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에서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희망에 젖어 들었다.
타는 듯한 태양이 내리 쬐는 어느 날 나는 이삿짐 수레에 타고 즐겁게 새 집으로 향했다. 수레는 덜컹거리던 골목길을 나와 '리오-상파울로'간선 도로에서 접어들자 신나게 미끄러져 갔다. 우리 옆으로 자동차 한 대가 스쳐 지나갔다.
"저기 저 차가 포루투갈인인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멋진 차란다."
짐꾼인 아리스띠데스 씨가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때 먼데서부터 귀에 익은 기적 소리가 들려 왔다.
"아저씨, 저쪽에 '망가라띠바(리오데제네이로와 상파울로를 운행하는 기차)'기차가 가요."
"넌 어떻게 그걸 알았지?"
"기적소리를 듣고 알았어요."
거리에는 따각따각하는 말발굽 소리만이 흩어져 들려왔다. 난 이 수레가 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단단하고 실용적인 듯 싶었다.
우리 이삿짐은 두 번 반복해야 다 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나귀도 별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아저씨는 굉장히 멋진 수레를 갖고 계시네요."
"그저 겨우 쓸만하지."
"당나귀도 아주 잘 생겼는데요. 이름이 뭐예요?"
"씨가노."
그는 별로 말을 하고 싶은 눈치가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은 제게 참 행복한 날이에요. 생전 처음 수레를 타 보구, 포르투칼인의 멋진 차도 불 수 있었구, 망가라띠바의 기적소리도 들을 수 있었구 말이예요."
그는 침묵을 지킨 채 아무 대구도 하지 않았다.
"아리스띠데스 아저씨, 망가라치바가 브라질에서 제일 큰 기차인가요?"
"아니다. 그 노선에서만 제일 크단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란 가끔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많단 말이야.
새 집에 이르러서는 아저씨에게 열쇠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되도록 공손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까요?"
"괜찮아, 가서 놀아라, 돌아갈 때 부르마."
나는 아저씨 말을 듣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밍기뉴, 이젠 늘 함께 있게 됐어. 다른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게 해줄게. 이봐, 밍기뉴, 난 수레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멋진지 마치 영화에 나오는 포장마차를 탄 것 같았어. 이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네게 얘기해 줄게, 괜찮지?"
담 밑 잡초들 근처에 갔을 때 더러운 물이 흐르는 걸 보았다.
"이 강의 이름을 전번에 뭐라고 지었었지?"
"아마조나스라고 했잖니?"
"그래 맞아, 아마조나스, 이 강 저편에는 밀림 속 인디언들의 카누들이 많을 거야, 그렇지 밍기뉴?"
"말도 마, 정말 인디언들로 꽉 차 있을 거야."
이제 겨우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아리스띠데스 씨가 문을 닫으며 날 불렀다.
"여기 있겠니, 아니면 같이 가겠니?"
"여기 있겠어요, 식구들도 지금쯤 집 가까이에 오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서 나는 혼자서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이사온 뒤, 처음 얼마 동안은 이웃의 눈도 있고, 또 이웃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얌전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어느 날 나는 지난번에 주웠던 여자용 검정 스타킹을 다시 찾아냈다.
그 스타킹을 실로 둥글게 말아 묶고 발가락 끝부분을 잘라 낸 다음 긴 연실을 발 끝에 매어 놓았다.
먼 곳에서 묶은 실을 잡아당기면 흡사 꼬리를 틀고 있는 독사뱀 같이 보였다. 이것으로 어두운 곳에서 장난을 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 되자 식구들은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새 집에 이사온 뒤로는 마음들이 모두 변해 다정하게 지내는 일이 드물었다.
나는 문 앞에서 숨을 죽이고 망을 봤다. 길가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비치고 있었고, 커다란 상록수 울타리는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었고, 혹 가다 풀벌레 울음소리만 들릴 뿐 정적만이 깔려 있었다.
