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남겨놓은 이상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가시고기에서 마지막으로 다움이 아빠가 남길 말이다. 이 때 내 눈에 흐르는 눈물 한줄기가 있었다. 누군가가 추천해서 읽게 된 책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베스트 셀러 이었기에 읽은 책도 아니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아버지라는 책을 읽었고, 가슴 찡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난 가시고기라는 책에 손이 간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 이라는 주제에 내가 왜 그리 관심을 가졌는지...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이 된 후에야 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공부를 핑계로 나의 생활을 핑계로 혼자 생활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이해 못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은 극에 달했고, 특히 아버지에 대한 나의 분노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무생각없이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 싫었었다. 그분이 무슨 행동을 하던, 나에게 끝임 없는 관심이 부담스러웠었다. 그렇게 무조건 적인 악의만을 내뿜으며 1여년의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렇게 철이 없었던 나로 인해 부모님이 받으실 상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기주의자, 그것이 바로 나였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고, 아버지란 책을 접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사랑 받지는 못하는 소설속의 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고, 그 날 저녁 아버지를 보았다. 어린 시절 정말 믿음직스럽고 언제나 존경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변해 있음을 느꼈다. 힐끔힐끔 보이는 흰머리에 마르신 몸, 그리고 쓸쓸한 말투까지 모든 것이 생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1여년 동안의 반항 때문이었을까..
하찮은 나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난 그 때에게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자식으로서 죄송하다고 말하면 될 일을 무지했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시고기를 읽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주고 죽어 가는 다움이 아빠의 모습에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내 아버지가 가시고기였음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는지...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 뒤로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 흉을 볼 때 난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이런 점이 싫다며 같이 맞장구 칠 수 가 없었다. 다움이 아빠는 다움이를위해 자신의 각막을 팔았고, 나의 아버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대가로 치르셨다. 다움이 아빠가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가 싫어하는 시를 쓰면서도 견딜 수 있었듯, 나의 아버지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기 위해 모든 일을 하셨다. 그리고 다움이가 웃을 때 웃던 아이의 아빠처럼 내 웃음과 기쁨에 나의 아버지도 웃으셨다.
나의 분노가 삭으러 들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다움이 아빠가 돈이 없어 겪으셨던 온갖 시련들보다 아버지는 더 힘든 시련을 겪으셔야 했었고, 난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다. 다움이처럼 그냥 방관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어느 누구도 비난하는 이가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모습으로 대했고,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다움이처럼 솔직한 내 맘을 털어놨다면 좋았을 테지만, 난 끝내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 일이 걱정될 때면 엄마를 통해 물어보았고, 그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날 아버지는 집에 오자 마자 나를 찾으셨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활짝 웃으시며 나에게 오는 아버지. 항상 자신에게 쌀쌀 맞게 대했던 딸에게 그리도 친근히 다가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울컥 나왔었다. 난 그 날 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모든 것을 녹였다. 그리고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아보았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그러셨다. 언제나 철없이 화내는 것은 나였고, 용서하는 역은 언제나 나의 아버지의 몫이었다. 가시나무의 다움이와 아빠처럼 말이다.
내가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꼈을 때조차도 함부로 그 분의 험담을 늘여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무의식 중에라도 그분의 사랑을 알았었기 때문이리라...
어떤 사람들은 가시고기가 눈물을 짜내기 위한 소설일 뿐이라고 한다.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눈물 짜는 그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나와도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이 책에 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다움이와 나를 동일시하며 아버지의 존재를 깨달았음에,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아빠가 가는 곳은 어느 곳이나 따라 갔었다고, 항상 아빠를 기다리고, 안겼다고...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장난삼아 말씀하셨다. 그 안에든 슬픔을 난 몰랐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다움이를 프랑스로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자신의 품안에서 떠나려는 자식에 대한 섭섭함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쓸데없는 반항 따위는 하지 않는다. 가끔씩 있는 문제들은 어느 부녀간에 있을만한 자그마한 다툼일 뿐, 나의 마음은 이제 평온하다.
\"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남겨놓은 이상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처음에 썼듯이 내가 눈물을 흘렸던 이 글처럼, 사람은 아이가 있다면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아버지에 대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의 행복을 비는 지 알기에 난 나의 삶과 당신의 지나온 삶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당신께서 이 세상의 한줌이 흙이 되어도 당신을 그리는 내가 있기에 당신은 이 세상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할 수 없겠지만, 다움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꼭 한번 말해보고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