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 가장 유익한 것은 '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일등 중에 제일 기분 좋은 날은 '그'가 오는 화요일이었다.
그가 한 주는 역 건너편으로 가고, 다음 주 화요일에는 우리 동네로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난 화요일마다 자연히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또또까형이 눈치 챌까봐 난 아주 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다 일러바치지 않도록 구슬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종이 아홉시를 치고 나서야 나타났고, 난 일찍 나와야 했기 때문에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길에서는 눈에 뜨일 위험이 적었다. 난 우선 성당에 들어가 성인들의 초상화를 구경했다.
촛불이 여기 저기 커져 있어서 그런지 벽에 걸린 그림들이 약간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불빛이 반사되어 성인들도 번쩍거렸다.
난 늘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 어째서 좋은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성인들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자까리아스 씨는 촛대 위의 타다 남은 초들을 새 것으로 갈아 끼우고 있었다.
타다 남은 초를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까리아스 아저씨!"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안경을 코끝에 내려놓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뒤돌아보았다.
"그래, 잘 있었니, 애야!"
"제가 도와드릴까요?"
나의 눈길은 촛덩이들 쪽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방해만 될 게야. 어째서 오늘은 학교엘 안 갔니?"
"갔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안 오셨어요. 이가 아프시다나 봐요."
"아, 그래!"
그는 돌아서서 나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안경을 다시 콧등에 얹어 놓았다.
"너 몇 살이냐?"
"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아니 여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이예요."
"도대체 다섯 살이냐 아니면 여섯 살이냐?"
난 학교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다.
"여섯 살이 맞아요."
"여섯 살이라면 교리문답을 배우기에 딱 좋은 나이로구나."
"저도 배울 수 있나요?"
"그럼, 배울 수 있고 말고!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오면 된단다. 알겠니?"
"글쎄요, 아저씨께서 타다 남은 초토막을 조그만 주신다면 오겠어요."
"그 초로 뭣하게?"
마음속의 악마가 또 날 충동질했다.
그래서 난 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연줄에 칠하려고요. 그러면 줄이 아주 튼튼해진 대요"
"그럼 가져가거라."
나는 초토막들을 뭉쳐서 책과 구슬이 들어 있는 가방 속에 다 집어넣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고맙습니다. 자까리아스 아저씨."
"그럼 목요일에 오는 거다, 응?"
난 나는 듯이 튀어나갔다. 아직도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나는 오락장 앞으로 달려가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있는 힘을 다해 바닥에 초를 칠했다.
그리고는 오락장의 닫혀진 네 개의 문 앞에서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누가 제일 먼저 넘어지나 보기 위해서였다.
기다리기에 지쳐 갈 무렵 저쪽에서 한 손에 손수건을 쥐고, 다른 손엔 성경을 든 어떤 부인이 대문을 나와 성당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아닌 꼬린냐 부인이었다. 내 마음속의 악마가 서서히 즐길 준비에 기대가 부풀어 있었고,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에그머니나!"
그녀는 바로 어머니의 친구였고, 그녀의 딸 나난제니아는 글로리아 누나의 친한 친구였다.
나는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 길모퉁이로 숨어 버렸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구 욕을 해댔다.
곧이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녀의 다친 곳을 보살펴 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욕하는 것을 보니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주위를 배회하는 어떤 망나니 녀석의 짓일 거예요."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순간, 뒤에서 어떤 손 하나가 내 목덜미를 잡는 것이었 다.
"네 짓이지, 제제, 그렇지?"
머리가 불꽃처럼 빨간 오르란도 씨였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네 짓이지, 그렇지?"
"아저씨, 제발 우리 집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예요."
"하지 않으마, 그렇지만 제제, 이리 와 봐라, 초들이 아직도 남았으니 또 그런 짓을 할 테지. 다시 그런 짓 해서는 안된다. 이런 위험한 장난은 다른 사람의 발목을 부러뜨 릴지도 모르잖니?"
내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날 놓아주었다. 나는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시장 근처를 돌아다녔다. 로젬베르크 씨 댁 빵집 앞을 지날 때는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로젬베르크 아저씨?"
