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틀림없이 그 박쥐는 꼭 갈 것이다. 늦게 갈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어느 날엔 가는 꼭 너의 집을 찾아 갈 거야."
"이미 우리가 살게 될 그 집의 주소를 가르쳐 주었어요."
"그렇다면 더욱 쉬운 일이지. 만약 그 박쥐가 가지 않으면 그건 다른 약속 때문일 거야. 그럴 땐 자기 형제나 친구를 보낼 게다. 그래도 넌 다른 박쥐라는 것을 알아내지 못할게다."
그래도 걱정이 됐다. 만일 박쥐가 글을 모른다면 집 주소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박쥐도 작은 새나 사마귀나 혹은 나비들에게 물어서 올 수 있을까?
"걱정 마라. 제제. 박쥐는 방향감각이 뛰어나니까."
"아저씨, 뭘 갖고 있다고요?"
아저씨는 방향감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난 점점 더 아저씨의 지식에 경탄을 갖게 되었다.
걱정거리를 해결하고, 난 모두들 궁금해하는 이사 얘기를 해 주려고 거리로 나왔다. 어른들은 대체로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너희 이사한다면서, 제제? 잘됐다. 다행이야. 한시름 놨겠구나."
하지만 기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비리끼뉴였다.
"다른 데로 이사하더라도 잘 지내자 사이좋게 지내자."
"응."
"그런데 내가 말했던 거 생각해 봤니?"
"언제지?"
"내일 8시 '방구'오락장 중문에서 있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인이 장난감을 한 트럭 사오라고 했대."
"너도 같이 갈래?"
"루이스를 데리고 갈게. 그런데 나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이야."
"그럼 이렇게 작은데, 넌 네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니?"
그는 내게 다가와 섰다. 그래서 난 내가 아직 작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크지 않다는 것을.
"정말 얻을 수 있을까?"
"얻을 거야. 내일 거기서 만나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글로리아 누나 곁을 맴돌았다.
"또 뭐니?"
"누나가 우릴 좀 데려다 줬으면 좋겠어. 장난감을 잔뜩 실은 트럭이 내일 시내에 온 데."
"이봐, 제제, 난 할 일이 태산 같이 밀려 있어 옷도 다려야 하고, 잔디라 언니의 이삿 짐 싸는 것도 도와야 하고,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도 봐야지...."
"한 소대의 사관생도들이 레알렝고 시에서 온대"
누나는 루디라고 부르는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의 사진을 노트에 모으는 거 말고도 사관생도하면 무조건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침 여덟 시에 사관생도들이 온다는 걸 누구에게 들었니?"
"날 바보로 만들려고 요것아! 나가 놀기나 해 제제!"
난 나가지 않았다.
"알잖아, 고도이아?"
"난 괜찮아."
"하지만 루이스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그 앤 아직 어리잖아."
"애들은 온통 크리스마스 생각뿐이란 말이야."
"제제, 내가 못 간다고 몇 번 말했니?"
"게다가 거긴 말뿐이지. 진짜 가고 싶어하는 건 너잖아. 살자면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찾아와."
"만일 죽게 된다면? 그럼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지 못하게 되는 거야."
"넌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아 넌 아마 에드문드 아저씨나 베네릭투 씨의 두 배는 더 살 걸 자 이제 그만하고 나가 놀아."
그래도 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성가시게 굴었다. 누나가 옷장에 뭘 가지러 가면 흔들의자에 앉아 애원하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면 뭔가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세면장에 물을 푸러 갔다.
그래서 나도 따라가 문지방에 앉아 쳐다보았다. 또 빨랫감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는 누나를 뒤따라 들어가 손으로 턱을 받치고 침대에 앉아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누나는 화를 냈다.
"이것 봐 제제, 몇 번이나 못 간다고 그랬니, 제발 좀 약 올리지 말고 나가 놀아."
그래도 난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누나가 날 두 손으로 움켜쥐고 문밖으로 끌고 가서 뒤뜰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하고 누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부엌문을 닫아걸었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누나가 지나다니는 문과 창문 앞으로 쫓아다니며 약을 올렸다. 누나는 먼지를 털고 침대 정리를 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창문마저 닫아 버렸다.
내가 볼 수 없도록 집안 문을 온통 잠궈 버린 것이다.
"야, 이 바보야! 악마 같은 고양아! 넌 생전 사관생도와 결혼도 못해 버려라. 가죽 장 화도 닦을 여유도 없는 졸병과 결혼해 버려라."
