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당신의 품안에서 따스한 온정을 느끼기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당신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만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데 왜 자꾸 입안에서만 맴돌뿐인지... 하얀 달빛, 그날 밤처럼 옛 기억을 조금씩 되살려보지만, 도대체 나에게 당신은 무엇이었길래, 나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움만 쌓이게 하는 것입니까?
가끔 어린 유년 시절을 서글피 떠올려봅니다. 아니, 짧지만 당신과 함께 했던 그 안타까운 시계추만을 계속 돌려봅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만, 아니,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을 볼 수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기차는 떠난 지 오래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진리요, 사표요, 또한 쓰디쓴 약과도 같습니다.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없는 이 나쁜 놈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에 쓰라린 상처만을 짊어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 또한 단지 자신의 아들을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죽는 순간까지 아들의 삶을 걱정하기만 합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그의 아들 정다움.. 키도 작고 몸도 작은 10살의 어린 천사는 지금 백혈병이라는 악마에 맡겨져 있습니다.
악마가 몸속에 퍼지기 전에 어서 빨리 치료해야 할텐데.... 하는 아버지는 여러 번의 재발후 다시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너무나도 가엾습니다.
또래들보다 잘 놀지도 먹지도 못하는 자신의 아들이 가여워 늘 슬픕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것을 잊은 지도 오래입니다. 오직 아들의 치료에 전전긍긍하며 자신은 조금도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운명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을 실제로 실현시키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가난에 못 이겨 이혼한 부인과 제대로 받지 못한 월급 등에 그의 삶은 쓰디쓴 약처럼 늘 시리고 고달팠지만 그래도 아들의 병치료를 위해서 언제든지 자신의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정말로 눈물겨운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착한 사람을 괴롭힙니다. 일가 친척 하나 없는 다움이에게 골수이식이란 정말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지요.
이식을 하지 않고 이대로 치료만 한다면 언젠가는 꼭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기간을 조금 늦춘다는 것 밖에 지금 상황으로서는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다움이와 기나긴 여행을 떠납니다. 전 재산을 팔아서 구한 중고 봉고 차와 다움이를 위한 책 몇 권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두 부자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떨어져서는 절대로 살수 없는 ...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는 증표지요.
두 부자는 폐교가 있는 산골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늘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 옛 추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너무나도 값진 시간을 보냅니다. 속세에 묻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가 다움이를 위해 산으로 약재를 구할 때쯤이면 다움이는 나무를 깎아, 하나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아버지는 엄마의 피가 흐르는 다움이를 보면서 행복하면서도 무엇인가를 애타게 그리 원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삶, 그 자체인 아이 다움이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이레 짐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하게도 현대 의술이 미치지 않는 자연 속에서 다움이는 예전보다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훗날 크나큰 재앙의 시발점이 될 지 모르는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몰랐는지 아버지는 조금이나마 건강해진 다움이를 보며 깊은 감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해일 뿐이었습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다움이를 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의사'라는 인간의 진부함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기적적으로 일본에서 다움이와 일치를 하는 골수를 찾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눈물겨운 노력 뒤의 성사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진 거라곤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심 끝에 자신의 신장을 팔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신장은 1개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신장을 파기 위한 종합 검진 결과, 그는... 그는 망치로 뇌리를 때리는 절망 적인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그 상황은 질리도록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암이라는 것에 진저리가 납니다. 특히 간암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 .
98년 유난히 추웠던 그 날 오후... 나는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술, 담배 한번 안 피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왜 그렇게 그 사람을 떠나게 했는지.....
그를 뒤로 한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 달빛.... 아마도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못하는 한 기억 속으로 묻혀질 것입니다.
그리도 허무한 40세월..... 도대체 인간은 왜 사는 것인지 정말로 운명의 장난이 아닐까 하는 그런 비참한 생각만이 든 날이었습니다.