내 마음속의 악마를 즐겁게 해 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한 여자가 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후 구두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독사뱀을 매단 실을 가만히 당겼다. 뱀은 당기는 대로 움직였으며, 그러자 여자는 길 한 가운데 풀석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 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 여자는 너무 큰 비명을 질렀고,그 소리는 고요한 밤거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악!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뱀, 뱀이!"
그러자 사람들이 문을 활짝 열고 뛰어나왔다. 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도망쳐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더러운 빨래들이 담긴 통 속으로 들어가 안에서 뚜껑을 닫아 버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비명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오 맙소사! 여섯 달 된 뱃속의 아기가 떨어지면 어떡해요."
난 더 놀랐다. 아니 놀란 상태를 넘어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횡설수설하며 울고 있는 그녀를 일으켜 집안으로 데려갔다.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아직도 그녀는 울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뱀을 보자 난 기절할 것만 같았어요."
"자 오렌지 꽃물을 좀 마셔요. 그리고 마음을 좀 진정시켜요. 이젠 괜찮아요. 남자들이 몽둥이와 도끼를 들고 램프불로 비추면서 쫓고 있답니다."
그까짓 헝겊조각으로 만든 작은 뱀 때문에 저렇게 법석들이람?
그런데 불행하게도 잔디라 누나랑 엄마랑랄라 누나까지 밖의 소동을 듣고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니 이건 낡은 스타킹이잖아!"
맙소사 너무 당황해서 그 것을 그대로 길가에 놓아두었구나! 이젠 정말 죽었구나.
사람들은 그 장난감 뱀 뒤에 묶은 실을 발견하고는 그 줄을 따라서 우리 집 뒷마당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이웃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며 동시에 외쳤다.
"바로 고 녀석의 짓이야."
이제 사정이 바뀌어 사냥의 목표는 뱀이 아닌 바로 나였다. 침대 밑을 살펴보기도 하고 온 구석을 뒤졌으나, 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들이 내 곁을 스쳐갈 땐 숨조차 죽이고 있었으며, 그들은 여기저기 찾아다녔으나 찾지를 못했다.
그러자 잔디라 누나가 빨래통을 생각해 냈다.
"어디 숨어 있는 지 이제야 알겠어!"
빨래통 뚜껑이 열리고 나는 결국 두 귀를 잡힌 채 식당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번만큼은 사정을 봐 주시지 않고 아주 세게 때리셨다. 마치 슬리퍼가 노래하는 것 같았으며, 나는 맞는 회수도 줄일 겸, 아픔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송아지처럼 소리치며 울었다.
"이 악마 같은 녀석아! 넌 여섯 달 된 아이를 뱃속에 넣고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엄마의 말을 따라 랄라 누나도 빈정거렸다.
"그런 각본을 짜느라 길가에 오래 있었구만."
"가서 자, 요 망할 녀석아."
나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침대에 엎드렸다. 운 좋게도 아버지는 카드놀이 하러 나가시고 안 계셨다. 나는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 데는 역시 침대가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울음을 삭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독사뱀이 거기에 그대로 있다면 그것을 샤쓰속에감추어 올 작정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다른 곳에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뱀은 없었다.
앞으로는 그 독사뱀 같은 스타킹을 구하기란 매우 힘들 것 같았다.
난 그걸 찾는 걸 포기해 버리고, 진지냐 할머니 댁으로 에드문드 아저씨를 찾아 놀러갔다. 아저씨에게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직자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일찍 왔으니 아저씨는 트럼프 놀이를 하러 나가지도 않았을 테고, 소변을 보러 나가시지도 않으셨을 거야.
그리고 신문 사러도 안 갔을 거야. 아저씨는 응접실에서 카드로 새로운 재수패 떼기를 하고 계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저씨?"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니 일부러 못 들은 척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선 누구나 말하기 싫을 때는 그렇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하고만은 그렇지 못 할 걸, 절대로 내 앞에서는 귀머거리가 될 수가 없었다. 난 아저씨가 늘 하고 계신 흰색과 검정색 체크 멜방이 드러나도록 아저씨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으응, 너 왔구나."
