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크와 콩 나무
옛날, 어떤 마을에 재크라는 사내 아이가 아빠와 단둘이서 살고 있었습니
다.
엄마는 재크가 어렸을 때 가출한 채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생겨 몰래 도망쳤다고들 했습니다.
아빠는 어린 재크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거짓말을 했습니다.
"네 엄마는 하나님이 불러서 천국에 갔단다. 천국에서 틀림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다."
재크는 엄마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천국에서 즐겁게 살
고 있을 엄마 모습을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곳은 재크네 마을과 똑같은 시
골로 언덕과 억덕 사이로 강이 흐르고 빨간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언덕 위의 훌륭한 교회에는 예수님이 계셨으며, 천국에 온 사
람들을 모아서 설교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눈에 떠올랐습니다.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재크는 자기도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이 이야기를 아빠하게 했는데 아빠가 평소와는 달리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재크네 집에는 암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재크와 아빠는 암소의 젖을 짜
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별안간 젖
이 나오지 않게 되자 아빠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마침내 결
단을 내렸습니다.
"별다른 도리가 없구나. 젖소를 팔 수 밖에. 오늘이 장날아니까 네가 소를
끌고 가서 팔아 오너라."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쁜 상인에게 속지 말라고 몇번이나 주의를 준
다음 재크를 보냈습니다.
재크는 소 고삐를 쥐고 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마을 성문 근처에서 왠 할아
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잘있었니, 재크야? 어디에 가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재크의 이름을 부르
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에 가요. 이 소를 팔려고요."
"소자 참 좋아 보이는구나."
"좋은 소예요. 이제 젖은 나오지 않지만."
"음, 마음에 들었다. 그 소를 나에게 팔지 않을래?"
이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강남콩 한 알을 꺼냈습니다. 강남콩
과 소를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재크는 겨우 한 알 가지고는 아빠에게 혼
이 날 것 같아서 더 많이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
지가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콩이 아니다. 이걸 뿌리면 하룻밤 만에 콩나무가 쑥쑥 자라
하늘까지 닿는단다. 그러면 천국에도 올라갈 수 있지."
천국에 올라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재크는 서둘러 강남
콩과 소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재크가 고삐를 넘겨주자마자 할아버지는 소
를 갈기갈기 찢어 무서운 기세로 먹어치우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거인으로
변했습니다. 재크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습니
다.
"벌써 왔니? 그래 소는 얼마나 팔았니?"
아빠가 물었습니다.
재크가 마법의 콩과 바꾸었다고 자랑하자, 아빠는 벼락같이 큰소리로 호통
을 쳤습니다.
"이 멍청한 놈아! 너같은 바보는 하늘까지 닿는다는 그 콩나무를 타고 천
국이든 어디든 가버려!"
그리고 강남콩을 창 밖으로 던져 버리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버렸습니
다.
다음날 아침,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재크가 눈을 떴을 때 여느 달과는 달
리 방안으로 아침 햇살이 비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밖을 내
다보니까 커다란 나뭇잎이 달린 굵은 강남콩 덩굴이 구름을 뚫고 하늘 끝까
지 뻗어 있었습니다. 재크는 그것이 엄마가 있는 천국으로 통하는 사다리처
럼 여겨졌습니다.
재크는 정신없이 콩나무로 달려가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하얀 솜같은
구름을 몇덩이 빠져나가 계속 올라가자 마침내 하늘나라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재크가 상상하고 있던 언덕과 강이 있었고 넓은 밭과 빨간 지붕집,
교회같은 건물도 보였습니다. 햇살이 약하게 비쳐 사물에 그림자가 없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주위의 풍경은 재크네 마을같은 전형적인 시골이었습니다.
재크가 개울을 따라 걸아가는데 맞은편에서 빨간 도깨비같은 거인이 다가
왔습니다. 얼핏보고 그 거인이 소를 잡아먹은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지로
둔갑한 거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서운 도깨비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강남콩은 진짜 마법의 콩이었고, 달리 갈 데도 없어서 재크는 우선 거인의
뒤를 쫓아가기로 했습니다. 거인은 커다란 시골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왔어요?"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직 한명도 안온 것 같아."
