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시계 [김문기창작동화]
"얘, 둥리야! 빨리 일어나! 아침이다!"
오늘도 뻐꾸기 시계가 8시를 가리키며 소란을 피워댔어요. 그 소리에 놀란 어린 도깨비 둥리는 짜증을 내며 이불 속 깊숙이로 들어갔어요. 그러자 뻐꾸기 시계는 소리를 더 쳤어요.
"빨리 일어나라구!"
뻐꾸기 시계는 집을 마구 흔들어댔어요.
"일어나!"
집이 흔들리며 꽃무늬 액자 하나가 떨어져 내리자 둥리는 견디다 못해 이불을 빠져 나왔어요.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집이 부서져버렸을 지 모르죠.
"에이, 흥!"
둥리는 투덜대며 이불을 갰어요. 그리고 세수를 하고 식탁으로 가 앉으니 엄마가 밥을 차려 주었어요.
둥리가 밥을 배불리 먹고 나자 엄마가 말했어요.
"세 시간 동안만 놀다 오너라."
"예."
둥리는 엄마가 준 튜브를 가지고 시냇가에 찾아갔어요. 혼자서 첨벙대며 신나게 놀았지요.
한 시간, 또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지났어요.
"어, 벌써 11시네? 에이, 더 놀고 싶은데……"
둥리가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빵을 만들어 주었어요. 케이크도 만들어 주었어요.
다음 날 아침 8시에 뻐꾸기 시계가 또 집을 흔들며 소란을 치는 바람에 둥리는 일어났어요.
"오늘도 세 시간만 놀다 오너라."
"예."
둥리는 시냇가로 찾아가며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놀 수 있을까? 그 뻐꾸기 시계가 얄미워."
시냇물에서 튜브를 가지고 혼자 놀던 둥리는 아주 좋은 생각을 떠올렸어요. 모래밭에 시계를 만들면 되는 일이지요. 뻐꾸기 시계보다 훨씬 잘 생기고 멋있고 예쁜 시계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모래밭에 둥근 원을 그리고 1부터 12까지 숫자를 썼어요. 그리고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시계 바늘로 삼았어요.
"와, 시계 만들기 쉽네!"
둥리는 정성스레 시계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시계 바늘이 11시를 가리키게끔 했어요.
"집에 갈 시간이잖아? 아냐. 10시로 고쳐 놓아야지."
둥리는 1시간 동안 더 물장난을 하며 놀았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가 화난 얼굴로 쳐다보았어요.
"엄마하고 약속을 안 지켰구나. 너는 1시간이나 더 놀다 왔잖아?"
뻐꾸기 시계도 말했어요.
"저 녀석을 혼내 주세요."
둥리는 슬픈 얼굴로 대답했어요.
"엄마, 지금 11시란 말예요."
그 말을 듣자 뻐꾸기 시계가 코웃음을 쳤어요.
"넌 시계도 볼 줄 모르니? 지금은 12시란 말야. 넌 바보구나. 메롱!"
"시냇가에 있는 시계는 11시인 걸. 내가 만들었단 말야."
"시계를 만들어? 네가? 만약에 네가 모래밭에 시계를 만들었다면 그건 가짜야. 이 뻐꾸기 시계는 진짜고, 네가 만든 것은 장난감이란 말야."
엄마도 말했어요.
"맞다. 저 뻐꾸기 시계는 진짜야. 자동으로 시간을 정확히 알려 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벌서야지."
둥리는 할 수 없이 거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들었어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벌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벽에서 혀를 낼름거리는 뻐꾸기 시계가 너무 얄미웠어요.
다음날 둥리는 8시에 또 튜브를 가지고 시냇가로 찾아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물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기가 어제 애써 만든 모래밭 시계를 우두커니 바라보았지요.
"이건 가짜 시계라고 했는데…… 가짜는 필요 없는 거야."
슬프기도 했고 짜증도 났어요. 그래서 둥리는 모래밭 시계를 발로 헝클어 버렸어요. 숫자를 모두 지우고 나뭇가지 바늘 두 개는 내던져버렸어요.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어요.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어요.
한참 후 엄마가 시냇가로 찾아 왔을 때, 둥리는 모래밭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어요. 마구 헝크러져 있는 모래밭에 그래도 시계 테두리가 조금 남아 있었지요.
"둥리야, 일어나."
둥리가 일어나며 어리둥절해 하자 엄마가 말했어요.
"너 왜 여기서 잠을 자는 거지?"
"모르겠어요. 그냥 잠들었어요."
"그런데 왜 모래밭 시계를 헝클어뜨렸니?"
"가짜라고 해서요."
"가짜? 그래서 네가 우울했구나. 미안해."
"엄마, 뻐꾸기 시계는 진짜예요?"
"진짜? 아냐. 뻐꾸기 시계는 그냥 기계일 뿐이야. 오늘도 고장이 났는 걸. 아빠가 지금 고치고 있단다."
"왜 고장이 났어요?"
"모르지. 기계는 아주 작은 실수나 잘못만 있어도 고장이 난단다. 고장났을 경우는 아주 형편없는 쇳덩이에 불과해. 우리를 아주 난간하게 하지. 자, 이젠 집에 가자."
둥리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가면서 자꾸 뒤돌아 보았어요. 모래밭 시계는 비록 헝클어져 버렸지만 빨간 저녁 햇살을 받으며 책칵책칵 바늘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뻐꾸기 시계를 고치고 있었어요.
"이거 왜 고장났을까? 건전지를 갈아줘도 안 되네. 시계 수리점에 맡겨야 하나 봐."
둥리는 뚜껑이 열린 채 부속품이 널브러져 있는 뻐꾸기 시계를 바라보았어요. 항상 잘난 체하며 소란을 피워댔었는데, 고장난 뻐꾸기 시계를 바라보니 우습기도 했고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어쩌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병원에도 가봐야 하고……"
엄마가 걱정어린 말을 했어요.
"나도 내일 아침 8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빠도 걱정을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뻐꾸기 시계와 모래밭 시계를 마음 속으로 비교해 보던 둥리가 말했어요.
"엄마 아빠! 제가 내일 아침에 깨워 드릴께요."
"뭐? 너 같은 잠꾸러기가 엄마 아빠를 깨워? 휴."
"정말 8시에 깨워 드릴께요."
"그래 봐라. 좋은 일이지. 허허허."
아빠는 저녁 때가 되고 밤이 되어도 뻐꾸기 시계를 고치지 못했어요. 엄마는 그 옆에서 걱정만 하고 있고요.
둥리는 침대에 누웠어요.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시냇가 모래밭에 둥근 원을 그리고 1부터 12까지 숫자를 썼어요.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시계 바늘로 삼았어요.
"자, 시계가 간다! 진짜 시계가 간다!"
둥리는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그러자 큰바늘과 작은 바늘이 책칵책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밤 10시지만 시계 바늘이 계속 움직이면 밤이 지나 아침이 될 것이고 8시가 될 테지요. 엄마 아빠를 깨울 수 있을 테지요.
둥리 마음속에서 모래밭 시계 바늘은 책칵책칵 잘도 움직여 갔어요.
김문기 창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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