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던 중 제목에 힘있고 웅장하여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구성이 특이하게 되어있다. 이 소설은 처음에 작가가 나와 소설을 조금 소개하고 그 다음 음악 평론가 K씨, 사회교화자 모씨가 성수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가 쓴 편지 내용을 말해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성수는 아버지의 천부적인 재능을 이어받아 야성적이고 힘이 있는 곡을 잘 만드는 천재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술에서 강한 자극을 받고 그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강한 자극을 받아 곡을 쓰는 어떻게 보면 천재이면서 범죄자, 그리고 정신병자이다. 예를 들면 불을 지르고 그 광경에 흥분하여 '광염 소나타'와 K씨가 그만하라고 소리지를 정도까지 흥분과 야성적인 힘을 갖고 있는 '성난 파도'를 작곡한다. 그는 광포적인 야성을 위해 계속 불을 지르나 그 야성적인 힘이 점점 줄어들자 좀 더 자극을 받으려고 우연히 발견한 노인의 시체를 고양이가 알을 가지고 놀 듯 이리 저리 집어 던져 '피의 선율'을 작곡하고, 달밤에 예쁜 처녀의 무덤을 파 보고는 흥분하여 '사령'을 작곡한다. 그리고 성수는 광포적인 야성과 힘을 얻기 위해 사람까지 죽이게 되어 죽이는 그 흥분으로서 야성적인 힘이 있는 음악을 만든다. 즉 하나의 음악이 하나의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지금 이시간까지 해결하지 못한 한 가지의 의문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성수가 처음 불을 지르게 만든 장본인 '담뱃가게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성수의 내재된 열정과 야성적인 힘을 끌어내게 했으니 좋은 인물이라 해야 할까? 아님 그의 야성적인 힘과 흥분을 위해 도구로 사용된 사람을 생각해 나쁜 인물이라 해야 할까? 만약 담뱃가게 주인이 조금이라고 '인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성수가 의사를 부를 수 있게 돈을 졌다면 성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천재'의 소질과 '범죄본능'이 나타났을까? '인정'이라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 '기회'처럼 이로움과 해로움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사회가 막막하고 인정이 없다고 사람들끼리 안 좋은 현상이라고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K씨와 같이 성수와 같은 천재 음악가를 기다리는 예술가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인정이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이 소설 중간에 K씨가 모씨에게 "'기회'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내었다면 그 '기회'란 것을 저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축복해야 하는가?"라는 의미의 질문을 했는데 내가 만약 모씨처럼 저런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나는 이 소설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또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당연히 그건 저주지'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난 후 다시 질문해 보니 대답은 그게 아니였다. '저주다.. 축복이다.. 어떤것이다.'라고 정확히 말할 수가 없었다. 말 할수 없을 뿐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말해 버리는 나쁜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