아저씨는 여태 나를 못 보셨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지금 아저씨가 하고 있는 건 무슨 카드놀이예요?"
"렐로지우라는 놀이란다. 이것은 운수를 알아보려고 혼자 떼어보는 놀이야."
"참 재미있겠네요?"
"재미있구 말구."
나는 트럼프 카드의 모든 그림을 다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J'무늬의 그림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J'의 그림만은 왕의 종놈 마냥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할 얘기가 있어요."
"다 끝나간다. 조금만 기다려 이걸 마치 끝내고 얘기하자."
아저씨는 카드를 자꾸 섞으셨다.
"떨어졌나요?"
"아니."
아저씨는 카드를 높다랗게 쌓아 옆으로 밀어 놓으셨다.
"자, 끝났다. 제제. 그래 할 얘기란 돈에 관한 얘기냐?"
"구슬을 사려고 그러는데요."
"구슬 살 돈이라! 어디 보자."
아저씨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나는 그 손을 급히 잡았다.
"아저씨, 그 말은 농담이에요."
"그럼 뭐지?"
아저씨는 내가 너무도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전에 내가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과 하루가 다르게 사물을 깨우쳐 가는 것을 대견스레여기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씨는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요?"
"그게 무슨 말이지?"
"자, 보세요."
나는 '조그만 오두막'을 불러 보였다.
"네가 지금 노래를 불렀단 말이냐?"
"그럼요, 저는 밖으로 소리내지 않고도 마음속으로 노래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아저씨는 싱겁다는 듯이 웃으셨다. 그러나 난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궁금했다.
"아저씨!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는 제 가슴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어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 왔었어요. 그 새는 진짜로 가끔 노래를 부르곤 했었지요."
"네가 그런 새를 갖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야."
"아저씨는 이해 못하실 거예요. 그러나 문제는 제가 지금 그 믿기 어려운 새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마음속으로 통해서 볼 때나, 얘기할 때에도 그래요."
아저씨는 내 말을 이해하셨는지 내가 혼동하는 것을 보고 웃으셨다.
"설명해 주마, 제제, 그게 뭔지 알겠니?그건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네가 더 크면 네가 말하고 보는 일들을 '생각'이라고 하게 된다. 네가 곧 '생각'이라는 걸 갖게 될 거라구 전에 얘기한 적이 있었지?"
"그럼 철들 나이란 얘기인가요?"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렇게 되면 이제 점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단다.
그 생각이 차차 자라서 또 성장하여 한평생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을 돌보게 되는 거지. 그 때는 네 눈이 다시 뜨여 인생을 아주 새롭게 살게 될 거야."
"알겠어요, 그런데 작은 새는 뭐예요?"
"그 작은 새는 하나님이 어린애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고 만드신 거야. 그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는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해.
그러면, 하나님은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른 꼬마에게 주시지. 아주 아름다운 일이지?"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아주 흐뭇하고 즐거워서 웃었다.
"그래요, 아름다운 일이에요, 이젠 가보겠어요."
"돈은?"
"오늘은 필요 없어요. 전 지금 매우 바쁘게 됐거든요."
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때 아주 슬픈 옛일이 생각났다.
언젠가 또또까형은 작은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그 새는 기이 잘 들어서 형이 손바닥에 먹이를 놓아주면 손으로 올라와 먹을 정도였다.
또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또또까형은 새를 햇볕에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새는 내리쬐는 햇볕에 의해 죽고 말았다. 그래서 또또까 형은 그 죽은 새를 손에 올려놓 고 얼굴을 비벼대며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형은 말했다.
"난 다시는 새를 기르지 않겠어!"
나도 곁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또까형 나도 기르지 않을 거야!"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밍기뉴에게로 갔다.
"슈르르까(밍기뉴의 애칭) 한 가지 일을 하려고 왔어."
"뭔데?"
"잠깐만 기다려 봐."
"그래."
난 오렌지나무 옆에 앉아 머리를 그의 몸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제제, 우리가 뭘 기다리고 있지?"