그는 본 척 만 척 시큰둥하게 인사만 받을 뿐, 결코 생과자 같은 것은 꺼내 줄 것 같지 않았다. 망할놈의 자식! 랄라 누나와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아참, 벌써 그가 와 있겠네."
시계는 이미 아홉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어기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벌써 '쁘로그레수'거리를 접어들어 모퉁이에 멈춰 섰다.
그리고,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고는 왼쪽 어깨에 조끼를 젖혀 올렸다. 아, 멋있는 체크 샤쓰를 입었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샤쓰를 입어야지. 게다가 그는 목에 빨간 머플러까지 매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뒤로 젖히더니 거리를 즐거움을 가득 채울 만한 큰 목소리로 외쳐댔다.
"오세요, 여러분! 새 소식이 왔습니다.!"
그 '바이아(브라질의 주 이름)' 원주민의 목소리는 매우 아름다웠다.
"금주의 히트곡은 '클라우디오노르' ! '빼드랑(용서라는 뜻)' ! '쉬꼬.비올라'의 최신 희트곡도 있어요. '비센떼.셀레스띠노'의 최신곡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최신 음악을 배웁시다."
이처럼 노래를 부르는 듯한 아름답고 유창한 그의 목소리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부르고 싶은 곡은 '화니'였다.
그가 부를 때 배운 곡이었다. '감옥에서 네가 죽어 가는 것을 보겠어.' 하는 대목에 이르면 얼마나 멋있는지 표현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큰 목소리를 내어 '클라우디오노르'를 부르기 시작했다.
망고 언덕의 삼바 축제에 갔더니,
나를 유혹한 어떤 흑인 여자가 있었네.
나는 갈 수 없어. 매맞을 까 두려워.
당신 남편은 힘이 세니 날 죽일지도 몰라.
나는 '클라우디오노르'처럼 가족이 있는 걸.
내 식구들을 위해 노동자가 되겠어요.
그는 노래를 멈추고 다시 선전을 시작했다.
"자! 일 또스땅에서 사백 레이스까지 마음대로 고르세요. 자! 육십여곡의 새 노래가 수록돼 있어요! 최신 히트 곡인 탱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혼자 있을 즈음
이웃을 부를 틈도 주지 않고
양심도 온정도 없는 너는
화니를 찔렀지.
아! 가엾은 화니여.....
나는 네가 고통을 받도록 하느님께 빌겠어.
나는 감옥에서 네가 죽어 가는 것을 보겠어.
양심도, 온정도 없는 너는
화니를 찔렀지.
아! 가엾은 화니여!
사람들은 뛰어나와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팜플렛을 사갔다.
나는 팜플렛에 실린 '화니'의 사진 때문에 그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함빡 머금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하나 살래?"
"아뇨, 돈이 없어요."
"그럼 다음에 보자."
그리고 나서 보따리를 들고, 소리치며 걸어갔다.
"'빼드랑' ! 왈츠예요 ! '담배를 피우며 기다려!' 도 있고, '잘 있게 젊은이들!' 도 있습니다. 최신 유행곡 탱고 '왕의 밤'도 있습니다. 시내에선 이 노래를 많이 부른답니다. '밤하늘의 빛'은 굉장히 아름다운 노래랍니다. 가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불렀다.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는 당신 눈동자에 나는 믿음을 심었네.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보세요.
하나님께 맹세코, 당신의 눈빛만큼 황홀한 빛은 없답니다.
오, 그대 눈빛을 보니 옛일이 생각나네.
별빛 물결 속에 흐르는 슬픈 사랑 얘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말할 수가 없답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선전을 하며 팔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이리 와 봐라, 꼬맹아."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가갔다.
"날 따라다니겠니, 돌아가겠니?"
"따라 다닐래요. 이 세상에서 아저씨처럼 노랠 잘 부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는 내가 아첨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그가 틈을 타 쉬고 있을 것을 알아채고 그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넌 꼭 뱀처럼 따라다닌단 말씀이야."
"전 아저씨가 '비센떼.셀레스띠노'나 '쉬꼬.비올라' 처럼 잘 부르시나 듣고 싶어 그랬어요. 그런데 역시 잘 부르시는 군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니, 꼬맹아?"
"네, 라이문드 빠스 박사님 아들 집에 있는 전축에서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전축이 낡았든지, 아니면 바늘이 못쓰게 돼서 그랬을 게다."