난 괜히 시간 낭비만 한 것 같아 다시 밖에 나가 놀기로 했다.
밖에선 나르디뉴가 장난을 치고 있었으며, 그는 웅크리고 앉아 넋이 빠진 듯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여태까지 내가 본 적이 없는 큰 딱정벌레를 성냥갑에 묶어 수레놀이를 하고 있었다.
"야!"
"굉장히 크지, 안 그래?"
"이 것하고 바꾸자."
"그게 뭔 데?"
"그림 딱지야."
"몇 장?"
"두 장."
"야, 우습다. 우스워. 이런 딱정벌레와 딱지 2장이라니."
"그까짓 딱정벌레는 우리 에드문드 아저씨네 담장에도 많이 있어."
"세 장 주면 바꾸겠어."
"좋아, 고르긴 없기야?"
"그럼 싫어, 적어도 두 장은 골라야지 뭐."
"좋아."
나는 여러 장 있는 '라우라 라쁠라체'의 그림 딱지를 한 장 주었고, 그는 '후드 깊슨'과 '빠느머 루드밀러'를 골랐다. 난 딱정벌레를 주머니에 넣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세면장으로 가 그의 얼굴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나도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동생의 옷을 갈아 입혔다.
그리고 신발도 신겨 주었다.
양말은 너무 시간이 걸려서 신겨 주지 않았다.
그의 파란 윗도리의 단추를 잠가 주고 머리도 빗겨 주었다.
그러나 머리는 좀처럼 차분히 갈아 앉지 않아 어떻게 해야 될지 궁리를 하다 부엌으로 가 손에다 돼지기름을 조금 묻혀와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내가 루이스 머리에다 돼지기름을 문지르고 빗질을 하니 머리는 아까보다 훨씬 단정하게 되었다.
조그만 머리통이 꼭 등에 양털을 뒤집어 쓴 '성조앙'처럼 보였다.
"머리에 손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도 옷을 입어야지."
바지와 흰 샤스를 입으면서도 동생만 바라보았다.
"굉장히 멋있구나! 이 '방구'시에서 너 만큼 멋있는 얘는 없을 거야."
나는 내년에 학교에 입학할 때에 신어야 할 운동화를 신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루이스만 바라보았다. 아주 깨끗하게 단장해 놓아서 그런지 마치 어린 시절 예수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루이스는 선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장담할 수 있어. 루이스를 보는 사람들은....
나는 약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로리아 누나가 돌아와 상을 차리고 있었다.
빵을 사 온 날에는 포장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가 있었다.
난 루이스의 손을 잡고 누나 앞으로 갔다.
"얘 아주 멋있지, 누나? 내가 해 줬어."
난 누나가 화를 낼 줄 믿었으나, 글로리아 누나는 몸을 문에 기대고 천장만 쳐다볼 뿐 이었다.
누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너도 아주 멋있어, 오 제제! ...."
누나는 내 머리를 가슴에 안아 주었다.
"오! 왜 산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힘들기만 할까?"
누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차림새를 고쳐 주었다.
"난 너희들을 데려다 줄 수 없다고 말했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할 일이 많아. 우선 식사를 하면서 생각해 보자. 난 가고 싶어도 몸치장할 시간도 없어."
누나는 손잡이가 달린 컵을 갖다 놓고 빵을 잘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애처로운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까짓 선물을 얻고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니, 게다가 그들이 가난뱅이에게 좋은 선물을 줄 리도 없고."
누나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래, 단 한 번의 기회일지도 몰라. 너희들이 간다니 말릴 수도 없고, 어쩌지?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내가 손을 꼭잡고 데리고 가면 되잖아. 고도이아, '리오-상파울로'간선도로도 건널 필요가 없어."
"그래도 위험해."
"아냐, 괜찮아 난 방향감각이 있단 말이야."
누나는 걱정 속에서도 빙그레 웃었다.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 주데?"
"에드문드 아저씨께서, 아저씨께서 말씀하시길 루씨아노는 방향감각이 있대.
그리고 루씨아노가 작은 걸 갖고 있다면 난 더 큰 것을 갖고 있다고 하셨어."
"잔디라 언니와 얘기해 볼까?"
"시간 낭비야. 그냥 내버려 둬. 잔디라 누나는 아무것도 간섭하려 하지 않아."
"이렇게 하자.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만약 그쪽으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들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게."
