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루 타 ' 라는 영화는 어렸을 적 보았던 영화 중 유일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감독이 누구였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오로지 그 당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들과 대사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왜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인을 '마루타'라고 부르는지 , 그리고 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끔찍한 실험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몇 년뒤 정식적으로 배움의 길을 걸으며 나는 마루타 가 통나무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인은 중국과 한국인을 통나무와 같이 생명이 없는 , 하나의 무생물체로 여겼던 것이다. 즉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그 끔찍했던 장면들이 생체 실험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점점 더 깊이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우리민족이 당했던 아픔을 느끼며 일본에 대한 분노에 떤 적도 많았다. 그리고 내가 더 분노했던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과거 자신들이 동남아국가들에게 했던 악행을 사과하고 배상을 해야 마땅하건만 그들은 그것마저 무시하고 그것은 경제성장을 촉진시켜 주기 위한 도움이었다며 말도 안 되는 모든 이유를 끌여붙어 회피하고 있고, 급기야 자신들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교과서까지 왜곡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처음 교과서왜곡 이라는 신문기사를 보았을 때, 난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상식으로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역사가와 시대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보편적인 기준은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보편적 기준에서 일본의 침략행위는 명백한 국권침탈이요, 인권 무시였다. 하지만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본래 자신의 영토를 되찾은 것일 뿐이라며 대응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무지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응은 어떠한가? 우리의 역사까지 없애려는 것을 알면서도 \"유감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버리는 우리나라 정부에 난 큰 실망감이 들었다. 그리고 잠깐동안 냄비처럼 들 끊다가 식어버리는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던 중 나의 눈에 황태자비 납치사건 이라는 책이 들어왔다.
명성황후시해와 황태자비의 납치사건, 그리고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진실!!
무엇보다도 내 눈을 잡아끄는 제목이었다. 난 이 책에서 나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인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 은연중에 믿으며 난 책장을 넘겼다. 책에 빠져들수록 난 더 목말라 갔다. 우리나라에 인호와 같은 사람이 왜 없는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소 적극적인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행동을 못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모습에 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제 2의 을미사변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민족 모두가 명성황후이고 희생자이다. 일본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듯 소설속 모리와 와타나베, 일본정부 모두 우리민족의 가슴에 칼을 겨누고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이미 도망쳐 버리고 자신의 임무를 망각해 버린 임선규의 할아버지처럼 우리를 지켜야 할 우리의 울타리는 이미 형체를 잃어버렸고 별다른조치없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던져져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눈시울을 붉혔던 장면은 인후가 자살을 할 때였다. 자신의 목을 겨눌 때, 갑자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가 죽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도 함께 죽어버릴 것 같다는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들며 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를 죽인 것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였다. 일본인의 손을 빌려 죽었을 뿐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무능한 우리 정부였고, 무관심했던 우리나라 이었던 것이다. 인후는 명성황후를 구하기 위해 몽둥이 하나를 들고 경복궁으로 달려갔던 그의 선조의 얼을 그대로 받아 의롭게 죽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어떠한가?
거듭되는 일본총리의 망언과 고위층의 망언에도 별다른 유감을 표시하지 못한 채 한껏 더 고개를 움츠리고 대응하는 우리의 현주소. 과연 이것이 진정한 인내의 의미일까?
선조들의 자주정신일까? 되물어 보고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 중 하나인데, 이 책은 단순히 명성황후의 시해에 대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교과서 왜곡에 종지부를 찍는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라는 뜻인 것 같으나, 난 아쉬움밖에 남지 않았다. 난 그런 식의 해결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 즉 우리 민족의 자각을 원했던 것이다. 이 소설대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안심하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경제력을 높여 일본에 대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결말을 맺었으면 했었다. 물론 일본에 낭인과 같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 인간적으로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황태자비나 일본인의 전형적인 상이면서도 이성을 가지고 생각했던 다나카 형사처럼 현재를 똑바로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일본인도 많다. 그렇기에 '새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책의 정식 채택률이 5%도 안 된다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자각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내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더 갈증을 느껴야만 했다. 이 책은 나에게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했고, 또 다른 희생자인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우리민족은 더 이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 좀더 적극 적인 방법으로 일본에 대응해야 한다. 항상 반복되는 그들의 망언과 행동. 그리고 침략행위 옹호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정신위안부에 대한 보상 등을 철저히 따져 국가적으로 배상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 또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 더 이상의 시대 착오적인 발상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군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 이른바 세계정복을 꿈꿀 것인지 심히 걱정스러운 바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이 옛날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정당한 방법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21세기에 동반자로써 함께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