지금 다움이의 아버지가 어떤 상황일지 끔찍이 기억납니다.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걷잡을 수도 없이 계속 터지고 번져만 가는 암세포들에 심신은 망가져만 가고 복수가 차 오르고 눈은 황달현상으로 누렇게 되고 항암치료의 강한 독성으로 머리카락은 점점 빠져만 가면서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움이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진이 아니라 진짜로 당신은 간암말기라고 소리치는 의사들을 뒤로 한 채 그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곧 죽어버릴 것만 같은 여린 아들이 그의 전 재산과도 같았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그는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 다움이 수술만 잘 되길 빌자. 제발 수술만 성공하기를 빌자고.... .. .』
그는 자신의 각막을 팔기로 했습니다. 다움이의 수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몸을 파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하늘도 도왔나 봅니다. 결국 다움이가 해낸 것이지요. 너무나도 힘들었던 그 기나긴 세월을 뒤로 한 채 다움이는 병마를 훌륭히 물리치고 승리자가 된 것이지요. 자신의 아버지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다움이는 백혈병으로부터 해방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끔찍하게 변해갔습니다. 나는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저리를 치며 곧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랑했던 사람을 너무도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그 아픈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던 거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자, 그는 다움이에게 끝까지 속이기로 결심을 하고 다움이를 프랑스에 있는 엄마에게로 보냅니다.
다움이는 울면서 매달립니다. 「아빠, 날 버리지 말아요. 난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요. 그 누구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요.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우린 영원히 함께 하자고 약속했잖아요.」
사실 그것은 내가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말인데...
아버지도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끔찍이 아꼈던, 진짜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조차 없는 하나밖에 없는 다움이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아빠의 심정.......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모든 세상이 웁니다. 너무나도 애절한 슬픔입니다.
아버지는 죽기 며칠전 지난번 다움이와 함께 여행했던 학교를 찾아옵니다. 떠나간 아들의 체온을 마지막으로 애절히 느끼고 싶었는지, 그때 힘들었지만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아버지는 하얀 눈을 맞으며, 가시고기처럼 죽어갑니다.
「잘 가라, 아들아. 잘 가라, 나의 아들아, 이젠 영영 너를 볼 날이 없겠지. 너의 목소리를 들을 길이 없겠지. 너의 따뜻한 손을 어루만질 수 없겠지. 다시는 너를 가슴 가득 안아볼수 없겠지.
하지만 아들아, 아아 나의 전부인 아들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너는 이 아빠를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겠지. 하지만 아빠는 언제까지나 함께 앞으로 걸어가는 거란다. 네가 지칠까봐, 네가 쓰러질까봐, 네가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설까 봐 마음 졸이면서 너와 동행하는 거란다. 영원히, 영원히.....」
나도 지금 아버지가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눈물이 이제는 다 말랐다고 생각하는데도 막상 아빠를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얼룩집니다.
아빠의 무덤에는 하얀 꽃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늘 새가 지저귀고 구름이 노래를 불러줄것입니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노릇을 한 나의 불쌍한 아버지... ... .
너무나도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사랑하노라고,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노라고...
당신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도 겁이 납니다.
어미를 잃은 나비처럼 날개를 떨군 채 삶을 헤쳐가기엔 내 자신이 나약하고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 .꿈에서라도 늘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며칠전 꿈속처럼 당신의 품에 안겨 눈물을 터뜨리고 있던 나를 되새겨 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제발 잊지 말자고... 언제나, 영원히.
그에 대한 애틋함을 더욱 가슴깊이 사리게 한 가시고기... ... .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진리와 그 아픔에 대한 성숙을 일깨우게 해준, 한 편의 동화 같은 책! 가시고기.
그리고 자식의 희생을 애절하게 담은 아름다운 서사시...
정말로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 한편을 읽어서 나의 성숙된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왜 이리도 오늘 밤 당신의 음성과 미소가 그리운지..
가슴깊이 위안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