늦을 까봐 빵 먹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한 참 후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체부 빠이샹 씨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모자를 흔들며 누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누나는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글로 리아 누나는 루이스에게 키스하고 내게도 키스해 주었다.
누나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웃음을 띄운 채 말했다.
"사관생이 어떻고 장화가 어떻다고..."
"거짓말이었어. 그건 진심이 아냐. 누나는 어깨에 별이 많은 공군 소령하고 결혼하게 될 거야."
"왜 너희들은 또또까와 함께 가지 않니?"
"또또까 형은 그런데 가기가 싫대. 우리가 '짐이 되니까 그런 거야."
우리는 출발했다. 빠아샹 씨는 우리를 앞세워가며 집집마다 편지를 배달해 주었다.
그리곤 발걸음을 재촉해 우리를 빨리 데려다 주기 위해 마음써 주셨다.
그리고 한참 걸었을까? '리오-상파울로' 간선도로에 다다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난 매우 바쁘단다. 너희들 때문에 일이 자꾸 늦어져요. 그러니 이젠 위험한 길도 없으니 너희들끼리 이쪽으로 계속 가도록 해라."
그리곤 편지 가방을 맨 채, 급히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괜히 화가 치밀었다.
바보 같은 녀석! 글로리아 누나에겐 우릴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이제 와서 두 어린앨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가겠다는 건가!
나는 루이스의 손을 더 꼭 잡고 걸었다. 루이스는 지친 기색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걸음도 느려졌다.
"가자, 루이스, 다 왔어. 장난감을 갖게 되는 거야."
그러자 좀 힘을 내는 것 같더니 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다리 아파, 제제 형."
"조금 업어 줄까, 응?"
그는 팔을 벌리며 내게 업혔다. 그는 마치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쁘로그레수'거리에 도착했을 땐 오히려 내 쪽이 지쳐 버렸다.
"조금만 걸어가."
교회의 종소리가 여덟 시를 알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거기에 일곱시 삼십 분까지 가야만 했는데, 하지만 걱정마. 사람이 많이 왔었다고 해도 장난감은 남았을 거야. 트럭으로 가득 가져온다 잖아.
"제제 형 발이 아파."
나는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끈을 약간 느슨하게 하자."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겨우 시장 근처에 다다랐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지나 '방구'오락장으로 향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우리가 거의 죽을상이 되어 도착했을 때는 거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장난감을 쌌던 포장지만이 구겨진 채 흩어져 있었다. 나는 몹시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오락장의 문을 닫고 있는 꼬끼뉴 씨 곁을 갔다. 그리고 당황한 얼굴로 꼬끼뉴 씨에게 물었다.
"벌써 다 끝났나요?"
"조금 전에 다 끝났다. 제제 너무 늦었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단다."
그는 문을 닫으며 빙그레 웃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단다. 내 조카들 줄 것도 남기지 못했단다."
그리고 문을 닫고 길거리로 나왔다.
"내년엔 좀 일찍 오도록 해라. 요 잠꾸러기들아!"
"걱정 마세요."
사실은 무척 속상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 좀 앉아. 좀 쉬어야 겠어."
"목말라, 제제 형."
"조금만 참아 로젬버르크 씨 댁 앞을 지날 때 물 한 컵 얻어줄게."
그때서야 동생은 모든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 챈 듯했다.
말도 하지 않더니 입을 삐쭉 내민 채 날 흘겨보았다.
"걱정마, 루이스, 너 내 달빛 망아지 알아? 내가 또또까형에게 손잡일 고쳐 달라고 부탁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줄게."
그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울지마, 울지 마라. 넌 왕이야, 아버지께서 네게 루이스란 세례명을 주신 건 그게 왕의 이름이기 때문이었어.
왕이 길바닥에서 우는 것 봤니? 더군다나 사람들 앞에서, 응?"
나는 동생의 머리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이 다음에 크면, 마누엘 빌라다리스 씨의 차처럼 멋진 차를 사 줄게. 오직 너만 갖게 하겠어."
"자, 이젠, 왕은 울지 않는 거니까, 너도 울지 마, 응?"
내 가슴은 어둠 속에서 폭발할 것만 같았다.
"꼭 사 줄 것을 약속할게."
"사람을 죽이거나 훔치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 맘 속의 작은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내 가슴이 하는 것이였다.
왜 이래야만 할까? 왜 착한 아기 예수는 나를 싫어하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 도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할까? 내가 악마 같아서 벌을 주는 건가?