"구름이 한 점 지나가기를."
"뭘 하려고?"
"내 작은 새를 날려보내려고 그래."
"그래, 그렇게 해. 새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우리들은 함께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저기 좀 봐, 밍기뉴!"
흡사 흰 종이를 곱게 펼쳐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구름 한 덩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야! 바로 저기야, 밍기뉴!"
나는 흥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샤쓰 앞자락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나의 메마른 가슴으로부터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아라, 내 작은 새야, 높이높이 날아라! 그래서 하나님의 손끝에 날아가 앉아라.
하나님은 널 또 다시 다른 아이에게 보내 주실 거야. 그러면 넌 날 위해 그랬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야. 잘 가라 내 어여쁜 새야!"
왠지 가슴이 허전해 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 영영 가실 것 같지 않았다.
"저것 봐, 제제. 새가 구름 위에 앉았어!"
"너도 보았니, 슈르를까?"
나는 머리를 밍기뉴 가슴에 기대고 구름이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작은 새와는 늘 친했는데...."
나는 머리를 밍기뉴 가슴에 마주 대었다. 그리고 밍기뉴로부터 돌아섰다.
"슈르르까!"
"응?"
"울면 흉해 보일까?"
"우는 건 결코 흉한 게 아니냐, 왜 그래?"
"모르겠어, 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봐. 가슴이 텅 빈 것 같애."
글로리아 누나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손톱 좀 보자."
내가 손을 내밀자 누나는 검사를 하였다.
"귀 좀 보자."
"아이 더러워, 제제."
누나는 나를 세면장으로 데리고 가서는 수건에 비누를 묻혀 깨끗이 닦아주었다.
'난 삐나제 인디언의 전사가 이렇게 더럽게 하고 다닌다는 얘긴 결코 들어 본 적이 없어! 자 이젠 옷을 갈아입자."
옷장 서랍을 샅샅이 뒤적이며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전부 찢어
지고, 기우고 짜깁기 한 것들 뿐이었다.
"누구에게 물어 볼 필요도 없지, 이 서랍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지독한 장난꾸러기라는 걸 알 수 있어, 이걸 입어 봐, 그래도 이게 제일 낫다."
이제 나와 누나는 앞으로 내가 찾게 될 '놀라운 기적'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왔다.
우리가 초등학교 가까이 갈 쯤 다른 많은 아이들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로 오고 있었다.
"제제, 앞으로 말썽부리지 마, 내가 한 말 꼭 명심해. 알았지?"
우리는 아이들로 가득 찬 교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애들은 서로 뜯어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누나와 함께 교장실로 들어갔다.
"아가씨 동생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시내에 일하러 가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녀는 나를 요모조모를 뜯어보았다. 안경이 굉장히 두꺼워서 그런지 눈이 매우 크고 까맣게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에는 남자처럼 수염이 나 있었다. 그래서 교장이 됐는 지도 모른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
"나이에 비해 허약한 편이라서 그래요. 그래도 벌써 글을 읽을 줄 안답니다."
"얘야, 몇 살이지?"
"이월 이십 육일이면 여섯 살이 됩니다."
"그래, 똑똑하군. 여기 카드를 작성해야 돼요. 먼저 부모 이름부터 말하세요."
글로리아 누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 이름은 단지 '에스떼화니아 데 바스콘셀로스'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엄마의 이름을 바로잡았다.
"에스떼 화니아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입니다."
"뭐라고?"
글로리아 누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삐나제예요. 어머니는 인디언의 딸입니다."
나는 그것이 무척 자랑스러웠고, 그것은 이 학교 전체에서 인디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마 나뿐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속이 끝나고 서류에 서명을 한 뒤에도 글로리아 누나는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무슨 딴 일이라도 있나, 아가씨?"
"저, 교복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교장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 아버지는 지금 실직 중이시고, 그래서 우린 매우 곤란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교장이 내 키와 치수를 알아보기 위해 날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을 때 옷의 기운 부분이 드러나 가난은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대강 치수를 적어주며 에울라리아 부인을 찾아가 보라고 말했다.
