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아기 예수는 슬픔 속에서 탄생한다>
제 2 장 소중한 사람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 며칠 동안은 아주 일찍 일어났다.
담배를 사려고 차를 세워두는 포르투칼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도 반대편 길모퉁이에 붙어 걷는 등 조심스럽게 다녔다. 거리에는 상록수 울타리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리오-상파울로' 간선도로에 도착했을 때에도 운동화를 벗어 들고 담쪽으로 바싹 붙어 걸으며 학교에 가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심성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미 그 일을 잊어 버렸고, 또 그 일을 당한 아이가 빠울로씨의 장난꾸러기 아들이었다는 것도 잊은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욕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빠울로 씨의 아들이었어요. 빠울로 씨의 아들 그 미친 녀석 말입니다. 빠울로 씨의 아들 바로 그 녀석말이예요."
'방구'시에서 안다라이가 매를 맞았을 때도 '방구'시 사람들은 빠울로 씨의 아들처럼 많이 맞은 아이는 없을 거라고 떠들어대기까지 했다. 가끔 나는 포르투칼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발을 멈추어야 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차의 주인이지만 내게 그런 난폭한 짓을 했으니 나의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가 며칠씩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멀리 여행을 갔거나 아니면 며칠 휴가를 얻은 게 분명했다.
그럴 때에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까지 걸어 갈 수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복수심은 흐려져 갔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사실은 다른 차에 매달릴 때라도 전에 느끼던 그러한 짜릿함은 느껴볼 수 없게 되었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고통만을 되살리게 되곤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여전히 길에 나가 놀았다. 연을 날리는 계절이 왔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연을 띄울 길은 허용되어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대낮의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별들은 아름답고 찬란하며 또한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한 수많은 연들의 장관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밍기뉴를 생각할 틈도 없었고, 심한 매를 맞았을 때에야 겨우 그를 찾아갔을 뿐이었다.
한 차례 매를 맞고 또 매를 맞으면 어찌나 아픈지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루이스왕과 늘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치장해 주러 갔다.
그 보답으로 밍기뉴는 나를 위해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고 그러는지 자꾸만 자랐다.
다른 오렌지나무들은 아주 느릿느릿 자라는 것 같았으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에드문드 아저씨께서 나더러 '조숙'하다고 하셨던 것처럼 그런 것 같았다. 후에 에드문드 아저씨는 내게 설명하기를 '조숙'이란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빨리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셨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조금 앞서서 자라나는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하면 됐을 것을! 아무튼 나는 긴 끈과 토막난 실로 구멍 뚫린 병마개를 꿰어 밍기뉴의 몸에 달아 주었다.
그렇게 하니 밍기뉴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병마개들이 부딪쳐 마치 후레드 톰슨이 '달빛' 망아지를 타고 은빛 채찍을 흔들며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 생활은 대단히 재미있었다. 나는 국가를 전부 외울 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의 노래'였다. 그리고 '국기에 대한 노래' '자유 국민의 노래'등 다른 노래도 있었다. '자유 국민의 노래'는 잘 알려진 노래였다.
생각컨데 톰 믹스도 역시 이 노래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사냥을 할 때면 그는 정중히 내게 청하곤 했었으니까.
"자 용감한 삐나제 인디언 투사, 자유의 노래를 불러 주시오."
그러면 나의 작은 목소리는 화요일마다 내가 조수로 일해 주는 아리오발도 씨의 노래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지게 부르는 것이었다.
화요일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오는 내 친구 아리오발도 씨를 기다리기 위해 수업을 빼 먹곤 했었다.
두 개의 가득 찬 보따리를 들고 손에 팜플렛을 흔들어 보이며 그는 역 층층대를 내려왔었다. 그는 언제나 거의 다 팔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늘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는 틈만 있으면 구슬치기를 했다. 나는 백발백중의 솜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방에 거의 세 배 이상의 구슬을 흔들며 돌아오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쥐새끼라고 불리우기까지 했다. 대단히 기뻤던 일은 우리 선생님인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내가 동네에서 제일 못된 애라고 얘기해도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보다 더 욕을 잘하는 없으며 나만큼 장난이 심한 아이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결코 믿지 않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천사였다.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더 적은 애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여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고 계셨는지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엔 마음 아파하시고 빵 집에서 생과자를 사먹도록 돈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선생님이 얼마나 다정하신 가를 생각할 때마다 실망을 드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착해져야 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태가 변하게 되었다.
'리오-상파울로' 간선도로를 늘 그렇듯 천천히 지나고 있을 때 포르투갈인의 차가 내 곁을 아주 천천히 지나간 것이었다.
