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 갇힌 한 젊은이의 독백
-E.M.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고
격변의 20세기, 이 변화를 통해 우리 현대의 사람들은 매우 편리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 편리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과거에 그만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하였다. 20세기 초반 제 1차 세계 대전을 시작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6.25 한국전쟁, 월남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20세기 내내 지구 전체를 떨게 하였다. 또, 꼭 전쟁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20세기 중반의 냉전체제나 현재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 나라와 북한간의 대립 관계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로 세계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전쟁.. 그것에서 승리하였을 경우 얻는 국가의 이익은 사실 상 막대하다. 그 예로 만약 우리가 과거 6.25 전쟁에서 승리하였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나라의 경제는 북쪽의 막대한 자원, 노동력과 우리의 발달된 기술이 합쳐져서 엄청난 경제적 부를 누릴 것이다. 또한 군사적인 면이나 지정학적인 면에서도 크게 유리하여져서 우리 나라의 발언권은 지금보다 훨씬 막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 전쟁에서 승리하면 너무나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승리라는 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아직 젊고 패기 넘치는 장정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하나 둘씩 쓰러져 간다. 그 중에는 영영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도 있고 다리나 팔 또는 신경계통을 다쳐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너무나 많은, 아까운 인재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뿜어대는 과정에서 인명피해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파괴된다. 이렇게 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도 탐욕스런 권력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 전체 배경을 제 1차 세계 대전 중으로 한 이 책에서 화자는 파울 보이머라는 한 군인이다. 그는 정말로 평범한 한 사병으로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학교 선생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자원 입대하게 된다. 이렇게 평범한 한 인물을 화자로 잡았다는 것에서 전쟁이라는 것을 한 개인이 견디기에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무튼 파울은 이 제 1차 세계대전의 독일군에 입대하면서 그 동안 자기가 겪어 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다. 편안하고, 안락했던 가정을 떠나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견디고 해내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협받는, 그런 무지막지한 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만큼 짓밟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묵직한 포탄과 벌떼같은 탄환이 쏟아지는 그 속으로, 자기 자신의 두려움이나 살고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 마저 무시 한 채로 달려들어가야만 한다. 오직 "명령"이라는 녀석 때문에. 그렇게 뛰어 들어가서는 무엇도 해보기 전에 쓰러져야 하는 엑스트라가 되고 만다. 미래, 꿈 등으로 이루어 나가던 자기 삶의 주인공 자리를 버린 채로, 얼굴도 보지 못한 그 권력자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위해 그 자신은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광경 속에서 파울 역시 그 엑스트라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옆에서 수없이, 그리고 아무 소득 없이 헛되이 쓰러져 가는 전우들을 보면서 자신도 멀지 않아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답답해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무엇을 얻기 위해 나의 생명까지 걸어야 할까? 이렇게 해서 무엇이 얻어진들, 과연 그것으로 나의 이 헛되게 지난 시간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또, 만약 내가 이 자리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나의 남았던 인생들은 또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라고 말이다. 이런 생각에서 군인들은 전쟁시에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파울을 통해 그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파울은 한번 척후대로 파견되었다가 가야할 길을 잃고 습격을 받게 된다. 그때 그는 한 포탄 구멍 속으로 숨어드는데 하필 그 구멍으로 적군하나가 떨어져 들어왔다. 앞 뒤 생각 없이 파울은 그 몸뚱이를 찔러 벌집을 만들어 버린다. 순식간에 사람의 생명 하나를 꺼트린 것이다. 그러나 살 수 있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 적군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본 그는 후회되고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를 살려 보려 하지만 결국에는 숨을 거두고 만다. 