만약 벌을 주는 것이라면 왜 내 동생 루이스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 걸까?
이렇게 천사 같은 루이스에겐 온당치 않은 일이잖아. 하늘에 사는 천사도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할 텐데..... 그러자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제 형, 울어?"
"아냐, 그냥 흘러내리는 거야. 게다가 난 너처럼 왕도 아니잖아. 난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아이잖아. 난 너무 나쁜 앤가 봐. 정말 못 된 아이. 그래서 그래."
"또또까 형, 새 집에 자주 가?"
"아니, 넌?"
"틈만 나면 자주 가."
"왜?"
"'밍기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밍기뉴'란 또 어떤 악마냐?"
"내 라임오렌지나무야."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 넌 그런데는 천재성이 있어."
형은 빙그레 웃으며 내 새로운 '달빛'망아질 상상해 보는 것 같았다.
"그래 그 나무는 어떻든?"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 같아."
"그러게 자주 쳐다보면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거야."
"예뻐졌겠지?"
"그렇다면 넌 또 손잡이를 만들어 달라겠구나?"
"응, 또또까형은 뭐든지 잘 만들잖아."
"응?"
"형은 새장, 닭장, 울타리, 문도 만들 수 있잖아."
"그건 모든 사람이 나비 넥타이를 맨 시인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야. 그러나 네가 할 마음만 먹으면 너도 배울 수 있어."
"난 못할 거야. 그런 걸 하려면 소질이 있어야 해."
형은 하던 말을 잠깐 멈추고 에드문드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신 걸 부정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부엌에서는 진지냐 할머니께서 포도주에 적신 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만찬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또또까 형에게 불평했다.
"저기 봐, 저것마저 없을 뻔했다. 내일 점심에 과일 샐러드를 만들도록 돈을 주신 분도 에드문드 아저씨란 말이야."
또또까형은 '방구'오락장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열심히 일을 해 주고 있었다. 적어도 루이스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도 내가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을.
"또또까형"
"말해 봐."
"크리스마스날 우린 정말 선물을 못 받을까?"
"아마 그럴 거야."
"솔직히 말해 봐! 형도 내가 다른 사람들 말처럼 내가 그렇게도 악질이라고 생각해."
"악질은 아니냐. 문제는 네 핏속에 악마의 기질이 조금 붙어 있다는 거야."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그 악마가 나가 주었으면 좋겠어.
난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나에게 악마 같은 아이 대신에 아기 예수가 태어났으면 좋겠어."
"혹시 아니, 내년쯤 태어날지?"
"뭐든지 그렇게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말고 나처럼 해."
"어떻게?"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렇게 하면 실망도 하지 않거든. 아기 예수란, 사람들이 말하듯 그렇게 좋은 것만도 아니냐. 신부님도 꼭 천주교리가 가르치는 대로하시진 않잖아?"
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야 좋을 지 망설였다.
"무슨 소리야?"
"좋아, 말하지. 너는 아주 장난이 심해서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치자, 하지만 루이스는?"
"천사 같아."
"그럼 글로리아 누나는?"
"마찬가지야."
"그럼 난?"
"좋아, 하지만 가끔 내 물건을 뺏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착한 편이야."
"랄라 누난?"
"좀 아프게 때리긴 하지만, 좋아. 언젠가 내 나비 넥타이를 만들어 줄 거야."
"그리고 잔디라 누난?"
"그저 그래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어머닌?"
"너무 좋아! 날 때리실 때도 불쌍히 여겨 살살 때리시거든."
"아버지는?"
"글세 잘 모르겠어. 아빠는 운이 없는 것 같아. 아빠도 나처럼 식구들 중에서 악마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 식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왜 아기 예수는 우리에게 잘 해 주지 않느냔 말야?
화울랴베르 박사 댁엘 가 봐. 먹을 것이 가득 찬 커다란 식탁이 있어. 빌라느보아스 댁도 그래. 라이문드 빠스 박사 댁엔 말도 말아."
난 생전 처음으로 또또까형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난 아기 예수가 단지 선보이기 위해서만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해. 자라서는 부자들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았던 거야. 이젠 이런 얘기 그만 두자, 이런 말하면 죄가 된대."
형이 풀이 죽어 더 이상 말을 못했다. 그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망아지만 쓰다듬고 있었다.
