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형제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동생들을 돌봐 주고 있었다.
잔디라 누나는 글로리아 누나와 또 북부에 양녀로 보낸 누이를 돌봐 주었다.
안또니오(또또까의 원래 이름)형은 잔디라 누님의 귀염둥이 애호물이었다.
랄라누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워 했으나 점차 내게 무관심해져 갔다.
아마 통 넓은 바지에다 짧은 재킷을 입은 남자를 알고 난 후부터 나를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일요일이 되어, 역광장에 공차기를 하러 갈 때면 그는 내게 맛있는 알사탕을 사 주곤 했었다.
그것은 내 입을 막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미주알고주알 깨묻지 않는 한 결코 들통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두 동생은 아주 어렸을 때 죽었기 때문에 난 동생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얘기로만 들었다.
그 둘은 모두 피나제 인디언이었다고 했다.
둘다 반짝이는 까만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 애는 '아리끼', 남자 애는 '주란디르'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그 다음 태어난 동생이 루이스였고, 루이스를 가장 많이 돌봐 준 사람은 글로리아 누나였으며, 그 후엔 내가 돌봐 주게 되었다.
사실 루이스를 보살펴 줄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애는 너무나 예쁘고 착해서,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말할 때도 항상 정확하게 귀여운 말만 골라 했는데 난 어떻게 하면 녀석을 떼어놓고 놀려고만 생각하는 궁리만 했었다.
"제제 형, 동물원 놀이 해, 응? 오늘은 올 것 같지 않잖아, 응?"
이 애가 이제 익살을 제법 떠는데, 어찌나 신기한지! 루이스는 금방금방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맑게 보이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난 그것을 보니 거짓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루이스를 데리고 다니고 싶지 않을 때면 때때로 거짓말을 할 기분이 안 나기 때문이다.
"미쳤니? 루이스? 저기 하늘 좀 봐!"
말은 그랬지만 동생의 손을 잡고 뒤뜰로 갔다.
뒤뜰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물원 그리고 줄리뉴씨 집 울타리 바로 옆이 '유럽'이었다.
왜 '유럽'이냐고? 글세 내 마음속의 작은 새 조차도 그것을 잘 모른다.
거기에서 우리는 '빵 데 아쑤까르(지오데 제네이로에 있는 산, 설탕 빵이라는 뜻)의 케이블 카 놀이를 하며 놀았다.
끈에 단추들을 끼워 가지고 노는 것이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끈을 꼬르델(케이블 카 끈)이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알아듣고 꼬르셀이라고 말하자, 꼬르셀은 말(馬)이고 아저씨가 말한 것은 꼬르델이라고 고쳐 주셨다.
아무튼 우리는 끈의 한 쪽은 울타리에 매고 다른 한쪽은 루이스의 손으로 잡고, 거기에 단추를 꿰어서 하나씩 천천히 내려보내는 것이다.
각 케이블카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려왔다. 우리는 깜둥이 친구 비리끼뉴의 케이블카도 갖고 있었다.
이때 이웃집 뒷마당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제제, 우리 집 울타리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 아니냐?"
"아녜요, 디메린다 아줌마, 와 보세요."
"전 동생과 놀고 있는 중이에요, 얌전히 놀고 있어요."
마음속에서 내 代父인 악마가 즐겁게 노는 것보다도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줌마, 작년 크리스마스 때처럼 달력을 주시겠어요?"
"달력으로 뭣하게?"
"빵 바구니 위에 걸어 놓고 보려고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시며 약속하셨다. 그 아줌마의 남편은 '쉬코, 후랑꼬' 식료품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장난감은 루시아노였다.
처음에 루이스는 그것을 몹시 무서워했다.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돌아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루시아노는 내 친구였으며, 내가 바라볼 때면 굉장히 큰 소리로 울어댔다.
글로리아 누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박쥐는 흡혈귀라며, 어린애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 않아 고도이아(글로리아의 애칭) 루시아노는 안 그래. 내 친구야.
