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자, 문단의 선후배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마음보다는, 자본의 속성에 따라 이윤을 좇는 데 급급하는 출판경영인의 마음뿐이었다. 거기다가 어쩌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나는 감동하기에 앞서 상품성부터 먼저 헤아리게끔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자신의 그런 변모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출판사가 소위 베스트셀러를 내자, 돈 걱정에서도 해방된 나는 밤마다 술집을 헤매거나 황폐한 연애에 빠져들었다. 내가 또다시 새삼스럽게 저 사춘기 무렵의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결국 나로서는 출판사를 그만두는 것 이외에는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없었을 터이었다.
한편 출판사의 성격 자체도 어느 면에서는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필요 따위를 지나쳐서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출판사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출판사는 처음부터 당연하게 80년대 정권에 대하여 반체제적 문학운동으로 나아갔고, 80년대 중반 이후 민중시를 비롯하여 노동문학이 형성될 때는 그 터전이 되기도 하였는데, 그 무렵 모든 동권을 몰아쳤던 노선투쟁이 급기야 문단에도 몰려와 무슨 엔엘이니 피디니 하는 어려운 싸움에 말려들었다. 나로서는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쉽사리 편을 들 수가 없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의 인간관계가 무너질 정도로 사생결단도 예사였다.
너무 깊이 숲에 들면 그 숲에 가려 막상 산은 보지 못한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나는 너무 깊이 숲에 든 나머지 민중운동이라는 큰 산은 보지 못한 채, 무슨 당위성이나 분파주의 혹은 교조주의나 조직 논리에 따른 비인간화 따위 악목들만 본 셈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운동이란 그 길이 잘 가는 것이건 못 가는 것이건 어쨌든 앞을 향해 나가고 있는 이들의 몫이고, 그것이 바로 진보 아니랴. 십 년 가까운 출판사 생활에 나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거의 모든 사고가 보수화되어 있었다. 나는 운동의 조직 논리에서 왜 조직의 보전을 위해서는 정기적인 숙청이 필요한가를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출판사라는 조직에서 스스로를 숙청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니?\"
맞춤한 술집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내가 먼저 후배에게 운을 떼었다. 그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웃음 속에 한가닥 경계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부끄럽게.\"
\"그게 부끄러워할 일인가?\"
\"그럼 자랑할 일인가요?\"
\"나라면 자랑하지.\"
\"에이, 선배님도 참. 그러지 말고 술이나 드세요\"
그가 술잔을 들어 나의 입막음을 하였고, 나는 그의 잔을 부딪쳤다. 그러면서도 나는 머리 속에 그와 처음 만나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직 내가 출판사에 관여할 무렵이었다. 그날은 출판사에 편집회의가 열려서 회의 끝에 술자리까지 갔던 모양으로, 편집위원들과 함께 단골술집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벌써부터 거나해져 있었다. 그런 술자리에 그가 나타났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비교적 앳되어 보이는 표정이 어떤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누구시지?\"
가벼운 시비조의 말투로 내가 물었고,
\"참, 제 후뱁니다. 왜, 언젠가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편집위원 중의 한 사람이 나서서 그의 이름을 대며 소개를 했다. 한참 무르익는 술자리에 낯선 사람이 끼이면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기 마련이고, 술꾼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이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그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술자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애꿎은 편집위원을 향해 속으로 쯧쯧, 혀를 찼을 터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자리에 부른담. 그렇게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그에게 술잔을 건넸다.
\"성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내가 깍듯이 격식을 차리자 그는 굳은 표정이 대뜸 붉게 달아오르며 당황해 했고, 그러자 편집위원이 또다시 나섰다.
\"에이 참, 형님도. 제 후배라니까요. 말 낮추세요.\"
\"그래도 첨 뵙는 분에게 그럴 수 있나.\"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내가 여전히 격식을 차렸고,
\"마, 말씀 낮추십시오.\"
그는 숫제 말까지 더듬거렸다. 무렵 그는 노동운동에 관련되어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로서는 그의 글도 한두 번 보고 그의 신상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술자리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머지않아 대학의 강사로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그의 글이나 시선에 따르자면, 이런 술자리는 '부르주아지식계급의 반동적이고도 퇴폐적인 술자리'가 틀림없을 터이었다. '그래도 명색은 소위 민중운동을 한다는 자들이 아닌가.'
열두 시가 넘어 홀에 있던 손님들이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담을 위시하여 종업원 여자애들까지 방으로 들어왔고, 술자리는 더욱 질펀하게 무르익어 갔다. 그는 예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굳은 표정이었는데, 어쩌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얌전하게 시선을 내리깔곤 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만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말을 건넸다.
\"이런 술자리 처음이오?\"
\"예.\"
그는 아주 쉽게 대답하였다. 맙소사, 이건 점입가경이로군. 나는 그가 쉽게 대답한 그만큼 나 또한 쉽게 그에 대해서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은 정말 그에 대해 잊어버렸다.
술자리는 어느덧 노래가 시작되어 어떤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나 또한 어떤 절정에 올라 '울고 싶은 인생선', '울며 헤어진 부산항', '망향의 노래'따위 주로 청승맞은 노래를 계속 불러 댔다. 그 무렵 나는 출판사를 그만둘 작정인데다가 무언가 자신의 인생은 실패하고 말았다는 식의 자기혐오에 빠져 있을 때여서 노래도 다분히 감상적이고 청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떤 심상치 않은 느낌에 그를 돌아보자, 그는 눈물이 가득히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처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던 내가,
\"왜, 노래가 너무 퇴폐적이오?\"
농반진반으로 묻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