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책 위에는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오래전에 읽고 그 동안 손에 잡지 않던 책을 다시 잡은 이유는 작문 숙제 때문이다. 손으로 먼지를 살짝 쓸어내고 책장을 열었다.
한국 현대 소설을 묶어놓은 책 속에서 내 눈이 멈춘 곳은 <감자>이다. 처음 중학생이 되어 이 책을 펼치며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에는 그냥 재미있었고 복녀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나’ 복녀에 대해 오로지 더러운 여자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때보다 더 많이 사회라는 곳에 물든 나는 다른 느낌,깊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얌전하게 자란 복녀. 이름마저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녀에게 삶이란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 삶이란 울퉁불퉁 험난하며 점점 꺼져가는 가로등과 같을 뿐이었으랴. 희망과 지조로 찬란하던 복녀의 인생은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에서 빛을 잃고만다.
살기위해 몸을 파는 여자.. 어릴 적 복녀에 대한 내 생각의 전부이다. 자신의 몸을 팔면서지조와 절개마저 내던지며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라는 의문에 원망까지 갖게 되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서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물질을 갈구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목구멍까지 그녀에 대한 무언가가 차오르곤 했다.또한 그녀의 죽음이 구차하고 더러운 삶의 끝이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책을 펼친 나의 마음에 쓰라리고 저린 어떤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복녀의 삶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멸하는 삶일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복녀를 향해 비난의 눈빛과 야유로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속에서 생각해 본다.복녀를 그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그것은 복녀에게 돈으로 몸을 요구한 왕서방도, 돈으로 부인을 팔아넘긴 남편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우리는 그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의 욕심 뒤 켠 에서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절개마저 짓밟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릴 적 나도 복녀와 같은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않는다. 사회의 어두움 속에서 삶의 마지막 빛줄기를 찾아 해매다 비참하게 눈감아야 했던 복녀에게
나는 손가락을 뻗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맑은 영혼을 탁하게 물들인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에 말이다.
사람이기에 우리는 사회 안에서 상황 속에서 삶이 바뀌어 간다. 한 가지 내가 깨달은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을 덮는 내게 남는 감동이란 깊은 것이다.
지금 창밖으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햇살보다 밝게 빛나는 저 아이들의 순수함이 사회로 인해 검게 물들지 않게 지켜주고 싶음을 <감자>를 읽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