날 알아본단 말이야."
"넌 짐승이나 물건하고 얘기하는 버릇이 있어."
"루씨아노가 짐승이 아님을 납득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이였다. 루씨아노는 '알폰소스' 들판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였다.
"루이스 저것 봐!"
루씨아노는 우리가 얘기하는 걸 알아듣는 듯 즐거운 듯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물론 그가 알아들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비행기란 말야, 지금 날고 있잖아 그리고 또 ....!"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저씨께서 여러 번 가르쳐 주셨는데 잊어버린 것이다.
'acordacia 인지 acrobacia 인지 ou.a-rcobacia 라고 했는지 아무튼 그것들 중의 하난데 (곡예(acrobacia)를 뜻한다.)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쭤 봐야지. 동생에게 틀리게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일이야.'
다행히 그는 동물원 놀이를 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닭장 앞으로 다가가 닭장 속에서 땅을 후비파고 있는 흰 암탉 두 마리와 또 너무나 순해서 우리가 볏을 쓰다듬어 주기도 한 검은 색 암탉 한 마리가 있었다.
"우선 입장권을 사도록 하자. 그리고 사람들이 많으니까 손을 꼭 잡아, 잃어버리지 않 게. 일요일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동생은 고개를 들어 사방을 훑어보더니 내 손을 더욱 세게 꼭 잡았다.
매표소에서 난 배에 힘을 주고 기침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그리고, 매표원에게 여쭈었다.
"몇 살까지 무료입장입니까?"
"다섯살 까지입니다."
"그럼 어른 표 한 장 주세요."
표 대신에 난 오렌지나무잎 두 장을 따 가지고 들어갔다.
"우선 얘야, 예쁜 새들부터 보렴. 앵무새 좀 봐라.
저기 여러 가지 색으로 된 야생의 작은 새도 있구나.
저기 여러 가지 색으로 된 야생의 작은 새도 있구나. 저기 여러 가지 색으로 된 깃털이 달린 건 무지갯빛 앵무새란다."
그러자 그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둥글게 떠 보였다.
우리는 여기저기 천천히 구경을 했다.
너무 여러 가지를 많이 봐서 그런지 글로리아 누나와 랄라 누나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오렌지를 까고 있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누나들이 만약 그 얘기를 들었다면 이 동물원 놀이도 누군가의 엉덩이에 몽둥이 찜질을 하는 것으로 끝나겠군. 하기야 누군가란 바로 나지만 말이야.
"제제 형, 또 뭘 보러 갈 거야?"
나는 새로운 목소리와 행동을 바로 잡았다.
"자,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애드문드 아저씨는 늘 고릴라라고 하시더라만."
우리는 바나나 몇 개를 원숭이에게 던져 주었다.
이런 것이 금지된 일이란 걸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가운데서는 경비원들의 손이 미치질 못했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마. 원숭이들이 네게 바나나 껍질을 던질지도 모르니까."
"난 사자가 보고 싶어."
"그럼 사자 있는 곳으로 가자."
난 오렌지를 까고 있던 두 마리의 원숭이를 살펴보았으며, 또 누나들의 이야기 소리가 사자 우리까지 들려왔다.
"다 왔어."
나는 아프리카산 순종의 노란 암사자 두 마리를 가리켰다. 동생은 검은 표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무슨 짓이야?" "이 꼬마야." "그 검은 표범은 이 동물원에서 제일 사나운 놈이란다.
그 녀석은 훈련사의 팔을 18개 나 먹었기 때문에 서커스단에서 이리로 보내진 거야."
루이스는 깜짝 놀라며 팔을 움츠렸다.
"저게 서커스단에서 왔어?"
"그래."
"무슨 서커스단인데, 제제 형? 나한테 얘기한 적이 없잖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커스단 이름이 뭐가 있더라?
"아! '로젬베르크' 서커스단이야."
"그건 빵집 이름 같은데?"
