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잠언서' 생떽쥐 베리가 지은 '어린왕자의 머릿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린왕자가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 책을 삶의 잠언서라고 까지 하는 것일까?? 이런 호기심이 앞서 첫 장을 펼쳐본 어린왕자는 흥미도 있었지만 나의 생각을 바꿔놓는 계기로 다가왔다.
어린왕자는 조선시대 말기에 많은 작가와 정치가들이 동물의 입을 빌려서 자신의 생각, 조선시대 당시의 부패된 사회를 비판하는 그 당시의 소설들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어린왕자'는 별나라에서 왔으며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갖고 있는 어린왕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어른들의 잘못된 관행, 비뚤어진 삶의 태도를 비꼬아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어른들로 하여끔 반성케 하게된다. 그런 점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화자는 '나'로써 나는 단독 비행도중 기관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작은별에서 지구를 찾아왔다는 어린왕자를 만나게 된다.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고 어린왕자가 양을 한 마리 그려 달라고 한다. '나'가 많은 양들을 그려도 어린왕자는 다시 그려달라고만 한다. 결국엔 '나'가 짜증이 나서 상자하나를 그려주며 말한다.
'니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라고 하자 어린왕자는 기뻐한다. 그 모습에서 엉뚱하기도 하지만 뛰어난 상상력과 틀에 박히지 않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 같으면 성의 없는 태도에 화를 냈을텐데. 그리고 요즘 어른들을 생각해 보았따.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고 하면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일에 더 충실할 어른들, 내가 배우는 교과서에는
'나이가 몇이지? 형제는 몇이고? 체중은 얼마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 하고 판에 박힌 질문만을 던지며 어떤 집안인가를 알려고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분홍색의 벽돌집을 보았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고 하면 이해하는 어른들, 그 어른들의 질문이 순수한 정서를 갖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무척 이상하고 난처하게 느껴질 것은 틀림없다.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것, 그 자신의 고유성을 갖고 있는 것일텐데 때묻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 때문에 눈같이 하얀 아이들의 깨끗한 마음씨가 더럽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이들마저 어른들의 때묻은 상식에 오염된다면 10년 뒤의 이 세상은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사회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왕자가 혹성에서 만난 권위만 쫓는 왕, 허영쟁이 술고래, 숫자만 좋아하는 상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정한 용기와 우정, 그리고 어린왕자의 때묻지 않은 마음씨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이런 나의 부끄러움을 극에 달하게 해준 부분, 하지만 이 책에서 제일 마음속에 깊게 와 닿은 부분이 있다.
'누가 수백만개 수천만개 별중에 하나밖에 없는 곷을 사랑하고 있으면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스러운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디고 내 꽃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렇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봐. 이건 그에게는 별들이 모두 갑자기 빛을 잊은거나 마찬가지야'
어린왕자가 한 이 말에서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약한 꽃 한송이에 불과할 지라도 그 꽃을 내가 손수 가꾸고 보살폈다면 그것은 화원에 풍성하게 펴 있는 장미가 비록 탐스럽다 하여도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내가 정성과 사랑이라는 중요한 것보다 겉으로 비춰지는 아름다움만을 쫓아다닌 것은 아닌가 하고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 책의 몇 배만큼 많다. 사랑과 정성의 가치, 영원히 없어져서는 안될 순수함의 중요성 등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아름다운 동화는 현대의 물질만능주의와 권위주의, 허풍 등 어른들이 세운 추악한 가치질서에 획을 그은 동화로써 내가 어른이 되어도 어린왕자가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왕자'라는 이 동화가 내 마음속에 너무도 깊게 와닿았기 때문에 내가 어린왕자를 잊지 않는 날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