자동차 경적이 세 번 울렸는가 했는데 아주 뚱뚱한 남자가 빙그레 웃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 올라 어른이 되면 꼭 죽여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이 되살아났다. 나는 자존심이 때문에 얼굴을 돌리고 못 본 척 해 버렸다.
"뭐라고 말할까, 밍기뉴, 아무튼 운이 좋은 날이었어. 글세 그는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지 않겠어. 세 번이나 울렸단 말이야. 어제는 나더러 '아데우스'(안녕)하고 인사까지 하잖아."
"그래서 넌 어떻게 했니?"
"모르는 체 했어, 못 본 체 했단 말야. 그에게는 내가 무섭게 보였을 꺼야. 보시다시피 난 곧 여섯 살이 되고 또 어른이 될 거거든."
"넌 그가 겁이 나서 너에게 친절했다고 생각하니?"
"틀림없어. 잠깐만, 내가 상자를 찾아올게."
밍기뉴는 굉장히 많이 자란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가지 위로 올라가려면 이젠 밑에 상자를 받쳐야만 했다.
"됐어. 계속하자."
그 꼭대기에서는 세상이 넓다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여기 저기 풍경을 볼 수도 있었고 언덕의 풀 너머로 아기 새들과 멀리서 먹이를 가져오는 어미 새도 보였다.
또 루시아노도 마치 '알폰소스'비행장에서 날아온 비행기처럼 즐겁게 초저녁 하늘 밑 내 주위를 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밍기뉴도 대개 어린애들은 박쥐를 무서워하는데, 내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루씨아노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딴 곳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봐, 밍기뉴. 아우제니아 부인 댁 고이아바 열매는 벌써 노랗게 익기 시작했어. 이제 고이아바의 계절이 되는가봐.
그런데 슬프게도 내 마음속의 악마가 그걸 훔쳐먹으라고 하잖아.
밍기뉴, 문제는 세 번이나 난 벌써 얻어맞았단 말이야. 내가 여기 올라왔다는 것은 이미 벌을 받았다는 증거거든."
그러나 결국 악마가 나를 상록수 울타리로 내려가게 끔 만들었다. 오후의 산들바람이 내 코에 고이아바 향기를 몰아오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런 바보, 빨리 가지 않고 뭘해!"
그리고 악마는 계속 속삭였다.
"뛰어가 바보야. 망보는 사람도 없는 걸. 이 시간에 그녀는 일본 사람의 과일가게에 간단 말야. 베네딕투 씨? 무슨 소리야? 그는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거의 장님인 데다가 귀머거리잖아. 쓸데없는 걱정마. 그가 알아채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어."
나는 언덕까지 울타리를 끼고 올라가선 맘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그 전에 밍기뉴에게 소리 내지 않도록 신호를 보냈다.
가슴은 아까부터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제니아 부인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굉장한 수다쟁이였다. 내가 숨을 죽이고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을 때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부엌 쪽으로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얘야?"
나는 공을 주으러 왔다는 거짓말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말았다. 정신없이 마구 달려 언덕으로 헐레벌떡 갔더니 거기에는 또 다른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아팠던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또 매를 맞을 것 같아 꾹 참고 있었다.
우선 첫째로 벌을 받다가 도망쳤기 때문에 맞을 것이 분명했고, 그 다음엔 남의 고이아바 열매를 훔치려 했기 때문에 맞을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은 왼발에 유리조각이 박히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아픈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뒤뜰의 더러운 개천물과 피가 섞여 있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한담?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유리를 빼냈다. 그러나 피를 멈추게 할 도리는 없었다. 단지 아픔을 줄이기 위해 발뒤꿈치를 꽉 잡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만 될 것 같았다. 이미 밤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랄라 누나도 곧 돌아올 것 이었다.
나를 발견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날 때릴거야. 셋이 번갈아 가며 때릴지도 몰라. 나는 정신없이 한발을 절뚝거리며 울타리를 따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까지 와서는 그 밑에 주저앉았다. 아픔은 계속되었고 이젠 구역질까지 했다.
"잘 살펴봐, 밍기뉴."
밍기뉴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도 나만큼 피를 보는 게 싫은 것 같았다.
"맙소사, 어떡하면 좋지?"
이럴 때 또또까 형이라도 있으면 큰 도움이 될 텐데 형은 지금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글로리아 누나도 있지. 글로리아 누나는 부엌에 있을 거야.
그녀만이 나를 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내 귀를 잡아 당길지도 모르고 때리려 할지도 몰라.