"그렇지 않아요. 그 전축은 새로 산 것이었어요. 사실은 아저씨가 잘 부르시는 거예요. 제가 한가지 말씀드릴게 있는 데요."
"얘기 해 봐라."
"제가 계속 아저씨를 따라다니고 싶은데 괜찮겠죠? 아저씨께서 팜플렛이 얼만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노랠 부르시고 팜플렛은 제가 파는 거예요. 사람들은 어린애에게 사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나쁜 생각은 아닌데, 꼬맹아. 하지만 한가지 말해 둘게 있다. 네가 원하는 일이니까 좋다만 네게 나눠 줄 돈은 없단다."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럼, 왜?"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그래요. 배우고 싶기도 하구요. 전 이 세상에서 '화니'가 제일 멋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만약 아저씨께서 다 파시고,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 낡은 팜플렛 하나만 주신다면 우리 누나에게 갖다 주고 싶어요."
그는 모자를 벗더니 머리카락이 목에 닿는 곳을 긁었다.
"제겐 글로리아라는 숙녀가 다 된 누나가 있어요. 누나에게 갖다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알았다. 그럼 같이 하자."
그래서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며 팔게 되었다. 그가 먼저 노래를 부르면 나는 따라 부르며 배웠다.
정오가 다 되자, 그는 시름에 잠긴 모습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런데 넌 점심 먹으로 안 가니?"
"우리 일이 끝나면요."
그는 또 머리를 긁적거렸다.
"날 따라와라."
우리는 '세레스'거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그는 보따리 한 구석에서 커다란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칼을 꺼내 샌드위치를 잘라 한 쪽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술 한 모금을 마시고는 목을 축이기 위해 레몬주스를 샀다. 그는 그게 반주라고 말했다. 샌드위치를 먹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이봐, 꼬맹아, 넌 내게 아주 큰 행운을 안겨 주었어. 내겐 너 같은 배불뚝이 애들이 많지만 너처럼 날 도와주려고 생각하는 애는 하나도 없단다."
"몇 살이니?"
"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아니 다섯...."
"다섯 살이냐, 아니면 여섯 살이냐?"
"아직 여섯 살이 다 안 됐어요."
"하지만 넌 참 똑똑하고 착한 아이다."
"그럼 아저씨, 우리 다음 화요일에도 만날 수 있나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원한다면."
"좋아요. 그렇지만, 누나와 의논해 보고요. 누나도 이해할거예요."
나는 내가 가 본 적이 없는 역 건너편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신이 났다.
"내가 그곳에 간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매주 화요일마다 전 아저씨를 기다렸어요. 한 번은 오시고 한 번은 안 오셨어요. 그래서, 아마 기찻길 건너편으로 가셨나보다 생각했죠."
"넌 보통아이가 아니로구나. 그런데 이름이 뭐냐?"
"제제예요."
"나는 아리오발도라고 한다. 잊지마."
그는 마치 죽을 때까지 서로 친구가 되자는 듯이 못 박힌 굵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글로리아 누나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제제!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그럼 학교는 어떻게 하니?"
나는 누나에게 노트를 보여 주었다. 내 노트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데다 성적도 매우 좋았다. 산수 노트도 물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읽는 건, 고도이아, 내가 일등이야."
그래도 누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아직도 여섯 달 전에 배운 걸 되풀이하고 있단 말야. 그 바보같은 애들은 시간만 허비하고 있어."
누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건 말 뿐이야, 제제."
"하지만 고도이아, 노래를 배우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배웠나 볼 테야? 에드문드 아저씨도 나중에 가르쳐 주신 걸. 자 봐. '짐하역꾼', '우주', '행성' , '저주받다' . 게다가 일주일에 팜플렛을 하나씩 가져다 누나한테 세상에서 제일 멋진 노래를 가르쳐 줄 텐데."
"그렇긴 해. 그래도 문제는 있어. 네가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을 먹으로 오지 않는 걸 아빠께서 아시게 되면 어쩌지?"
"아빠는 모르실 거야. 혹시 물으시면 거짓말을 하면 되잖아. 누나가 진지냐 할머니 댁으로 점심 먹으로 갔다고 하든지 나난제이나한테 전할 게 있어 심부름 시켰다고 해. 거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면 되잖아."