그 시체의 얼굴을 보던 파울은 그의 지갑에서 사자(死者)의 가족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미안한 생각에 자기 자신을 자책한다. 또 조금만 더 타이밍이 달랐다면 그는 내게로 떨어지지 않았을 테고, 그럼 저 가족들의 행복도 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는 괴로움에 절규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작가인 레마르크는 전쟁의 죽고 죽여야 하는 너무나 냉정함과, 조금만, 아주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전사자들의 허무한 죽음에 대하여 정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그 몇 센티미터를 못 벗어나 총탄에 피를 흘린 너무나 안타까운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 역시 안타까움과 분노에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한편, 작가는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아주 잔인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삽으로 내리쳐서 몸뚱이를 동강낸다든지, 잠깐 사이의 폭격에 멀쩡하던 사람의 육신이 벽에 붙어버린 피죽이 된다든지 하는 모습은 읽기만 하여도 오싹할 정도니, 전쟁의 무서움을 알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전쟁은 군인뿐만 아니라 보통 민간인까지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가를 이 소설은 잘 그려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질병에 걸렸으며, 여자들은 빵 몇 조각에 몸까지 파는 그런 비극적인 모습을 소설 속 파울은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아픔으로 바꾸어 버린다. 가까운 예로 한국 전쟁을 들 수 있다. 그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어 갔으며, 고아가 생기고, 이산가족이 생겨 아직까지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가? 이처럼 이 소설은 전쟁의 부당함에 관하여 너무나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잠시 작가 레마르크에 관하여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898년 독일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가 18세인 1916년, 제 1차 세계대전에 출전해 수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전쟁의 아픔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는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처음 쓴 작품이 바로 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 라는 소설이다. 그는 파울 보이머라는 한 평범한 가상적 인물을 설정하였다. 그리고는 그 파울이라는 인물의 오감(五感)을 통하여 전쟁의 부당함과 거기서 오는 피해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점을 1인칭시점으로 서술 방식을 독백 형식으로 하여 작가와 독자간의 거리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것 같이 실감나게 하고, 또 그 메시지가 강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파울 보이머는, 1918년 10월의 어느 날, 그렇게 전우의 수많은 죽음들을 지켜보던 그 역시 전사하고 만다. 그 전사의 배경은 너무나도 고요하다. 특별한 전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울 보이머라는 한 귀중한 생명은 꺼져간 날이었다. 그러나 전선에서 위로 보고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서부 전선 이상 없음. 보고할 사항 없음.." 그렇다. 전쟁에서 병사 한 사람의 죽음은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병사 한사람 인생의 측면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통분할 일이건만..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채로 계속 무언가를 요구한다. 아깝기만한 귀중한 목숨과, 찢어지게 아픈 이별과, 어려운 생활을 이기지 못해 굴러 떨어져 부딪히는 타락된 생활들을...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전쟁은 전쟁일 뿐이다. 그 뒤로 어둡고 칙칙한 면만을 남기는.. 그렇다. 이 파울이라는 평범하기만 한 한 소년의 죽음.. 그것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인 전쟁이라는 악마까지 함께 죽어 가기를 작가는 꿈꾸고 있다. 그래서 그 주변은 그렇게 조용하기만 하였던 것이다.//그 고요함 속에서 전쟁이라는 악마는 조용히, 그 주위보다 더 고요하게... 그렇게 숨을 거둔다.. 나는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황폐한 길이었다. 주위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나조차도 느낄 수 없는 고요함 외에는... 갑자기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나는 그 안개가 싫었다. 칙칙하고 무거웠으며.. 아무튼 그 속에 갇혀 있기가 싫었다. 나는 쉼 없이 달렸다. 눈을 감은 채로.. 갑자기 감겨진 나의 눈꺼풀에 느껴지는 한줄기 빛... 온 몸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순간 나의 몸은 하늘로 솓구쳐 올랐다. 이미 나를 힘들게 하던 그 잿빛 안개는 나의 발아래.. 한참 아래에 있다. 지금 나의 모습은... 거추장스럽던 옷들은 어디로 가고... 하얀 깃털이 덮고 있다. 나는 쉼 없이 날았다. 푸르기만 한 하늘은 이렇게 작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한 마리 작은 백(白)비둘기가 창공을 가로지른다..
눈을 떠본 나의 아침은 현충일(顯忠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