요 녀석이 제법 영리해져서 속여먹기가 갈수록 힘든단 말이야.
"그건 딴 이름이야. 이젠 좀 앉아서 간식을 먹는 게 좋겠다. 우린 너무 많이 걸었어."
우리는 앉아서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누나들이 얘기하고 있는 곳에 있었다.
"랄라 우리가 저 애한테 배워야 되겠어. 저렇게 참을성 있게 동생을 잘 데리고 노는 것 좀 봐."
"그렇긴 해. 하지만 저 애처럼 장난이 심한 애도 처음이야. 장난이 아니라 그 이상이 겠지."
"저 애 핏속엔 악마가 자리잡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으로 신비해 그렇게 망나니인데도 누구도 저 애를 미워하진 않거든."
"집에선 늘 매만 맞지만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난 글로리아 누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누나는 항상 날 생각해 주었다.
그리고 그럴 적마다 난 누나에게 더 이상 장난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었다.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지금은 저 애들이 너무 조용하잖니?"
누나는 벌써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내가 돌담을 넘어 셀리나 부인 댁 뒤뜰에 들어간 것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팔과 다리가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내겐 아주 신기해 보였다.
그러자 악마가 그것을 한꺼번에 떨어뜨려 보라고 날 부추겼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담 아래서 아주 날카롭게 생긴 유리조각을 집어 오렌지나무 위로 재빨리 기어올라갔다.
그리고 살짝 빨랫줄을 끊어버렸다. 하마터면 너도 빨랫줄과 함께 떨어질 뻔했다. 그때 고함소리가 들려오며 사람들이 몰려왔다.
"도와주세요. 빨랫줄이 끊어졌어요."
그러자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빠울로 씨의 아들, 그 놈이 틀림없어요. 그 녀석이 유리 조각을 들고 오렌지나무 위 로 올라가는 것을 제가 봤어요."
"제제 형?"
"응, 뭐라고 루이스?"
"형은 동물원에 대한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아?"
"많이 가 봤기 때문이지."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모두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들은 이야기였다.
아저씨는 내게 동물원에 데리고 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정작 가게 된다 하더라도 아저씨의 걸음이 너무나 느리시니, 도착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또까 형은 아버지와 한 번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원은 '이자벨' 시의 '바랑 남작' 거리에 있는 동물원이야.
넌 '바랑남작'거리를 모르지? 모르는 게 당연해.
넌 그런 곳을 알기엔 너무 어리니까. 바랑 남작 같은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과 가까운 친구였을 거야.
하나님이 동물의 짝을 맺어 주실 때 그 분이 도와드렸을 거야,
그러니까 동물원도 만들었겠지. 네가 조금 더 크면...."
누나들은 아직 그곳에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좀 더 크면 어떻다고?"
"고거 참 귀찮게도 묻는구나 네가 동물원에 가게 되면 동물의 종류와 수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야.
20번에서 25번 까진 암소, 황소, 곰, 사슴, 호랑이라는 것만 알아둬.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 정확히 몰라서 그래.
네게 틀리게 가르쳐 주어선 안되니까?"
동생은 동물원 놀이에 실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제형!, '작은 오두막집'이란 노래 좀 불러 줘."
"여기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싫어. 사람들이 벌써 다 가버렸잖아."
"그 노래는 너무 기니까, 네가 좋아하는 곳만 부를게. 응? 그게 매미에 대해 부른 부 분이었지. 아마?"
그리고 가슴을 펴고 불렀다.
당신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그곳은 아주 작은 오두막집이랍니다.
주위는 과수원이 있는,
높은 산 언덕 위에 있어
멀리 아름다운 바다도 보인답니다....
난 중간 구절을 뛰어 넘었다.
가느다란 야자나무 사이에서
매미들이 노래를 한답니다.
황금빛 태양이 서산 마루에 걸릴 때,
처마 끝으로 지평선이 보인답니다.
정원의 분수대는 노래를 하고,
분수가에 까만 새 한 마리도 즐거워 노래합니다.....
