했다.
\"다 건너주고 나면 백조들이 섬으로 돌아올 테니, 그땐 확실하게 얘기해야겠어. 언제가지나 우릴 말 못 하게 하진 못할 거야.\"
그러자 마리네트가 대답했다.
\"그 사이에도 시간을 가. 엄마아빤 이제 곧 돌아오는 길일 텐데, 만약 우리보다 먼저 오시면....... 길을 건너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아, 생각하기 싫어!\"
네시쯤 모든 동물들은 이미 연못을 건너고 있었으나, 백조들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물고기를 집느라 매달려 있는 바람에 섬을 텅 비어 있었다. 델핀과 마리네트는 점점 더 걱정이 되어 울상이 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침울한 모습에 할아버지 백조가 위로해주려고 애썼다.
\"너희들을 여기에 두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벌써부터 너희 둘 없인 못 견딜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은 좀 따분하지. 쉬라고 섬에 놔둔 거지만, 내일은 헤엄치는 법이랑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울 게야. 두고 보면 여기 생활도 즐거울 거다. 참,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겠구나?\"
아닌게아니라 아이들은 배가 고팠다. 백조는 기다리라고 한 후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부리에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나타났다. 백조가 아이들 앞에 물고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아, 아직 팔딱팔딱 살아 있을 때 어서 먹으렴. 또 갖다주마.\"
아이들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뒤로 물러났고, 마리네트는 물고기를 집어 연못 속으로 돌려보냈다. 할아버지 백조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물고기를 싫어할 수가 있지? 목구멍 안에서 팔딱거리는 그 느낌이 기가 막힐 텐데, 어쨌든 너희들한텐 다른 먹이를 주어야겠구나. 뭐가 좋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어찌나 걱정이 되었던지, 배가 고픈 것도 잊어버렸다. 얼마 후 연못 뒤편의 숲 너머로 해가 꼴딱 넘어갔다. 시간은 적어도 여섯시는 되었을 것이고, 엄마아빠는 어쩌면 벌써 돌아오는 길일지도 몰랐다. 겁에 질린 델핀과 마리네트가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본 할아버지 백조가 허둥지둥 아이들 앞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아니, 무슨 일들이냐? 허 참, 늙어서 귀가 먹으니 정말 답답하구나......! 저렇게 예쁜 애들을! 옳거니, 그러면 되겠군! 날 따라들 오너라. 난 물에 있을 땐 무슨 말이든 다 들을 수 있단다.\"
할아버지 백조가 연못으로 들어가 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이, 델핀은 엄마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생 마리네트와 어떻게 큰길을 건너게 되었는지와 그 이후의 일들을 얘기했다. 말이 끝나자 할아버지 백조가 연못 한복판으로 헤엄쳐가며 온 기력을 다해 크게 휘파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던 백조들이 즉각 그 앞으로 둥그렇게들 모여들었다. 할아버지 백조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런 못난이들! 너희들은 이 연못에서 내쫓겨도 싸! 백조들의 수치야! 여기 이 아이들은 착하게도 엄마 잃은 강아지를 이곳까지 데려다주었는데, 그걸 이 섬에 붙들어두는 걸로 갚아? 그렇게 해놓고는 그 멍청한 소리나 들으라고 입도 달싹 못 하게 해?\"
백조들은 고개를 떨군 채 쩔쩔매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애들이 자기 엄마아빠한테 야단이라도 맞게 되면 알아서들 해!\"
할아버지 백조가 다른 백조들을 섬 쪽으로 끌고 오며 연방 소리쳤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이르러 명령했다.
\"목이 부러져라 빌어!\"
뭍으로 올라온 백조들이 아이들 앞에 엎드리더니 일제히 고개를 조아려댔다. 델핀과 마리네트는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 백조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제 단 일 분도 허비하지 말고, 다섯 명이 끌 뗏목을 준비해봐! 샛길로 강까지 간 다음, 가장 가까운 길까지 강을 거슬러갈 거야. 당연히 집 앞에까지 데려다주고. 자자, 서둘러, 굼벵이들 같으니라고!\"
백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뗏목을 만들어 바쳤다. 델핀과 마리네트는 다섯 마리 백조가 줄줄이 끄는 뗏목에 올라탔고, 그 앞에는 여섯 마리의 다른 백조들이 물길에 방해가 될 만한 잔가지들을 정리함으로써 길 트는 역할을 맡았다. 할아버지 백조는 눈을 부릅뜬 채 뗏목 옆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샛길로 접어들 무렵, 할아버지 백조의 건강을 염려한 다른 백조들이 함께 가는 것을 말렸다. 그 나이에 그렇게 긴 여행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델핀과 마리네트도 섬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할아버지 백조는 완강했다.
\"마음 쓰지 말아라. 아이들이 야단맞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늙은 백조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자자, 어서 서두르자. 곧 어두워지겠다.\"
아닌게아니라 해는 넘어가고 연못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물살을 탄 뗏목은 재빨리 샛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백조들은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할아버지 백조는 따라오느라 핵핵거렸지만, 속도를 늦추는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더 빨리! 굼벵이들 같으니! 아이들이 야단맞는단 말이다!\"
뗏목이 강에 이르렀을 때, 어둠은 이미 짙게 깔려 있었다. 일행은 세찬 물살과 싸워야 했고, 어둠은 방해가 되었다. 다행히 금세 떠오른 달이 물길을 좀 수월하게 안내해주었다. 마침내 할아버지 백조가 상륙을 명령했다. 몹시 피로한 모습에 델핀과 마리네트가 쉬시라고 했지만, 어떤 말도 소용없는 듯 백조는 아이들을 일단 큰길로 데려다놓는 것부터 했다.