'휴! 길바닥에 초칠 한 것이 나라는 걸 그 아줌마가 모르게 해야 될 텐데.'
누나는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그건 내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보다는 매를 덜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 준 때문이었다.
그 후부터 수요일이면 오렌지나무 아래 앉아 노래 부르는 것이 내 커다란 즐거움이 되었다.
화요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왔다. 화요일이면 난 늘 역에서 아리오발도 씨를 기다렸다.
기차를 놓치지 않는 한 그는 꼭 여덟시 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가져온 것을 팔았다. 나는 빵집 앞을 지나는 것이 좋았고 역 층층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글로리아 누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뒤에서 순경이 달려와 구두통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기차가 다녀 위험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다리 위로 난 기찻길을 건너갈 때에 나는 늘 아리오발도 씨의 손을 잡고 건넜다. 그는 그곳에서 바삐 서둘렀다.
나는 '화니'다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는 공장의 정원이 보이는 역의 담 옆에 앉았다. 거기서 그는 주요 팜플렛을 펼치고 첫 구절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좋지 않다고 하면 그는 다른 곡으로 바꿔 부르곤 했다.
"이 곡은 새로 나온 '말광량이'야."
그는 새 노래를 불러 보였다.
"다시 한 번 불러 보세요."
그는 마지막 소절을 다시 불렀다.
"바로 이거예요. 아리오발도 아저씨. '화니'보다 더 좋아요. 이 탱고라면 몽땅 다 팔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햇빛과 먼지로 가득 찬 거리로 걸어나갔다. 여름을 알리는 예쁘고 작은 새들은 마치 우리들 같았다.
이른 아침,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흘린 듯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렸다.
"이번 주의, 이번 달의, 그리고 올해의 히트 곡이 될 노래는 '쉬꼬. 비올라'의 '말괄 량이'입니다."
푸른 산봉우리에
은빛 달이 솟아오르고,
세레나데의 노랫가락은
창가를 스쳐 잠자는 연인을 깨웁니다.
아름다운 멜로디, 그 노랫가락을
기타 줄의 선율에 실어
가슴속에 싹트는 마음을
연인에게 고백합니다.
그가 잠시 노래를 멈추고 내게 머리를 두 번 흔들어 보이면 나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마저 불렀다.
나의 넋을 빼앗아간 아름다운 여인이여.
아!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제단 위에 받들어 모시리라.
당신을 내 가슴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
당신은 일할 필요가 없는 말괄량이랍니다.
노래는 아주 그만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달려와 사갔다. 나는 사백 레이스와 오백 레이스짜리 팜플렛을 팔고 있었는데 소녀들일 때는 무슨 곡을 사 갈지 미리 알아차릴 정도였다.
"아가씨 잔돈 여기 있습니다."
"그건 너 사탕 사먹어."
나는 아리오발도 씨의 말투를 닮아가고 있었다. 정오가 되면 늘 그랬듯이, 우리는 제일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오렌지와 딸기주스를 마셨다.
나는 주머니에서 거스름돈을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여기 있어요. 아리오발도 아저씨."
그리고 그의 앞으로 동전을 밀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넌 참 멋있는 애로구나, 제제."
"아리오발도 아저씨, 왜 전엔 절 꼬맹이라고 부르셨어요?"
"내 고향 '산따바이아'에서는 키작고 조그만 아이를 그렇게 부른단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트림을 했다. 그리고, 내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쑤시개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돈은 여전히 집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제제. 오늘부터 거스름돈은 네가 갖도록 해라. 어차피 우리는 듀엣이니까."
"듀엣이 뭔데요?"
"두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걸 말한다."
"그럼 이 돈으로 '순한 마리아'를 사도 좋아요?"
"돈은 당신 것이오. 알아서 하십시오."
"고맙소, 친구!"
내가 그의 흉내를 내자 그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생과자를 먹으며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짜, 제가 듀엣인가요?"
"그래, 진짜야."
"그럼 제가 '화니'의 일절을 부르도록 해 주세요. 아저씨께서 앞부분을 크게 부르시면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뒷부분을 마저 부를께요."
"별로 나쁜 생각은 아닌데, 그래라, 제제."