노래를 끝냈을 때까지도 누나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노래를 계속 부르면서 시간을 끌자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누나들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뭘 부를까?
난 다시 처음부터 '작은 오두막집'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복하여 부른 다음 '그대의 사랑스런 여행자들이여', '라모나'까지 계속 불렀다.
그리고 나서 '라모나'의 곡에 두 줄을 다른 가사로 지어 부르고 나니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다.
오늘도 결국은 매를 맞는 것을 면할 수 없겠 구나 하면서 하는 수 없이 누나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미 각오했어. 랄라 누나. 자 때려봐."
그리고 누나에게 등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를 꽉 물었다.
누나가 슬리퍼로 사정없이 세게 때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하나의 제안을 하셨다.
"오늘은 우리 모두 새 집을 보러 가자."
또또까 형은 날 살짝 불러내 소곤거렸다.
"새 집에 갔었다고 말하면 혼날 줄 알아. 알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새 집을 향해 걸어갔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잠시라도 떨어져선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난 또 루이스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어머니 언제 이사해요?"
어머니는 왠지 슬픈 얼굴을 하시며 글로리아 누나에게 말씀하셨다.
"크리스마스 이틀 후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서."
난 어머니가 몹시 불쌍해 보였다.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만 하셨단다. 공장이 세워지던 여섯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셨단다.
그때 어머니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책상을 닦으려면 사람들이 어머니를 책상 위에 올려놓아 주어야만 닦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려올 때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학교에도 가보지 못하셨고, 글을 배운 적 도 없으셨단다. 난 이 얘길 듣고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내가 자라서 시인이 되고 박사가 되면 나의 시를 어머니에게 읽어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
상점들의 진열장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층 돋구어 주고 있었다.
유리 진열장이 있는 상점들은 모두 산타클로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리 카드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상점마다 붐비고 있었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엔 꼭 하나님의 착한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아련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철이 들면 지금보다는 더 착해지겠지.
"바로 저기다."
모두들 좋아했다.
지금 살고 잇는 집보다는 좀 작았다.
또또까 형은 대문에 매어 있는 철사 줄을 풀고 계시는 어머니를 도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뿌리치고, 자신이 다 큰 처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달려들어가 망고나무(옻나무 과의 푸른 나무)를 껴안았다.
"이 망고나무는 내 꺼야. 내가 제일 먼저 잡았으니까."
또또까 형도 따마린두나무(열대산의 상록 교목) 한 그루를 껴안았다.
그리고 누나와 똑같이 얘기했다.
날 위해 반겨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울 상을 지으며 글로리아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내 건 고도이아?"
"저쪽 뒤로 가 봐. 다른 나무가 있을 거야. 바보야."
나는 달려가 보았으나 거기엔 이제 막 자라나는 풀밖에 없었다.
그리고 담 옆으로 가 시가 잔뜩 난 늙고 초라한 오렌지 나무가 한 그루 있고, 또 다른 쪽엔 조그마한 라임오 렌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시무룩해 하며 돌아와 보니 모두들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각자 자기 방을 정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네가 잘 찾아보지 않아서 그래. 내가 찾아 줄 테니 잠깐 기다려."
잠시 후 나는 누나와 함께 오렌지나무들을 살펴보았다.
"넌 저 나무가 좋지 않니?"
"얼마나 멋진 오렌지나무니?"
나는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모두 가시만 잔뜩 돋아 있을 뿐이다.
"이런 나무를 갖느니 작은 라임오렌지나무를 갖겠어."
"그게 어디 있는데?"
우리는 라임오렌지나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머나, 참 예쁜 라임오렌지나무로구나. 멀리서 봐도 라임오렌지나무란 걸 금방 알겠다. 내가 너만한 키의 아이라면, 다른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얘."
"그렇지만 난 아주 커다란 나무가 훨씬 좋단 말이야."
