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내의 말에 토를 달았다. 그리고 이버네는 좀더 대담한 눈길로 사내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왜놈순사 같은 차림새도 그렇지만 도리우찌 모자의 그늘에 숨겨져 있는 작고 날카로운 눈매가 아이에게는 우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아이는 사내 몰래 꼴깍, 침을 삼켰다.
\"근디, 아자씨는 누구다요?\"
아이의 질문이 의외였던지 사내는 얼핏 당황하는 눈치더니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인자 그만 집에 가 봐라. 니 앰씨가 지달릴텡께.\"
\"오메, 아자씨가 우찌께 울 엄니를 아요?\"
아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물었고,
\"이 장바닥에서 니 앰씨 몰르는 사람 있는 중 아냐?\"
사내가 잔뜩 비앙대는 투로 받았다. 그러고는 아이가 미처 다른 것을 물어 볼 틈도 주지 않고,
\"그럼 가 보랑께.\"
아이에게 손을 내젓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춘향관 대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아직도 입안에 침처럼 고여 있었지만 아이는 쉽게 춘향관에서 물러섰다. 까짓 거, 누구면 대수냐. 춘향관을 드나드는 어른 치고 좋은 사람은 없을 터이었다.
아이는 무엇보다도 사내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해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바로 오늘밤만 지나면 내일은 설날인 것이다. 떡이나 과일 같은 먹을 것이며 세뱃돈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벌써부터 다른 아이들에게 몇 번씩이나 자랑한 설빔이었다. 그것은 누나의 뉴똥치마처럼 새까만 세일러 학생복이었는데, 내년 봄 학교에 들어가면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단 채 입고 다닐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의 치맛귀를 붙들고 조른 끝에 설날 딱 하루만 입어보기로 승낙을 받아 놓은 참이었다.
아이는 춘향관에서 물러나자 이내 다급한 마음이 되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발소를 지나고, 청요릿집을 지나고, 국밥집, 목공소, 고깃간을 지나면서 아이는 얼핏 사내의 작고 날카로운 눈매를 떠올렸다. 그러자 아이에게는 이상하게도 사내의 눈매며 입언저리가 어디서 많이 본 듯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빔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아이에게 그러한 느낌은 지나치는 청요릿집이나 고깃간의 풍경처럼 가볍게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 채 집에 다다라 가겟문을 밀치자 부엌에서 뽀얀 김과 함께 시루떡 냄새가 풍겨 왔다. 아이가 그 시루떡 냄새를 향해 손에 쥔 양말을 흔들며 외쳤다.
\"엄니, 엄니이, 요것 잠 봐?\"
그러자 어머니보다 먼저 누나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머언디 그르케 호들갑이다냐?\"
뽀얀 김 속에서 아이의 말을 받았다.
\"양말이여, 양마알.\"
\"양마알?\"
이번에는 목소리와 함께 누나의 얼굴이 얼른 김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이는 그런 누나가 어쩐지 얄미워서,
\"누가 누님보고 그랬간디?\"
한마디 퉁을 주었다. 누나는 아이의 퉁에는 아랑곳없이 손에 들고 있는 양말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너 또 어서 돌른 건 아니제?\"
\"아녀, 아녀.\"
누나의 물음에 아이가 기겁을 하여 두 손을 내저었다. 아이는 언제인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장사꾼의 눈을 피해 잡화점에서 머리핀이며 손수건 따위를 훔쳐 자랑삼아 누나에게 주었다가 어머니에게 몹시 혼난 적이 있었다.
\"그라먼 어서 났냐?\"
\"우떤 아자씨가 줬어.\"
\"아자씨?\"
누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고, 아이는 불현듯 입안이 타는 느낌이었다.
\"참말이랑께. 쩌그 춘앵간 앞에서 몰르는 아자씨가 줬어. 멋이냐, 핵교 가면 공부 잘허라고 함서.\"
그러자 뜻박에도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시방 멋이라고 그랬냐?\"
불을 지피던 부지깽이를 든 채 황급히 가게로 나왔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시퍼런 표정이었다. 아이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을 직감했다.
\"참말이어라우. 그랑께, 도리우찌 쓰고 당꼬바지 입은 아자씬디, 엄니를 안다고 함서 줬단 말이요. 엄니, 절대로 안 훔쳤어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