그날 우리 식구들은 다시는 맞고 싶지 않은 울적한 만찬을 대하고 있었다.
축복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우리고, 모두들 말없이 식사를 했으며, 아버지는 구운 빵을 조금 입에 댔을 뿐이였다.
우리 식구들 중 자정 미사에 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입을 열려는 사람조차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아기 예수 탄생의 축복된 날이 우리 집에선 마치 추도식날 같았다.
아버지는 모자를 집으시고 슬리퍼를 신으신 채 축복의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그대로 나가 버리셨다.
난 아버지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조차 못하시는 것을 약간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냐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에드문드 아저씨께 돌아가자고 말씀하셨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또또까형과 내게 오백 레이스 짜리 은전을 쥐어 주셨다.
아마 더 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돈은 시내에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려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저씨를 껴안아 드렸다. 그것이 유일한 성탄절 밤의 포옹이었다.
어머니는 살며시 방으로 들어 가셨다.
아마 숨어서 울고 계시는 것이 분명했다. 모두 울고 싶은 심정 들이였다.
랄라 누나는 에드문드 아저씨와 진지냐 할머니를 대문까지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두 분은 너무 늙으셔서 만사에 지쳐버린 것 같아!"
가장 슬펐던 일은 소리 없이 깊어 가는 성탄절의 밤을 행복의 소리로 가득 채워, 멀리 멀리 흘러 넘치게 하는 성당의 종소리가 우리를 더욱 침묵 속으로 몰아넣고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만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글로리아 누나는 울었는지 충혈된 눈을 불빛에서 피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또까형과 나에게 말했다.
"자, 이제 너희들은 자야 할 시간이야, 어서 자야지."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글로리아 누나는 이미 커다란 슬픔을 맛본 우리를 이제는 단순한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 모든 슬픔은 '라이트' 전기회사가 전기를 끊어 버려서 대신 켜놓은 등불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든 어린왕 루이스였다.
나는 이 녀석의 발 밑에 망아지를 놓아주었다. 귀여운 루이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강물이 조용히 흐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 귀여운 꼬마 녀석아....."
온 집안이 어둠에 잠겼을 때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름에 구운 빵 맛있었지, 또또까형?"
"모르겠는데 먹지도 않았어."
"왜....."
"목에 뭔가 걸려서 아무것도 넘길 수가 없었어. 자 잠이나 자자. 잠들면 다 잊게 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 그러니, 제제?"
"문밖에 운동화를 내 놓으려고."
"차라리 그만두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래도 두고 올 테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또또까형! 난 선물을 갖고 싶어. 딱 하나. 아주 새 것으로 날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말이야."
형은 내게 등을 보이며 베개 밑으로 머리를 파묻어 버렸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또또까형을 불렀다.
"형 같이 보러 가자."
"난 가고 싶지 않아."
"그럼 나 혼자 가 보고 올게."
난 방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기대에 어긋나게도 운동화는 텅 비어 있었다. 또또까 형이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내가 뭐랬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꽉 차 있었다. 증오, 반항, 슬픔, 그것이었다.
그것은 저주인 것 같기도 했다.
난 나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운동화 쪽으로 눈을 돌리다 슬리퍼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눈은 슬픔으로 굉장히 커져 있었으며, 눈이 얼마나 커졌는지 마치 '방구' 시내 영화관의 화면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젖어 울 수조차 없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잠시 동안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시더니 묵묵히 지나가셨다.
우리는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옷장 위에 놓인 모자를 집어들고, 또 나가셨다. 그때서야 또또까형이 내 팔을 때렸다.
"넌 아주 나쁜 녀석이야, 제제. 뱀 같은 녀석...그러니까.... "
형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가 거기 계신 줄 몰랐어."
"나쁜 녀석, 양심도 없는 녀석. 오래 전부터 아버지가 실직하고 계시는 줄 너도 잘 알잖아. 그래서 난 어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식을 삼킬 수 없었던 거야."
"너도 이 다음에 아버지가 되면 이럴 때 얼마나 쓰라린지 알게 될 거야."
그러자 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몰랐어, 형. 정말이야."
"내 곁에서 꺼져, 넌 역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악질 녀석이야, 꺼져버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 아빠의 다리에 매달려 실컷 울고 싶었다.
난 역시 나쁜 녀석이라고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난 침대에 앉아서 여전히 비어있는 운동화만 바라보았다.
