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동경으로 거의 글씨마저 떨리는 듯한 그 편지는, 처음에 나에게 일종의 면죄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랬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심지어 감추어진 치부까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은 듯이 착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감격의 순간이 지나자 나는 곧이어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착각하지 마라. 너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그렇듯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고작 철없는 여학생 한 명이 너에게 속아넘어간 것뿐 아닌가. 그것도 정작 네가 아닌 너의 문학에.
편지가 아니라 실제로 여학생을 대하고 그리하여 나에 대한 호감을 확인했을 때도 나는 마찬가지였다. 도청소재지에는 남녀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한두 명씩 뽑혀나와 만들어진 문학동인회가 있었고, 마침내 나도 거기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 주일에 한 번 만나서 서로 작품을 돌려 읽고 평을 하는 식의 모임이었는데, 신입회원으로 첫 인사를 하던 때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아무리 무기를 지니고 단단히 무장을 했다고 해도 역시 어린 나이였다.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들을 대하는 순간 나는 또다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저 아이들은 혹시 내 치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온몸이 후둘후둘 떨려왔고,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나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당시의 나에게, 적어도 그들만큼은 세상을 속이는 나와는 달리 올바르게 문학을 하는 셈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들이었다. 바로 그들에게 내 치부를 들킨 것이었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구해 주었다.
\"댁의 명성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만 목에 힘 빼세요.\"
얼굴이 달걀처럼 갸름한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의 말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입을 벌려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떤 허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왔다. 엉뚱하게도, 나는 세상을 속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고 마치 그들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런 식일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치부를 들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한바탕의 웃음과 함께 인사가 끝났을 때, 얼굴이 갸름한 여학생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여학생의 질문이 나에게는 왜 그렇듯 잔인하게 들렸던 것일까. 나는 마치 여학생을 짓뭉개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빨간 색이오.\"
얼마 후 그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변소에 버렸다.
여학생의 편지를 변소에 버린 행위는, 단순하고 유치한 심리와는 달리, 나의 일생을 통해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 물론 당시의 나로서는 까마득히 몰랐지만 그것이 일테면 나의 위악(僞惡)의 시초였던 셈이다. 훗날 대학시절을 거치면서 이 위악이야말로 나에게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시절, 세상에 대한 나의 무기는 바로 위악이었을 터이다. 사회과학식으로 말한다면 위악이 나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이 위악은 자연스럽게 죽음이라거나 탐미주의 혹은 허무주의 등과 뒤섞여 세상에 대하여 깊게 병든 한 청년의 문학이 되어갔다.
얼마 전 인사동의 술집에서 나는 우연히 한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후배대로 일행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일행이 있었는데, 서로의 술자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를 불렀다.
\"너한테 고백할 게 있는데…… 어때? 둘이서 한 잔 더 하지 않으련?\"
내가 일부러 정색을 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또 밤 새우게요?\"
슬쩍 한 발을 빼는 시늉을 하였다. 기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와 어울린 술자리는 매번 밤을 세웠다. 그러나 조금만 헤아려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차츰 기분좋게 마시는 술자리가 드물어지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즐거운 술자리가 되면 여간만 해서는 쉽게 헤어질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에게는 그와의 술자리가 매번 즐거웠던 셈이다
\"아니, 오늘은 정말로 너한테 고백할 것이 있어서 그래.\"
내가 또다시 정색을 하였고,
\"어쩐지 겁나는데요?\"
그는 여전히 빙글거렸다. 서로의 술자리가 차츰 어수선해질 무렵 그와 나는 살그머니 술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추운 밤거리에서 그의 팔짱을 끼고, 열두 시 넘어서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그를 새삼스럽게 쳐다보곤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었다.
'나는 왜 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일까?'
'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황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자체까지도 의심을 품어야 하는 식이라면 그것은 상식이 아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스스로에 대한 의아심이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몇 해 동안 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단 주변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 온 셈이었다. 그런 태도는 사람들뿐만이 아니고 무슨 행사나 모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거기에는 아예 등을 돌린 상태였을 터이었다. 그런 나의 기피증은 어쩌다 문학운동을 하는 후배들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숫제 싸늘한 시선이 되곤 했다. 그러면 무심코 나를 향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던 후배들은 나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그런 태도가 된 것은 물론 자신에게 원인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런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동의 기간인가?'
자문한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아무리 먹고 싶었던 음식이지만 그 음식 한 가지만을 줄곧 먹다 보니 이번에는 코끝에 냄새만 맡아도 거부감이 오는 그런 식인지도 몰랐다. 몇 해 전, 십 년 가까이 관여하던 출판사를 그만두던 무렵이 나에게는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 그때 나는 어떤 거부감을 지나쳐서 차라리 끔찍하게 여겼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출판사와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그렇듯 철저하게 외면하게 된 것인지도.
내가 관여했던 출판사는 여느 출판사와는 달리 문학운동적인 성격이 강했다. 우선 출판사의 출발부터 뚜렷한 사주가 없는 일종의 공동체적인 구조에다가 수익금은 모두 문학운동이나 혹은 소위 민중운동권을 돕는 데 사용할 목적이었다. 문단의 선배들에게서 그 출판사에 관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직장다운 직장 생활을 해보지 못한 터수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했다. 그 무렵이 내가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다 풀려나온 직후였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의 일이며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속수무책으로 버려 둔 처자식을 거두어 준 문단의 선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일이 나에게는 바로 출판사에 관여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