에울라리아 부인도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제일 작은 치수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병아리가 긴 바지를 입고 있는 꼴이었다.
"이게 제일 작은 것인데도 네게는 너무 크구나."
"저희가 가져가서 줄이겠어요."
우리는 교복을 선물로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 새 교복을 입고 학생이 된 내 모습을 봤을 때 밍기뉴의 표정은 어떨까?
나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밍기뉴에게 얘기해 주었다.
"학교의 큰 종이 울리면 ....그렇다고 성당의 종소리보다 크지야 않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달려가 자기 선생님 앞에 모여.
그렇게 자기 반을 찾으면 선생님은 우리들을 네 줄로 나란히 맞춘 뒤 교실로 데리고 가거든.
그런데 혼자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한단다.
그 다음 학생들은 각각 자기 걸상을 찾아 앉고 책상에는 여닫는 서랍이 달려 있고, 그 안에 학용품을 넣어 두지.
그리고 맨 처음 배우는 것은 국가를 배운단다. 우리 선생님께선 훌륭한 브라질 국민이 되고 애국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 깊이 국가를 새겨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노래를 배울 때는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 밍기뉴! 노래를 완전히 다 배우면 불러 줄게, 밍기뉴, 응...."
매일 새로운 생활이었다. 친구도 사귀고 싸움도 했다.
그런 중에도 새로운 일들을 자 꾸 알게 되었다.
"야, 그 꽃 어디 갖고 가니?"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손에는 예쁜 포장을 한 노트와 책이 들려 있었다. 머리는 두 갈래로 곱게 따 내렸다.
"우리 선생님 드리려고."
"왜?"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은 꽃을 갖다드리거든."
"남자 애들도 그런 것 할 수 있니?"
"선생님을 좋아한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 그래?"
"그럼."
하지만 우리 담임이신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을 위해선 그 누구도 꽃을 가져오는 아이가 없었다.
아마 선생님이 못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선생님 눈 위에 작은 점 하나만 없었어도 그다지 못나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교실 탁자 위엔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건만, 우리 선생님 탁자 위엔 빈 꽃병만 홀로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점심시간이면 가끔 생과자를 사먹으라고 동전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셨다.
그 당시 나는 커다란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밍기뉴, 내 말 좀 들어 봐. 나 오늘 박쥐를 붙잡았어."
"루씨아노라는 것 말이니? 여기 뒤뜰 구석에 와 살라고 네가 말했던 박쥐 말야?"
"아냐, 바보야. 부르릉거리며, 다니는 박쥐 말야. 차가 학교 근처를 천천히 달리고 있으면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에 매달린단 말이야.
그 뒤에 타고는 멋진 여행을 하는 거야. 차가 모퉁이를 돌면서 딴 차가 오는가 보려고 아주 천천히 굴러갈 때 올라타는 거야.
그러나, 아주 조심해야만 돼. 만약 차가 속력을 내면 땅에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팔을 부러뜨리거든, 그런 박쥐 말이야, 알겠지!"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 쉬는 시간에 일어난 일 등을 낱낱이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내가 국어시간에 책을 잘 읽어 칭찬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밍기뉴는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레이뚜레이로(가장 책을 잘 읽는 아이라는 뜻) 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쭤 보고는 알게 되었다.
"다시 박쥐 얘길 해 줄게. 밍기뉴 얼마나재미있냐 하면, 너를 말처럼 타고 달릴 때 같았어."
"하지만 나를 올라탈 때는 위험하지 않잖아?"
"진짜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야. 넌 정말 미친 듯 서부를 달리면서 물소와 들소 사냥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잊었니?"
그는 말로써 날 당해 본 적이 없었고 말다툼을 할 능력도 없기 때문에 내 말을 인정해 야만 했다.
"그런데 밍기뉴, 애들이 넘보지 못하는 차가 하나 있어. 뭔지 아니? 포르투갈 사람인 마누엘 빌라다리스 씨의 차야. 넌 그렇게 나쁜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니? 아주 좋지 않은 이름이지? 마누엘 발라다리스...."