"잘 생각해 봐 제제, 저 나무는 아직은 어리고 작지만 곧 커다란 나무가 될 거야.
그리고, 저 나무는 너랑 함께 자라는 거야.
또 서로 형제처럼 사이가 좋을 게 아냐.
저 가지를 좀 봐. 가지는 하나 뿐이지만, 네가 올라타라고 만들어진 망아지 같지 않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 '스코틀랜드' 술병 생각이 났다.
그때도 랄라 누나는, '이건 내것' 하며 말했지, 그랬더니 글로리아 누나도, 또또까 형도 자기 것을 골랐어.
그런데 난 뭐람?
왜 나는 항상 마지막이어야만 하지?
날개도 없이 머리만 남아 있는 네 번째 천사가 내 것이람? 내가 크면 어디 두고 보라지. '아마존' 정글의 하늘을 꿰뚫을 듯한 나무는 모두 내가 살 테야.
그러면 모두 내 것이 되겠지.
그리고 천사가 잔뜩 그려져 있는 술병으로 꽉 채운 상점을 만들어 날개 하나도 못 만지게 할거야.
나는 골이 잔뜩 나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렌지 나무에 기대여 씁쓸한 마음을 가라 앉혔다. 글로리아 누나는 씩 웃으며 내 곁을 떠났다.
"제제, 곧 화난 마음은 사라질 거야. 그리고 내 말이 옳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거야."
막대기로 땅을 파고 있자니 울음도 차츰 멎어 갔다. 그 때 내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난 네 누나가 옳다고 생각해."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하지. 옳지 못한 쪽은 항상 나뿐이야."
"그렇지 않아. 네가 날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모든 사물들과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그것은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미리 생각해 주는 내 마음속의 작은 새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바로 네가 말하는 거니?"
"듣기도 해."
그리고 나무는 나지막이 웃었다. 난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고함 소리를 내며 뒤뜰을 뛰쳐나갈 뻔했다. 그러나 호기심이 날 묶어 놓았다.
"넌 어디로 말하는 거니?"
"나무는 몸 전체로 얘기해. 잎으로도 하고, 가지와 뿌리로도 한단다."
"듣고 싶어."
"그럼 네 귀를 내 몸에 대 봐."
"그러면 내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난 잠시 망설였지만, 나무가 작다는 걸 생각하고는 곧 안심하고 귀를 대어 보니 정말 무언가 멀리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들었지?"
"한 가지만 말해 주겠니? 네가 그렇게 얘기하는 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니?"
"아니냐, 오직 너하고 만이야."
"정말?"
"맹세할게. 어떤 요정이 너와 같은 소년이 내 친구가 되면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아주 행복해질 거랬어."
"그런데 너 좀 기다려 주겠니?"
"뭘, 기다려."
"내가 이사올 때까지 말이야. 아직도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돼. 그 때에도 네가 말하는 걸 잊지 않고 있겠니?"
"물론 잊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너를 위해서만 그래.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시험해 볼래?"
"어떻게?"
"자, 여기 가지에 올라타 봐."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했다.
"그럼, 약간 흔들어 그리고 눈을 살짝 감아 봐."
"기분이 어때?"
"네가 태어나서 나보다 더 좋은 망아질 타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니?"
"아니 없어. 너무 좋은데, 내 '달빛'망아지 장난감은 루이스에게 줘야지."
"아마 너도 내 동생 루이스를 무척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기쁜 마음으로 라임오렌지나무를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이봐, 내가 약속할게 이사오기 전이라도 시간이 나면 자주 올게. 이제 그만 가야 해.
저기 모두들 나오고 있잖아."
"쉿! 저기 누나가 오고 있어."
내가 나무를 껴안고 있을 때 글로리아 누나가 다가왔다.
"잘 있어. 친구! 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야."
"내가 네게 말하지 않던.....?"
"그래, 누나 말이 옳아. 이제는 누나나 형이 망고나무나, 따마린두나무와 바꾸자고 빌어도 바꾸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