남자가 대답하자 여자는 깔깔 웃고 나서 투덜거렸습니다.
"아무튼 당신은 얼빠진 사람이에요. 콩나무를 타고 어린애들이 줄지어 올
라 올꺼라더니......"
재크가 창으로 살짝 들여다 보니 남자는 비쩍 마른 갓난 아기같은 것을 방
에 얹어 먹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역시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재크는 오금이 저려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깨
비가 커다란 입으로 빵을 정말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습
니다.
그 소리를 들은 도깨비들은 휙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여자도깨비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재크는 엉겁결에 엄마 하고 외쳤습니다. 여자 도깨비는 재크가
몇번이고 꿈속에서 보아온 엄마가 틀림없었습니다.
원래는 시골 여자답게 씩씩한 엄마였지만 지금은 소처럼 살이 쪄 영 사람
같지 않은 커다란 덩치가 되어 보기에도 무서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재
크는 그것은 도깨비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틀림없이 이 도깨비
는 엄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여보, 저녀석이 뭐라고 하는 거야?"
"몰라요. 나는 저런 얼간이는 몰라요."
여자 도깨비가 당황해하며 말했습니다.
재크가 엄마를 만나고 싶어서 콩나무를 타고 왔다고 하자, 여자 도깨비는
귀찮다면서 욕을 했습니다. 게다가 너 같은 바보는 우리에게 잡아먹혀야 한
다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남자 도깨비는 아내가 흥분한 것을 보고 놀라
말했습니다.
"멋있게 생긴 꼬마지만 당신 자식이라니 잡아먹을 수가 없군. 이러면 어떨
까. 재크는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도깨비가 되는 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입에도 담지 마세요. 끔찍해요, 정말 끔찍해요."
도깨비 부인은 혈압이 오르는지 얼굴이 시벌겋게 물들었습니다.
"저런 개구장이와 살 바에야 여기서도 도망쳐 버리겠어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재크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저는 아빠한테 돌아가야겠어요. 그래도 가끔 엄마를 만나러 와도 괜
찮죠?"
"만나서 뭐하려고?"
여자 도깨비는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 오늘은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그래도 당신 아들인데 선물로 황금
알을 낳는 암닭이라도 주지 그래."
남자 도깨비가 분위기를 바꾸며 말하자 여자 도깨비가 창고에서 암닭 한마
리를 가져왔습니다.
"낳아라!"
남자 도깨비가 소리치자 암닭이 황금알을 낳았습니다.
재크는 암닭을 안고 슬픈 얼굴로 엄마를 돌아다보며 콩나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덩굴을 타고 내려가려고 하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되었
습니다. 눈앞이 아찔한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 생각없
이 올라올 때는 좋았지만 막상 내려가려고 하니 공포가 엄습해서 도저히 몸
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재크는 울면서 다시 도깨비집으로 갔습니다.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 위에서는 대낮부터 도깨비부부가 벌거숭이
가 되어 꺼리낌없이 소리를 지르며 한창 뒤엉켜 있었습니다. 민망스럽게도
재크가 창 밖에서 움직인 것을 밑에 깔려 있던 여자 도깨비가 보았습니다.
여자 도깨비는 오싹하리만큼 싸늘한 미소를 띄우고 재크에게 눈짓을 했습니
다. 기다리고 있으라는 신호 같았습니다.
창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 한참만에 여자 도깨비가 나왔습니다. 여자
도깨비는 차가운 웃음을 머금은 채 "엄마!"하고 부르는 재크의 목을 양손으
로 잡아 닭모가지 비틀듯이 단숨에 비틀어 죽였습니다. 여자 도깨비는 재크
의 시체를 창고 속에 숨겨두었다가 저녁 식사 때 어린이 스튜라고 하며 남
자 도깨비에게 내놓았습니다.
"이것 참 맛있네. 뭐니 뭐니해도 어린애 고기가 최고야. 저 콩나무를 타고
어랜애가 또 올라왔나?"
"그럼요. 이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올라오는 애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
예요."
여자 도깨비의 말대로 다음 날에도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남
자 아이 한명이 도깨비 집 창문에 얼굴을 대고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