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할머니
“너희 작은 아버지는 참 잘 생겼단다. 아기였을 때도 너희 아버지랑 양옆에 눕혀 놓고 보면 작은 아버지는 얼굴이 달덩이 같이 훤했어. 참 잘 생긴 얼굴이었지.”
할머니가 다시 작은 아버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할머니의 입에서는 녹음기의 스위치를 틀었을 때처럼 작은 아버지를 칭찬하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작은 아버지를 칭찬하지 않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할 것처럼 할머니는 틈만 나면 작은 아버지 칭찬으로 입술이 마르셨다.
“얼굴만 잘 생긴 게 아니었단다. 너희 작은 아버지는 참 착했어. 네 말을 거역하는 일이 없었지. 어른들이 시키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싫어하지 않고 두 팔을 척 걷어붙이고 달려들었으니까. 아니, 시킨 일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집안 일이고, 동네 일이고 척척 해치웠으니까. 세상에 그렇게 착한 아이는 어디에 가도 없을 거야.”
할머니가 영화 본 얘기를 들려주듯이 작은 아버지의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다는 게 좋았고, 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작은 아버지라는 것이 너무 좋아 가슴이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좋은 얘기도 자꾸 들으면 듣기 싫다는데, 그보다도 작은 아버지의 칭찬은 곧 우리 아버지에 대한 욕이나 다름없었다. 작은 아버지가 달덩이 같이 훤했다면 우리 아버지는 뭔가? 햇덩이?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할머니의 입에서 아버지의 대한 칭찬이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마치 당신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할만큼, 정이 없는 듯이 보였다.
“놔둬라. 아, 왜 같은 날 꽃씨를 뿌려도 고운 꽃이 있고, 미운 꽃이 있지 않니? 남의 집 떡이 커 보인다고 할머니 눈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네 작은 아버지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겠니.”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할머니 입에서 작은 아버지에 대한 칭찬이 나올 때마다 괜히 기분이 나빴다.
지난 봄에도 할머니는 작은 아버지를 입에 담으셨다. 장에 가셨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려고 과자를 좀 많이 사오셨다.
우리들은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사온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단 과자를 사다주면 이빨이 상하지 않냐? 원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철부지처럼 과자를 사들고 오다니.”
하고 꾸중을 하셨다.
“어머니, 그냥 못 본체 하세요. 아이들이 저렇게 시는 것이었다.
“아니, 네가 나한테 대들다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네가 이젠 나한테 눈까지 크게 떠? 어이구 내 팔자야, 우리 호성이가 살아 있었으면 내가 이런 꼴을 보지 않을텐데. 어이구, 내 팔자야.”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가슴을 치셨다. 그럴 때 보면 할머니는 마치 실성을 하시거나 치매에 걸린 분처럼 보이셨다. 아빠가 하신 말씀은 그렇게 심한 말도 아니었고, 평소에도 절대로 할머니를 업신여기거나 분이 아니셨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버지에게서 흠이라도 잡으려는 사람처럼 고운 소리를 하실 때가 없었다. 더더구나 작은 아버지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아버지를 욕할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할머니가 노망든 모양이야.’
나는 할머니의 팔자타령을 들으면서 자꾸 미운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럴 때면 할머니에게 대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랬다간 아버지에게 치도곤을 맞기 때문에 꾹 참았다.
우리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알아주는 효자였다. 농사를 짓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사람처럼 큰 돈을 벌지 못해도, 할머니의 말씀을 거스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에게도 늘
“너희들이 할머니를 잘 위해 드려야 한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고생만 하시면서 살아온 분이야. 할머니가 고생한 덕택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사는 거야.”
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싹을 키우고 계신지 가금씩 트집을 잡고 늘어지시는 것이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누구에게도 미움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나쁜 수가 많다는데, 어머니에게조차 할머니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시어머니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끔
“에비에게만 화를 내지 않는다면 참 좋은 분이신 데, 왜 자꾸 화를 내시는지.”
하시며 안타까워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얘기를 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늘 아버지를 미워하시면서도 수수께끼를 풀 만한 말씀은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고모도, 동네 어른들도 그런데 할머니가 작은 아버지의 제사를 제사를 지내시겠다고 우기기 시작하셨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작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시겠다니.
“어머님, 좀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떻겠어요?”
아버지가 말리셔도 할머니는 부득부득 우기시는 것이었다.
“기다려도 너무 오래 기다렸어. 살아 있다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을 놈이 아니야. 이젠 그만 기다리고 제사를 지내야겠다. 내가 차려 주는 제삿밥이라도 먹으려고 찾아왔는지도 모르는데…….”
할머니는 마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작은 아버지가 미웠다. 고향엘 찾아 돌아온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많은데 작은 아버지는 돌아올 생각을 안 하시는 것이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차지하고 있을 때, 돈벌러 일본에 가셨다는 작은 아버지는 해방이 되고, 세월이 흘러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도 통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런 작은 아버지를 할머니는 여태 기다리시다가 이젠 제사를 지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제삿날은 8월 15일로 정하였다. 나는 작은 아버지의 생일날이 8월 15일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광복절 아침에 나는 태극기를 달았다. 날씨가 맑아 하얀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내가 태극기를 달고 나서 부엌으로 갔더니 할머니는 떡쌀을 씻고 계셨다. 흰 쌀이 담긴 큰 함지에 담긴 물을 가득 붓고, 손을 빙빙 돌리시면서 쌀을 씻으셨다. 마치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지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정성스레 쌀을 씻고 물을 따르고, 다시 씻기를 반복하셨다.
“할머니,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재미있어요?”
나는 물장난을 하는 게 좋아 쌀을 씻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할머니는 마치 큰 일이라고 난 듯이
“아서라, 넌 못한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하고 말씀하셨다.