"그래,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모를 줄아니?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당분간은 안돼. 좀 더 말타기 연습을 한 후에 모험을 한 번 해보는 거야!"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나는 선생님의 꽃병에 꽃을 꽂아 드렸다. 선생님은 기쁜 나머지 날더러 신사라고 불러 주었다.
"밍기뉴, 신사가 무슨 뜻인 줄 아니? 신사란 왕자처럼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뜻이야."
나는 수업에도 점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에선 날 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글로리아 누나는 아마 내가 서랍 속에 악마를 가둬 버렸나 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딴 아이로 변해 간다고 놀려 주기도 했다.
"너도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니, 밍기뉴?"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래? 그럼 비밀 얘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그만 두겠어."
나는 실망의 눈빛을 보이고 있는 밍기뉴를 남겨 둔 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별로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의 화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비밀이란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가슴은 조바심으로 들떠 있었다.
공장에서는 사이렌이 울리고, 이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대문 앞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여름의 낮은 얼른 밤을 가져오지 않았다.
잔디라 누나는 혹시 풋과일을 먹고 배탈이 난 것은 아니냐고 물어 보기까지 했다. 피곤에 지쳐 보이는 엄마의 얼굴이 저쪽 길모퉁이에서 나타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엄마 이제 오는 거야?"
나는 엄마의 손에 키스를 했다. 거리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엄마의 피곤한 모습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힘들지, 엄마?"
"그렇단다. 기계가 어떻게나 더운 열을 뿜어 대는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단다."
"엄마, 가방 이리 줘."
나는 빈 도시락이 든 가방을 받아들었다.
"오늘도 장난 많이 쳤니?"
"조금밖엔 안 쳤어요, 엄마."
"그런데 왜 우리 아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어머니는 이미 눈치를 챈 듯이 보였다.
"엄마, 엄만 그래도 날 조금은 사랑하시지요."
"그렇구 말구, 형이나 누나들과 똑같이 사랑한단다. 그런데 별안간 왜 그러니?"
"엄마, 나르딘뉴 아시죠? 저 빠다 쇼까 아줌마의 조카애 말이에요."
어머니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럼 알고 말고!"
"엄마 그럼 됐어요. 그 애 엄마가 그애한테 멋들어진 옷 한 벌을 맞춰 주었거든요.
초록에다 흰줄이 박힌, 목에는 단추가 있고 칼라도 있어요.
그런데 그 옷이 그 애한테는 좀 작대요. 입을 만한 동생도 없고 해서 그걸팔려고 한 대요. 엄마, 그걸 나 사주세요."
"아이구, 그건 너무 어려운 청이구나."
"그렇지만, 돈은 두 번에 나누어 줘도 된대요. 그렇게 비싸지도 않잖아요. 그런 옷은 다시는 살 수 없잖아요?"
나는 기회주의자 야곱의 말을 자꾸 빌어 썼다. 어머니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 나는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 하는 아이가 됐어요. 선생님께선 나를 특출나다고 말씀하셨어요.
사 주세요, 엄마. 난 한 번도 새옷을 가져 본 적이 없잖아요?"
엄마의 침묵은 나를 몹시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엄마, 만약 그 옷을 못 사면 난 평생 시인의 옷을 가질 수가 없게 돼요.
그걸 사주신다면 랄라 누나가 비단 헝겊으로 큰 나비 넥타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알았다, 얘야. 엄마가 일을 더 해서라도 그 옷을 사 주마."
나는 엄마의 손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 손을 얼굴에 댄 채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토록 갖고 싶었던 시인의 옷을 갖게 되었다.
어찌나 예뻣는지 에드문드 아저씨는 나의 의젓한 모습을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사진관에 데려가 주시기까지 하셨다.
학교와 꽃, 꽃과 학교.....
한동안 모든 일이 순조로웠으나, 고도후레도씨가 우리 교실에 들어와 세실리아빠임 선생님께 실례를 청하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내가 얼핏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단지 꽃병의 꽃을 가리켰다는 것이었다.