하여튼 부딪쳐 봐야지. 나는 어떻게 하면 글로리아 누나가 날 때리지 않을 까 생각하며 부엌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수를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여전히 어떻게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의 가호가 내린 것 같았다. 그녀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나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벌써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울고 싶었다. 그러자 누나는 수틀에서 손을 떼었다.
"왜 그러니? 제제."
"아무것도 아니냐, 글로리아..."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지?"
"네가 너무 장난꾸러기라서 그렇잖아."
"오늘은 벌써 세 차례나 맞은 걸."
"그래 안 맞을 걸 맞았단 말야?"
"그런 게 아냐.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느냔 말야. 무조건 덮어놓고 때리기만 하느냐구."
그러자 열 다섯 살의 소녀 글로리아는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차라리 내일 '리오-상파울로'간선도로에서 온 몸이 가루가 되도록 치어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러자 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바보 같은 소리마, 제제. 난 널 무척 좋아해."
"거짓말 마. 누군가 오늘 또 날 때리려 하면 그냥 내버려둘텐데, 뭘."
"이렇게 어두워졌으니 더 장난칠 수도 없고 그러면 더 맞을 필요도 없을 텐데?"
"하지만 이미 저지른 걸...."
누나는 수틀을 내려놓고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피에 흠뻑 젖어 있는 내 발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아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날 아가라고 부를 때는 언제나 나를 구해 줬으니까. 그녀는 내 목을 끌어안고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대야에 소금물을 담아 와서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많이 아프지? 제제."
"굉장히 아팠어."
"세상에! 손가락 세 개 만큼이나 찢어졌구나. 어쩌다 이랬니? 제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마. 제발 글로리아,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할게. 심한 매를 맞지 않게 해 줘."
"좋아, 얘기 안할게. 하지만 어떡하지? 식구들이 헝겊에 싸여 있는 발을 보게 될텐데. 그리고 내일 아침엔 학교도 가지 못할 거야. 그러면 다 알게 되잖아."
"학교엔 가겠어. 정말이야, 한길까지만 신발을 신고 가겠어. 그 다음엔 좀 쉬울 거야."
그녀는 절룩거리는 나를 침대로 데려다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먹을 걸 좀 갖다 줄게."
그녀가 내게 음식을 가져왔을 때 나는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키스해 주었다. 이러한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모두들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내가 없다는 걸 알아채셨다.
"제제는 어디 있니?"
"자고 있어요.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자러 갔어요."
나는 상처가 후끈거리는 것도 잊은 채 엿듣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입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좋았다. 글로리아 누나는 나의 편이 되기로 결심한 듯 했다. 그녀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왜 모두들 그 애만 때리고 그래요? 오늘은 아주 짓밟아 놓기까지 하고, 세 번씩이나 때리다니 너무하잖아요."
"하지만 그 녀석은 아주 못됐잖아. 매를 맞아야만 가만히 있고."
"너도 그 애를 때리지 않는 건 아니잖니?"
"나는 왠만해선 때리지 않았어요. 아주 장난이 심할 때야 그저 귀를 한번 잡아당기는 정도였죠.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그 앤 여섯 살도 채 못됐어요. 장난이 좀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잖아요."
이런 말을 듣고 나는 굉장히 기뻤다.
아침이 되자, 글로리아 누나는 내가 운동화 신은 것을 도와주면서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갈 수 있겠니?"
"견딜 만 해."
"'리오-상파울로'간선도로에서 바보짓 따윈 안하겠지?"
"안할게."
"어제 한 말 정말이 아니지?"
"아니냐, 하지만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나는 건 사실이야."
그녀는 금발의 내 더벅머리를 쓸어주고는 나를 내 보내주었다. 난 단지 길거리까지 나가는 것이 조금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신발을 벗으면 아픔이 덜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발이 땅에 직접 닿을 때는 공장 벽에 기대어 천천히 걸어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해선 도저히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자동차 경적이 세 번 울렸던 것이다. 제기랄! 남은 아파 죽으려고 하는데 모욕을 주러 오다니.....
차를 내 옆에 바싹 붙여 세우고 몸을 내밀고 그는 말했다.
"꼬마야, 발을 다친 거냐?"
나는 남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가 '요녀석'이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꾸만 하지 않고 5m 쯤 더 그냥 걸어갔다.
그러자 그는 시동을 걸어 내 곁을 지나 벽에 차를 붙여 버릴 듯 몰았다. 그러더니 조금씩 앞으로 몰아가며 내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내렸다. 나는 그의 커다란 얼굴을 보자 몸을 움츠렸다.