"그렇다면 점심 먹고 한 바퀴 돌아요.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화니'로 시작해요."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우리가 '화니'를 부르고 있을 때 그 불행한 사건은 터졌다.
마리아 다 펜냐 부인이 하얗게 분칠한 얼굴을 양산으로 가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우리가 부르는 '화니'를 듣고 서 있었다. 아리오발도 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걸으면서 그만 부르자고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상관이람! 난 믿지 못할 화니의 마음이란 대목에 홀딱 빠져 있었다. 마리아 다 펜냐 여사는 양산을 집어서 구두 끝을 톡톡 쳤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화가 나서 찌푸린 얼굴로 소리쳤다.
"잘한다. 잘해. 이런 부도덕한 노래를 어린애가 잘도 부르는 구나."
"부인, 이런 일은 부도덕한 일이 아닙니다. 정직한 일이기 때문에 한 번도 부도덕하다 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나는 아리오발도 씨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녀도 싸울 각오가 이미 돼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당신 아들이에요?"
"불행하게도 아닙니다, 부인."
"그럼 조카, 아니면 친척인가요?"
"친척도 아닙니다."
"몇 살이죠?"
"여섯 살입니다."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내 키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그녀는 단념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린애를 착취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요?"
"결코 착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 저 애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게다가 난 돈을 지불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애야?"
나는 머리를 끄떡여 보였다. 틀림없이 싸움이 한바탕 벌어질 것 같았다.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그녀의 뚱뚱한 배를 머리로 받아 바닥에 넘어뜨리고 싶었다.
"그래도 난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하겠어요. 신부님께도 말씀드리고 소년재판소에도 가고 경찰에 고발할 테니 명심하세요!"
그리고 입을 다무는가 했더니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리오발도 씨가 큰칼을 뽑아 그녀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 기절할 지경인 것 같았다.
"가보시지, 부인. 당장 꺼져버려! 난 착한 사람이긴 하지만,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마녀 인형 같은 여자들의 혀를 잘라버리는 좋지 못한 취미를 가진 놈이란 말입니다."
그녀는 놀라 빗자루처럼 꼿꼿해진 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 가더니, 갑자기 양산 끝으로 우리 쪽을 가리켰다.
"어디 두고 봐요! ....."
"이 수다쟁이 마녀 인형아, 썩 꺼져버려!"
그녀는 양산을 펴 쓰고 얼어붙은 듯 꼿꼿이 굳은 채 사라졌다.
해질 무렵, 아리오발도 씨는 오늘의 이익금을 계산했다.
"이게 전부다, 제제. 네 말이 맞았어. 넌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줬어."
나는 마리아 다 펜냐 여사 생각을 했다.
"그녀가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까요?"
"별일 없을 거야, 제제. 기껏해야 신부님께 얘기하겠지. 그러면 신부님은 이렇게 충고하실 게다. '그냥 내버려두시오, 마리아 여사. 북쪽 사람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진 않아요'라고."
그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똘똘 말은 팜플렛을 꺼냈다.
"이건 네 누나 글로리아에게 갖다 주렴!"
그리고 그는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아주 재수 좋은 날이었어."
우리는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아리오발도 아저씨?"
"응?"
"마녀 인형이 뭐예요?"
"낸들 아니, 애야. 화날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일 뿐이야."
그리고 희한하게 웃었다.
"아까 정말 칼로 찌르려고 했어요?"
"아니, 겁주려고 그랬어."
"진짜 찔렀으면 창자가 튀어나왔던지, 인형 속에 든 더러운 헝겊이 나왔을 거야."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정답게 쓰다듬어 주었다.
"한 가지 더 있다, 제제. 아마 똥물도 나왔을 거다."
우리는 마음껏 웃어 제쳤다.
"그렇지만, 걱정마라. 난 사람을 죽이진 않아, 병아리도 못 죽이는 걸. 난 우리 마누라가 빗자루만 들고 덤벼도 무서워하는 사람이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역으로 갔다.
역에서 그는 내 손을 꼭 쥐고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을 위해 이 거리를 한 번쯤 오지 말지 뭐."
그리고 내 손을 더욱 꼭 잡고 흔들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보자, 친구."
나는 그가 층층계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계단을 다 올라가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