그것은 공중에 붕 떠 중심 없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마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그렇지 않아도 유난히 슬퍼하는 사람들에 게 나쁜 짓을 했나? 점심식사 땐 무슨 염치로 아버지를 뵌담? 난 과일 샐러드도 삼키지 못할 거야."
아버지의 커다란 눈이 영화관의 화면처럼 나를 공중에 매달려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그것은 더욱 커져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구두통을 발꿈치로 툭툭 차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지도 몰라,
나는 구두통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미 내 구두약은 다 써버렸기 때문에 또또까형의 구두통을 열고 검정 구두약 한 통을 내 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구두통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의 눈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눈에 한없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어른들은 자정미사와 만찬으로 아직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만이 거리에서 장난감을 서로 자랑하기도 하고 더러는 사기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모든 애들은 행복한데, 저 애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을 해 본 아이는 없을 거야.
나는 미제리아 이 포미(재난과 기아) 상점 근처에서 손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 상점은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열고 있었다.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서 누군가가 불러 주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노라니, 파자마를 입고 슬리퍼만 신은 사람들 뿐, 아무도 구두를 신은 사람은 없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없었고, 배고파 보이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고통에 비하면 배고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쁘로그레수' 거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로젬베르그 빵집 앞까지 왔으나 역시 허탕이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는데 벌이는 한푼도 못하고... 하지만 해야만 한다. 어떡해서든 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자, 어깨는 구두통의 끈 때문에 쓰라려 여러 번 바꿔 메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목도 타고 해서 시장 안에 있는 공동 수도로 가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 난 곧 내가 들어가게 될 초등학교 교문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구두 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온 몸의 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얼마쯤 됐는지 누군가 구두통을 툭툭치며 날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쳐다보니, 오락장의 문지기 꼬끼뉴씨였다.
"이봐, 구두닦이! 잠자며 어떻게 돈을 벌어?"
그리고 그가 구두통에 발을 올려놓자, 나는 먼저 헝겊으로 문질러 구두를 적셔 닦아낸 후 구두약을 조심스레 바르기 시작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바지를 좀 들어주세요."
그는 요구대로 해 주었다.
"오늘은 좀 닦았니? 제제."
"아뇨, 오늘 같은 날은 손님이 없어요."
"그럼 크리스마스는 어땠니?"
"별루였어요."
내가 손으로 구두통을 가볍게 치자 그 소리에 맞추어 발을 바꾸어 올려놓았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다른 쪽을 마저 닦고는 다시 구두통을 가볍게 두드리자 발을 내려놓았다.
"얼마지 제제?"
"이백 레이스예요."
"왜 이백 레이스만 받지? 모두 사백 레이스를 받는데."
"일류 구두닦이가 되면 그렇게 받겠어요. 그러나 당분간은 그렇게 못 받아요."
그는 오백 레이스 짜리를 꺼내 주었다.
"아저씨, 나중에 주시겠어요? 거스름돈이 없어요." "거스름돈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너 가져라. 그럼 또 보자."
그는 아마 일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에 구두를 닦으러 일부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에 돈이 생기자 다시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다.
나는 길을 이러 저리 왔다 갔다 했으나, 손님은 여전히 없었고, 구두의 먼지조차 터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돈 한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리오-상파울로'간선도로변에 있는 전봇대에 기대서서, 작은 목소리로 가끔 외쳐댔다.
"구두 닦으세요."
"구두 닦으세요."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구두를 닦읍시다.!"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가까이 와 멈췄다. 나는 기대하지 않고 소리쳤다.
"이웃을 도웁시다.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도웁시다."
잘 차려입은 부인과 어린애들이 차에서 내다보고 있었다.
부인은 동정하듯 말했다.
"세상에 가엾기도 하지. 저렇게 어린것이, 저 애한테 뭘 좀 줍시다, 여보."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은 듯 나를 훑어보았다.
"저런 행동은 나쁜 교활한 짓이야. 저 녀석은 어리다는 것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도와주고 싶어요."
부인은 지갑을 열어 차장을 통해 손을 내밀었다.
"고맙지만 싫어요, 부인. 전 거짓말하는 게 아녜요. 정말 돈이 필요해서 크리스마스에 도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구두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천천히 걸어갔다.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 차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애가 내게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돈을 주면서,
"어머니가 전하랬어. 우리 어머니는 네 말을 믿으신 데."
그는 오백 레이스를 주머니에 넣어 주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멀리 사라져 가는 자동차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네시가 이미 지났고, 나의 마음을 녹일 듯한 아버지의 눈과 함께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을 찾고 있었다.
