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읽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가시고기'라는 독특한 책제목 때문이었다. 맨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제목을 보고 난 한동안 난감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시고
기라니, 난생처음 듣는 물고기 이름이었다. 작가가 가시고기라는 단어를 책제목으로
정한 것은 그만큼 이것이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난
생각해봤다. 그러나 가시고기라는 낯선 단어의 의미를 밖으로 끄집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난 짧은 실랑이를 벌인 후에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했
다. 내가 가시고기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한 것과 동시에 무언가 뇌리를 스치는
것을 경험한 것은 이 책을 다 읽은 바로 그 후였다.
이 책의 내용은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접해봤을, 어찌 보면 조금은 식상하다
고도 할 수 있을 내용이었다.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아들과 그 아이를 아내를 떠나
보내고 홀로 간병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책은 여느 다른 책들
처럼 식상하지 만은 않다.
내가 가장 먼저 이 책에서 느낀 것은 아버지와 아들 다움이가 서로를 위하는 마
음이었다. 두 부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
은 아버지에게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고 걱정하고 배려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서로의 속마음까지 모두 다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자신의 속마음이 상대
방에게 이미 들켜버렸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난 자연히 나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가 과연 사랑한다고 여겨오던 사람들에게
이토록 진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줬는가. 난 늘 그렇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정작
따지고 보니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의 다움이와 아버지처럼 항상 따뜻한 눈빛
과 말, 행동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그러나 내가
이 책 속에서 느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은 그저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
다. 뭔가 애틋하고 안타까운 느낌이랄까.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어서 두
부자의 사랑은 마치 이 상황을 잠시 잊으려는 몸부림 같았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개운치 못하고 답답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모정'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또 다른
'부정'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왠지 모르게 낯설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가 무뚝뚝함 속에 숨겨진 우리네 아버지의 사랑을 잠시 잊고 있었기 때문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움이 아버지가 다움이에게 바치는 사랑은 아름답다 못해
고지식하기까지 하다. 나중에는 자기가 간암에 걸렸는데도 자신의 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움이의 완치를 위해 이리저리 수술비를 마련하고, 아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
다며 자신의 한 쪽 눈까지 미련 없이 내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
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독자인 나와 다움이. 그리고 다움이 아버지의 최종 목적지
는 다움이의 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막상 다움이가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완치되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발병과 다움이의 완치를 맞바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움이 아버지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죽
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내내 아들을 위해 희생하기 만한 아버지를 위한 대
가가 죽음이라니……. 그것도 가족 중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 힘든 고통
을 혼자 미련스럽게 안은 채 말이다.
나는 억울함을 느꼈다.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이
내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떠나버린 아기 가시고기를 홀로 살려 놓고 자신
은 바위틈에 머리를 쳐 박고 죽어 가는 아빠 가시고기 이야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작가가 일부러 이런 결말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내게는 다움이 아버지의 부정을 가슴 속 깊이 느끼고 이제 그 사랑을
다시 내 아버지께 되돌려 주는 일이 남은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
저 한 일은 이 세상의 아버지들을 생각한 것이다. 중년의 허무함과 무기력함, 가족
들의 냉랭함을 느끼면서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속으로 울었을까.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이 이렇게 아무 탈없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은 뒤에서 묵묵히 우리를 받
쳐주고 있는 아버지들의 힘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아빠 가시
고기들에게 고맙고, 그리고 힘내라는 말을 건넨다.
*가시고기 :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버리면 수컷이 제 살을 먹여 새끼를 키운다고
하는 물고기.
\"아빠 아파서 미안해\"
아이는 물었다.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되느냐고\"
이만큼 아팠으면 죽어도 되지 않느냐고\"
오랜동안 투명중인 자식을 지켜보아야 하는 부모라면
누구든지 소리내지 않고 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