\"꾸물거리지 마라. 늦지 않았을까 걱정되는구나. 암, 걱정되고말고!\"
자신들을 호위하는 백조들과 함께 큰길에 이른 아이들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백 미터 저 앞에서 등을 보인 채 엄마아빠가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손에는 각각 바구니 한 개씩을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백조가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는 두 아이들을 꽃나무가 늘어선 길 건너편으로 데려가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꽃나무를 방패 삼아 달리면, 엄마아빠를 앞지를 수 있을 게야. 집 근처에 도착해 길을 건너야 할 때면 우리가 두 사람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마. 중요한 건 여유 있게 먼저 도착하는 게야.\"
아이들은 할아버지 백조의 말에 따르려 했어나, 피곤한 데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별 수 없이 걸어야 했지만, 엄마아빠보다 걸음이 느린 터라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 백조가 중얼거렸다.
\"이러면 일이 복잡해지는군. 시간을 벌어야겠어. 나한테 맡겨둬.\"
그리고는 큰길로 뛰어들어 엄머아빠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여보세요! 뭐 흘리신 것 없습니까?\"
엄마아빠가 걸음을 멈추고 밝은 달빛 아래 뭐 빠진 게 없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백조는 이제 뛰긴커녕, 아이들이 앞서갈 시간을 벌어주느라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엄마아빠는 속이 터졌다. 백조가 다가서며 물었다.
\"흘리신 것 없나요? 오는 길에 예쁜 하얀 깃털을 주웠는데, 제것이 아니다 보니, 혹시 두 분한테서 나온 게 아닌가 했답니다.\"
\"우리가 너같이 어수룩한 족속인 줄 아니, 깃털을 달고 다니게?\"
엄마아빠가 화를 내며 가버렸다. 백조는 꽃나무 쪽으로 다시 건너왔다. 아이들은 약간 앞서 있었으나, 성큼성큼 걷는 엄마아빠는 오래지 않아 둘을 따라붙어 다시 앞질러버렸다. 백조는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말로 델핀과 마리네트를 격려한 다음, 남은 힘을 짜내어 다른 백조들을 거느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하얀 새들이 조용히 아이들 앞을 달려가다가 꽃나무 틈새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아빠는 길을 계속 나아가며, 집에 있을 두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얌전히들 있고, 길을 건너지 않았기를 바라야지! 하! 혹시라도 길만 건넜다간!\"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델핀과 미리네트는 오금이 저려왔다. 갑자기 엄마아빠가 우뚝 선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앞쪽의 길 한복판에 줄줄이 늘어선 열두 마리의 커다란 백조들이 달빛아래 춤을 추고 있었다. 백조들은 둘씩둘씩 짝을 지어 돌다가, 이쪽 발 저쪽 발로 춤추다가, 맞절을 하다가, 또 둥그렇게 둘러서서는 긴 목을 늘어뜨리고 열두 개의 부리를 한 지점에 모은 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리 돌았던지,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눈의 소용돌이인 것만 같았다. 한동안 바라보던 엄마아빠가 말했다.
\"예쁘군. 하지만 춤이나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시간만 괜히 빼앗겼어.\"
백조들의 한복판을 지나친 엄마아빠는 춤추는 백조들을 뒤에 버려둔 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꽃나무 저쪽의 아이들은 앞선 상태였으나, 엄마아빠의 발자국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자, 먼저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예 잃고 말았다. 다른 백조들과 함께 큰길로 나온 할아버지 백조는 아이들을 쫓아 있는 힘껏 달음박질쳤지만, 어찌나 지쳤던지 매번 위태위태하게 고꾸라질 뻔하기 일쑤였다. 이미 오랜 시간 헤엄쳐온 데다가, 춤 때문에 녹초가 된 탓이었다. 마침내 온 힘을 다해 아이들 곁으로 다가왔을 때는 엄마아빠가 집으로부터 백 미터 남짓 떨어진 지점에 이미 이르렀을 때였다. 백조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무 걱정 말거라. 야단맞지 않아. 이제 너희들을 저 백조들의 손에 맡기마. 말 잘 듣겠다고 약속해다오. 때가 되면 길을 건너게 해줄 게야.\"
할아버지 백조는 이렇게 말하고 꽃나무 사이에서 물러나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밀밭 한복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가 점차 느려지고 다리가 뻣뻣해지는가 싶더니, 풀밭에 이르러서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백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백조들이 죽어갈 때 그러하듯이. 그 노랫소리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였다. 큰길에서는 손에 손을 잡은 엄마아빠가 집 반대쪽으로 돌아섰다는 것도 잊은 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밀밭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조가 노래를 그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이슬을 밟으며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델핀과 마리네트가 램프 불빛 아래서 바느질하고 있었다. 식탁이 차려져 있었고, 벽난로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문을 들어서는 엄마아빠는 전에 없이 낯설기만 한 나지막한 소리로 잘 있었니, 하고 인사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엄마아빠는 눈동자까지 축축하게 젖은 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아빠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깝구나. 좀전에 너희들이 길을 건너와 보지 않아서 정말 아까워. 백조가 풀밭에서 노래를 불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