“왜요? 저도 쌀을 씻을 수 있어요.”
“아니다, 넌 나가서 놀아라. 이건 이 할미가 할 일이란다.”
“왜요? 왜 꼭 할머니가 하셔야 해요?”
나는 짖궃은 아이처럼 되물었다.
“왜냐하면 우리 호성이가 좋아하는 떡을 만드는 거니까. 우리 호성이는 떡을 아주 좋아했어. 그런데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이렇게 좋은 쌀로 떡을 만들 수 없었지.”
할머니는 금방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것처럼 음성이 젖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울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픈 날이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할머니의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사랑하는 작은 아들의 제삿날인데.
나는 할머니께 더 말씀을 드릴 용기가 없어
"어머님, 그만 우세요. 이젠 다 잊어버리세요.”
아버지가 조용히 말리시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원망섞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어도…….”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살아나 메아리처럼 연달아 들려 왔다.
‘아버지 때문이라니? 아버지가 뭘 어쨌는데?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하셨구나.’
나는 평소에 할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하시던 게 떠올랐다. 정말이다.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셨기에 할머니가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할머니의 목소리도, 아버지의 목소리도 더 들려 오지 않았고, 나는 궁금증을 쉬 털어 버릴 수 없었다. 우리에게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할머니의 가슴 속에는 원한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너 때문이야.”
할머니의 피맺힌 소리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머니가 변하셨다. 예전처럼 아버지께 맞대놓고 화를 내거나 꾸짖거나 하시는 일이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우리에게는 인자한 할머니셨고, 어머니에겐 자상한 시어머니로 돌아가셨다.
작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후, 할머니의 변화는 우리 식구가 바라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변한 할머니의 태도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엄마, 할머니가 이상하시지? 요즘은 왜 아버지에게 화를 내시지 않으실까요?”
“이상하긴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거스를 짓을 하시는 분이시니? 이제야 할머니가 아버지를 바로 보시는 게지.”
어머니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대놓고 어머니에게 제삿날 할머니가 왜 그런 소리를 하셨느냐고 여쭈어 볼 수는 없었다.
더더구나 아버지께 여쭈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어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께도.
며칠 후였다. 갑자기 할머니가 정신을 잃으셨다. 건강하게 지내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팠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어른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할머니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잠만 주무시기도 하셨다. 할머니가 앓아 누우시자 집안은 다녀가셨다. 그런데도 좀처럼 할머니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정신을 차리시고 일어나셨다. 아침에 밖엘 나갔더니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 이젠 안 아프세요? 다 나으셨어요?”
나는 기뻐서 할머니 곁으로 뛰어갔다.
“나 다 나았다. 이젠 안 아플 게야.”
할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병마를 털고 일어난 것이 너무 좋았다. 이젠 우리 집을 에워쌓던 어두움도 다 물러갈 것이다.
“엄마, 너무 좋다. 할머니가 이젠 다 나으신 것 같아.”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 종알거렸다.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머니 때문에 애를 쓰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좀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에 반짝하고 정신을 차리는 수가 있단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젠 병이 나았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니.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저녁이 되자 할머니는 다시 정신을 잃으셨다. 마치 죽는 배역을 맡은 배우가 연극을 하듯이 할머니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할머니가 자리에 눕자 고모와 고모부도 건너오셨고, 모두 방안에 둘러앉아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가 이따금씩 눈을 떠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계셨다.
여느 때 같으면 우린 밖으로 쫓겨났을 텐데도 그날만은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고 해서 방안에 남아 있을 수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아침처럼 다시 일어나 정신을 차리실 거라고 생각했다. 오뚝이처럼 할머니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틀림없이 일어나실 거라고 믿었다.
시계가 일곱 점을 가리킬 무렵, 눈을 감고 계셨던 할머니가 눈을 뜨셨다. 할머니의 눈은 예전처럼 반짝였다. 할머니는 방안을 휘휘 둘러보시다가 아버지를 올려다보시며 입을 여셨다.
“애비야, 미안하다. 날 용서해라.”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당황한 빛을 보이시더니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애비야, 내가 잘못 생각했다. 네 잘못이 아닌데, 일본놈들이 나쁜 놈들인데 공연히 너만 미워했구나. 이 에미가 잘못했다.”
어느 새 할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고모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도망만 안 갔어도 호성이는 끌려가지 않았을 걸. 호성이는 나 때문에 끌려간 겁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느 새 통곡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돈을 벌러 일본에 가신 것이 아니라 끌려간 것이구나. 그것도 아버지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한 이유를 어슴푸레하게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어차피 누군가는 끌려가게 되 있었으니까. 호성이는 너무 착해서…….”
“어머니, 죄송합니다. 호성이는 나를 살리려고 자청해서 징용을 갔어요. 나를 살리려고! 저를 살리려고!”
아버지는 방바닥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우시며 작은 아버지가 일본으로 끌려간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계셨다. 해방이 되기 한 달 전에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본으로 징용을 가신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사랑하는 작은 아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다.
“에비야, 난 이제 기쁘다.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호성이를 만날 수 있게 될 게다. 호성이가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난 꿈에서도 보았어. 호성이가 흰 옷을 입고 꽃밭에 앉아 웃고 있는 걸. 난 이제 우리 호성이를 만나 행복하게 살 거야.”
할머니는 정말 천국에라도 가신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 섭섭한 것이 있으면 다 풀어 두고 가셔요. 저희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가세요.”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숨을 쉬는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어느 새 숨을 멈추고,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할머니는 정말 천국에 가셔서 일본으로 징용을 가서 돌아오지 않으신 작은 아버지를 만나고 계실까?’
나는 할머니의 하얀 얼굴을 보면서 작은 아버지를 만나려고 바삐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불쌍한 우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