그가 돌아간 후 선생님은 슬픈 얼굴을하시며 날 바라보셨다. 수업이 끝난 뒤에 선생님은 나를 부르셨다.
"할 얘기가 있다. 제제! 잠깐 기다려라."
선생님은 핸드백에 달린 장식 고리를 만지작거리며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내게 말할 용기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마침내 선생님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고도후레도씨가 네게 관한 좋지 않은 얘길 하셨단다. 제제, 그게 사실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꽃 말이지요? 네 사실이에요, 선생님!"
"왜, 그런 짓을 했니?"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는데 세르지뉴 씨 댁 정원을 지나오게 되었어요.
그때 대문이 살짝 열려져 있어서 재빨리 뛰어 들어가 그 꽃을 꺾었어요.
하지만 꽃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표시도 안 났어요."
"알아요, 제제. 그러나, 그건 옳지 못한 짓이란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건 도둑질임에 틀림없는 짓이에요."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이세상은 하나님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꽃도 역시 하나님 것이잖아요."
선생님은 논리적인 나의 말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전 다만 선생님 책상에 꽃을 꽂아 놓고 싶었을 뿐이에요. 저희 집에는 정원이 없거든요.
꽃을 사려면 돈이 들고.. 전 선생님 책상이 늘 비어 있는 게 가슴아팠어 요."
선생님은 마른침을 삼켰다.
"가끔, 선생님께선 제게 생과자를 사 먹으라고 돈도 주시잖아요. 그렇잖아요...?"
"난 매일 주고 싶었지만, 넌 늘 도망가곤 했잖니....?"
"전 매일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왜지?"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애가 또 있단 말이에요."
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고는 눈물을 슬쩍 닦으셨다.
"선생님도 꼬루징냐를 아시잖아요?"
"꼬루징냐가 누구더라?"
"저보다 더 작은 깜둥이 여자 아이 말이에요. 머리를 돌돌 감아 야자 열매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끈으로 묶은 아이 말이에요."
"응, 알겠어. 도로띨리아 말이구나."
"네, 선생님 바로 그 애예요. 다른 애들은 그 애랑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요.
가난뱅이구 깜둥이라고 해서요. 그 애는 늘 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있어요. 선생님이 주신 돈으로 생과자를 사서 그 애랑 나누어 먹었어요."
선생님께서 이번엔 아주 오래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저 대신에 그 애에게 돈을 주셔야 해요. 그 애 엄마는 남의 빨래를 해 주고 먹고살아요.
또 애들도 열 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아직 모두 어린이들이래요. 우리 진지냐 할머니께서도 언제나 토요일이면 콩과 쌀을 갖다 주곤 해요.
그래서, 저도 어머니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과 나눠 가져야된다고 제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저도 그 애와 나눠 먹은 거예요."
선생님은 아예 울고 계셨다.
"전 선생님을 그렇게 슬프게 해 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약속할게요. 앞으로는 그런 짓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겠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란다."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넌 아주 착한 마음씨를 가졌구나. 제제. 그리고,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
"네, 약속할게요. 하지만 선생님께 거짓말을하고 싶진 않아요. 집에서의 저는 그리 좋은 아이는 아닌가 봐요. 그걸 선생님은 모르셔서 그렇지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다. 내가 보기엔 넌 아주 착한 애란다. 앞으로 꽃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얻어오는 거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약속하겠니?"
"네, 선생님 하지만 저 꽃병은 언제나 비어 있어야 하나요?"
"저 꽃병은 결코 비어 있는 게 아니란다. 난 저 꽃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내게 그런 꽃을 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학생인 제제, 바로 너였고, 그럼 됐지?"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황금의 마음씨를 가진 아이야....'
"잘 가라."
**아~ 제제는 너무나 고운 마음을 지닌 천사입니다...
제제의 이름을 빌려 쓰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이렇게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가 또 있을까요..
오늘은 기쁨의 눈물이 흐를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