비록 십 또스땅 밖에 안되지만, 어쨌든 미제리아 이 포미 상점에서 싸게 해 줄지도 모르고, 나머지를 외상으로 해 줄지도 몰랐다.
어느 집 울타리의 한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구멍난 여자용 스타킹이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집어 올렸다.
손에 감아보니 상당히 부드러웠다.
그래서, 구두통에 집어넣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뱀을 만들면 딱 알맞겠어.'
그러나, 난 나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다른 날 하자. 오늘 같은 날은 그런 장난을 해서는 안돼.'
빌라스보아드 댁까지 왔다.
그 집은 넓은 정원이 있었고 바닥은 온통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세르지뉴는 멋진 자전거로 정원을 돌고 있었다.
난 대문의 창살 사이로 얼굴을 갖다 대고 들여다보았다.
자전거는 붉은 색이었는데, 노랑과 파란색의 체크무늬로 된 부속들이 달려 있었다. 금속들은 굉장히 번쩍이며 빛이 났다.
세르지뉴는 날 보더니 자랑하듯 달리기도 하고, 커브도 돌고, 찍찍 소리가 나게 페달을 밟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로 다가 왔다.
"마음에 드니?"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 같아."
"자세히 보고 싶으면 더 가까이로 와."
세르지뉴는 또또까 형과 같은 학년으로 동갑내기였다.
나는 갑자기 나의 맨발이 부끄러워졌다.
그것은 세르지뉴는 빨간 가죽 허리띠와 흰 양말을 신은 위에다 번쩍이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두의 빛은 모든 것을 다 반사시켰다. 심지어 아빠의 눈까지도 그 광채 속에서 날 노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일이 있었니, 제제? 너 좀 이상하구나."
"아무 일없었어. 저 자전거 정말 멋져. 형, 크리스마스선물로 받은 거야?"
"응, 그래."
세르지뉴는 좀더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자전거에서 내려 대문을 열었다.
"내가 선물 받은 전축 하나에, 양복 세 벌, 동화책 한 질, 색연필 한 타스, 그리고 장난감이 가득 든 큰 박스를 받았어. 박스엔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도 있고, 하얀 돛단배도 들어 있고...."
난 고개를 숙인 채, 또또까형 말대로 아기 예수는 부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니, 제제?"
"아무것도 아냐."
"참, 넌 뭘 받았니?"
난 대답할 힘도 없어, 고개만 가로 저었다.
"진짜?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
"올해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통째로 없는 걸! 아버지가 아직도 실직 중이시 거든."
"아무리, 그럴 수가 있어? 그래 너희 집에는 밤도 호두도 포도주도 없단 말이니?"
"응, 진지냐 할머니께서 해 주신 구운 빵과 커피뿐이었어."
세르지뉴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제제, 내가 널 초대한다면 오겠니?"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무것도 먹지는 못했으나 그의 초대에 응할 생각은 나지 않았 다.
"들어가. 어머니가 네게 한 상 차려 주실 거야. 맛있는 게 많아. 생과자도 많고."
그러나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배는 고팠지만 잘 참아 온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 번 이런 소리를 들어왔다.
"집안으로 그 길거리의 더러운 녀석을 데려오지 말아라."
"고맙지만 싫어."
"좋아, 그럼 내가 우리 어머니한테 밤과 과자를 싸달라고 할게, 네 동생 갖다 줄래?"
"아냐, 가져갈 수가 없어. 난 아직 일이 안 끝났어."
세르지뉴는 그때서야 내가 깔고 앉아 있는 구두통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엔 구두를 닦을 사람이 없을 텐데."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도 겨우 십 또스땅 밖에 벌지 못했어. 그것도 오백 레이스는 동냥해서 받은 거야. 아직도 이 또스땅이 더 필요해."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럼 내 구두를 좀 닦아줄래? 그러면 십 또스땅 줄게."
"그것도 할 수가 없어. 난 형 친구한텐 돈을 받을 수 없어."
"그럼 내가 이백 레이스를 빌려줄게?"
"천천히 갚아도 돼."
"응, 네 마음대로 나중에 구슬로 갚아 줘도 괜찮아."
"그렇담 좋아, 빌려 줘."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내게 이백 레이스를 꺼내 주었다.
"제제, 걱정하지마. 난 돈이 많아. 아직도 저금통에 돈이 가득 차 있어."