"무척 아픈가 보구나, 꼬마야."
나를 때렸던 사람이 그렇게 다정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는 걸 난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아주 거리낌없이 그 뚱뚱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선 내 얼굴을 들여 다보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어찌나 부드럽게 보였는지 마치 따스한 애정이 듬뿍 담긴 듯이 보였다.
"보아하니 많이 다친 모양이로구나. 어쩌다 그렇게 됐니?"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유리조각에요."
"깊이 박혔었니?"
나는 손가락으로 그 깊이를 말해 주었다.
"음, 그렇다면 중상인데, 그런데 왜 집에 있지 않고? 가만히 보니 학교에 가는가 본데, 안 그래?"
"집에선 아무도 다친 걸 몰라요. 만일 집에서 알게 되면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때릴거예요."
"이리 온, 내가 데려다 줄 테니."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왜?"
"학교 애들은 저번에 있었던 일을 모두 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걸어갈 순 없잖아?"
그건 그렇다고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자칫하면 자존심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는 내 턱을 꼭 붙잡아 올렸다.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자, 차를 타 본적이 있니?"
"없어요."
"그러면 내가 태워 주마."
"하지만 난 탈 수 없어요. 우린 아직도 적인 걸요."
"그런 건 상관없어. 난 그 따위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아. 만약 네가 부끄러워한다면 학교 조금 못 미쳐서 내려 주마. 그러면 타겠니?"
나는 고마워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내 목을 끌어안더니 문을 열어 조심스레 나를 차에 태웠다. 그리곤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시동을 걸기 전에 내게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곧 좋아질 거야."
달리는 자동차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고 있으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후레드 톰슨의 '달빛'망아지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오래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눈을 떠보니 학교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깜짝 놀라 얼른 의자 밑으로 숨었다. 그리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조금 못 미쳐서 내려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생각을 바꿨다. 그런 발을 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파상풍을 일으킬 염려가 있단 말이야."
그러나 난 어찌나 아팠던지 이 근사한 말이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가를 물어 볼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가기 싫다고 떼쓰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차가 '까지냐' 거리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제자리에 올라와 앉았다.
"내겐 네가 아주 용감한 사나이 같아 보이는데,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아마 너라면 그걸 증명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약국 앞에서 차를 세워 나를 안아 내렸다. 라이문드 빠스 박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을 때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는 공장의 담당의사였고 아버지와도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마음을 들어다볼 듯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빠울로 바스콘셀로스의 아들이지? 안 그러냐? 아버지 일자리는 얻었니?"
나는 포르투칼인이 아버지가 실업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대답을 않을 수가 없었다.
"구하시는 중이에요, 여러 군데 말씀해 놓고 계셔요."
"자, 그러면 어디 한번 볼까?"
그는 상처에 감긴 헝겊을 풀더니 놀랍다는 듯 '음'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울 것처럼 입을 내밀었다. 그러자 포르투갈인이 재빨리 달려와 뒤에서 잡아 주었다. 그들은 나를 하얀 시트가 깔린 책상 위에 앉혔다.
그리고 수술기구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난 벌벌 떨었다. 그러자 곧 포르투칼인이 부드러운 얼굴로 내 등에 그의 가슴을 대 주었고, 내 어깨를 두 손으로 꼭 감싸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야. 치료가 끝나면 주스와 과자를 사 주마. 그리고 울지 않는다면 영화배우의 사진이 인쇄된 카드도 사 주지."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물이 나왔으나 꾹 참고 있었다. 무척 아팠다.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고 토하고 싶은 것까지도 참았다.
포르투칼인은 마치 자신에게 아픔이 조금이라도 나누어지기를 바란다는 듯이 나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수건으로 땀에 흠뻑 젖은 내 얼굴과 머리를 닦아주었다. 영 끝날 것 같지 않았으나 치료를 곧 끝났다.
나를 차로 데려갈 때에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내게 약속한 것을 모두 사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와 의사가 내 발끝으로부터 온 정신을 쏙 뽑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래 가지곤 학교에 갈 수 없다, 꼬마야."
자동차 안에서 나는 그의 곁에 바싹 붙어 앉아 그의 팔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운전을 방해했다.
"집으로 데려다 주마. 아무 구실이든지 지어내면 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쉬는 시간에 다쳐서 선생님이 약방에 데려다 주셨다고 말이야."
알았다는 듯이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용감한 사내로구나, 꼬마야."
무척 아팠지만 그래도 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픔 속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는 포르투갈인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