나는 자전거 바퀴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정말 멋져!"
"네가 커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타게 해 줄게."
"응, 고마워."
나는 구두통을 흔들거리며 미제리아 이 포미상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닫을까 봐 총알처럼 날쌔게 뛰어들어갔다.
"아저씨, 고급 담배 있나요?"
주인은 내 손에 있는 돈을 보고 담배 두 갑을 집어들었다.
"설마, 네가 피우려는 건 아니겠지, 제제?"
뒤에서 누군가 참견을 했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어린애를 두고..."
돌아보지도 않고 주인은 웃었다.
"그건 자네가 이 녀석을 잘 몰라서 그래. 이 녀석은 못하는 짓이 없어요."
"이건 아버지 드릴 거예요."
나는 담뱃갑을 굴리며 형용하기 어려운 커다란 행복감을 느꼈다.
"이게 좋을까요. 저게 좋을까요?"
"네 마음이지."
"저는 오늘 하루 종일 아버지께 이 선물을 사드리기 위해서 일했단 말예요."
"정말이냐, 제제? 아버지께서 네게 뭘 해 주셨기에?"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우리 아버진 아직도 실직 중이시거든요."
그는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상점 안에 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아저씨께서 받으신다면 어떤 것이 마음에 드세요?"
"둘 다 좋아. 이런 선물을 받는 아버지는 누구나 기쁜 법이란다."
"그럼 이걸 싸 주세요."
주인은 정성스레 포장을 하고 내게 주려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마 무슨 말인가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고맙다, 제제."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세요, 아저씨!"
나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집안에는 어둠이 싸여 있었고, 부엌에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버지만 혼자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계셨다.
"아빠!"
"왜 그러니, 애야?"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원망도 없어 보였다.
"하루 종일 어딜 갔었니?"
나는 구두통을 들어 보였다. 구두통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포장된 것을 꺼냈다.
"풀어 보세요, 아빠. 아빠께 드리려고 선물을 하나 샀어요."
아빠는 그것이 얼마나 나가는지 아시는 듯 빙그레 웃으셨다.
"마음에 드세요? 제일 좋은 거래요."
아빠는 흡족한 얼굴을 하시며 담뱃갑을 뜯어선 냄새를 맡으셨다. 그러나 태우려 하진 않았다.
"아빠 피워 보세요."
나는 스토브 가에서 성냥을 가져와 아빠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드렸다.
그리고 아빠가 한 모금 빠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분이 매우 착찹해졌다.
그래서 난 타다 남은 성냥개비를 바닥에 던졌다.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가슴도 매우 쓰라렸다. 온종일 날 애태우던 고통이 촉촉이 적셔드는 것 같았다.
나는 수염이 난 아버지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단지....
"아빠.... 아빠....!"
내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점점 줄어들어 갔다. 아빠는 팔을 벌려 가만히 날 껴안아 주셨다.
"울지 마라, 얘야, 네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 소년이 되어 버린다면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날들이 한없이 많겠다. 남자가 그래서야 되겠니!"
"그게 아녜요. 아빠, 난 정말 아빠 마음을 상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알고 있다. 알고 있어요. 아빤 널 이해할 수 있어. 그래서 아빤 화를 못 내었잖니?"
아빠는 더욱 꼭 껴안아 주셨다.
그리고 아빠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제 괜찮지?"
"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좋아졌어요."
나는 영화 화면만큼이나 큰 아빠의 눈을 마음속으로부터 지워 버리려 애쓰면서 손을 뻗어 아빠의 눈언저리를 쓰다듬었다.
만약 그렇게 라도 하지 않는다면, 아빠의 큰 눈이 언제까지나 나를 쫓아다닐 것만 같았다.
"자, 담배를 마저 피워야지."
나는 아직도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아빠, 아빠가 날 때리고 싶으시다면 난 반항하지 않겠어요. 막 때리셔도 좋아요."
"아니다. 괜찮다. 제제."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며 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오셨다.
"글로리아 누나가 널 위해 과일 샐러드를 남겨 두었단다."
난 좀체로 샐러드를 삼킬 수가 없었다. 아빠는 작은 수저로 과일 샐러드를 먹여 주셨다.
"맛있지, 제제?"
머리를 끄덕였으나 처음 몇 숟갈은 짠맛이 나는 것 같았다.
눈물과 함께 먹었기 때문이었다. 좀처럼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