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
날짜 : 2003년 01월 08일 (수) 6:4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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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
이 책의 저자인 정재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르고 있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과학과 연관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이 책으로 접하면서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보람이었다. 특히 저자는 편안한 문체와 사진, 그리고 예를 통해서 일반 사람들도 과학에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책은 모두 4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 1악장은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Vivace molto), 제 2악장은 느리게(Andante), 제 3악장은 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Grave non tanto) 그리고 마지막 4악장은 점차 빠르게(Poco a poco Allgro)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악장 별로 5개의 주제가 들어가 있다. 각 주제의 첫머리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의 한 대목이나 영화의 한 대목 등이 실려 있다.. 20세기를 흔든 최고의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록, 스탠포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 브라이언 아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소설 <고독>의 한 대목,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중의 한 대목 등 주제와 관련된 문장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끌게 만든다. 그리고 주제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더욱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하려는 저자의 독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들어있다.
“토크쇼의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주식 시장에 뛰어든 나사NASA의 로켓 물리학자들” “산타클로스가 하루 만에 돌기엔 너무 거대한 지구” “서태지의 머리에는 프렉탈이 산다.” 제목만 봐도 읽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독자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렇게 재미있는 제목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이 통계학, 금융 공학, 복잡성 경제학, 자본주의의 심리학, 교통 물리학, 소음의 심리학, 박수의 물리학, 사이보그 공학, 심장의 생리학, 지프의 법칙, 프랙탈 음악, 아프리카 문화, 케빈 베이컨 게임, 머피의 법칙, 웃음의 사회학 등 우리가 약간은 생소하게 생각할 만한 것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겁게 읽었던 주제는 “크리스마스 물리학: 산타클로스가 하루 만에 돌기엔 너무 거대한 지구.” 이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한 뒤에 차례를 보았을 때, 앞 뒤 순서도 막론하고 첫 페이지를 핀 것이었다. Pg 228 부터가 시작이라니. 체계적으로 읽지 않아서 약간은 복잡해 질 것 같았지만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그냥 읽기 시작한 것이 재미있을 법한 주제들을 선택해 가면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뒤죽박죽으로 읽게 되었다. 하지만 다 기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산타클로스에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12시간은 적당할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는 그 전 세계의 아이들을 제쳐놓고라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나한테 먼저 선물을 갖다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중학교 때 직접적으로 배우게 된 그 크나큰 지구는 누돌프 50여 마리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빨간색 썰매에 비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그 이후로 나는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부모님께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게 되었다. 커가는 것은 이렇게도 재미없는 것일까.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오는 특선영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아직 내가 다 크지 않았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때마침 미국의 뉴스에서는 미국의 조종사 2명이 최첨단 전투기로 산타클로스를 쫓아가고 있음을 전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뉴스에서는 “지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50여 마리의 누돌프와 함께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상공을 지나고 있습니다.” -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 라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산타클로스가 전 지구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0.0007초 만에 지붕 근처에 썰매를 주차시키고,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선물 놓고, 다시 나와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0.0007초 이지 아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면 굉음과 함께 모든 유리창이 다 부서지고, 사람들은 기절을 할 정도일 것이다. 왜 산타클로스가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하는지 수학적인 계산을 통하면 이렇다.
<유니세프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전 세계적으로 21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태교를 믿는 어린이를 제외하고 나면 약 4억 명의 어린이가 산타클로스의 귀여운 고객이 된다. 한 가정에 평균 2.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보고 그 중 한 명만 착하다고 가정해도, 산타클로스는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시달려야 한다.
<br/> 산타클로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이브 단 하룻밤뿐. 지구의 자전을 고려해 지구 자전의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선물을 나누어줄 경우 약 31시간 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 31시간 동안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하려면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만약에 힌두교나 불교, 유태교 등 종교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산타클로스를 믿는 착한 어린이들이 있다고 하면 1초에 2,000가구는 족히 될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초인인 이유를 또 하나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집과 집 사이를 이동하는 데도 가히 천문한적인 속도가 필요하다. 반지름 6,400킬로미터의 지구 표면적은 5억 1천만 제곱킬로미터. 그 중 29%만이 땅이므로 지표면의 면적은 1억 5천만 킬로미터가 된다. 집들이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고 가정하면, 집과 집 사이의 평균 거리는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br/> 1킬로미터씩 떨어진 1억 6천만 가정을 3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방문하려면 초속 1,434킬로미터로 달려야 한다. 굴뚝을 타고 내려가 선물을 나누어주는데 걸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이것은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의 무려 4,218배. 즉 마하 4,218인 것이다. 사슴이 달리는 속도가 보통 시속 20킬로미터 정도라 하니, 산타클로스는 보통 사슴이 달리는 속도 보다 26만 배나 빠른 속도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하늘을 질주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광속을 넘지 않는다는 것. 상대성 이론을 위협하는 속도는 아니라는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마하 4,218의 속도에서 나오는 충격파(sonic boom)으로 아이에게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시킨 리차드 도킨스에게 “잔인한 과학자!”라고 재미있는 한 예를 들어주고 있다.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산산조각 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을 들어보겠다.
<초속 1,434킬로미터로 달려야하는 산타클로스가 한 가정에 0.0007초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설정은 산타클로스의 ‘존재’ 자체를 충분히 위협할 만한 물리적인 상황이다. 그가 순식간에 초속 1,434킬로미터의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크기의 가속도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0.0001초 만에 초속 1,434킬로미터에 도달한다고 가정하면, 산타클로스는 지구가 잡아당기는 중력보다 14억 배나 큰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아마 출발하자마자 썰매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지 않을까?>
중력 14억 배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산타클로스가 초인인 또 다른 이유로 그가 싣고 가야할 착한 어린이들의 선물의 무게를 들 수 있다.
<아이들마다 레고 선물세트를 준다고 가정하면 무게는 약 1킬로그램 정도. 모두 합치면 무려 1억 6천만 킬로그램이 된다. 보통 사슴이 끌 수 있는 무게가 약 150킬로그램 정도이므로, 1억 6천만 킬로그램의 썰매를 끌려면 106만 마리의 사슴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던 50여 마리의 사슴이 아니었다. 2만 배나 더 많은 106만 마리의 사슴이 필요하니, 산타클로스의 사료 값은 도대체 얼마나 나가야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산타클로스가 초인이 마지막 이유로 그가 찾아야 되는 ‘가장 짧은 경로’ 로 모든 아이들의 집을 돌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세일즈맨의 이동 문제(traveling salesman problem)’로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세일즈맨의 이동 문제는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머리 씨름을 하던 문제인데, 그 수가 무시무시한 정도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세일즈맨이 물건을 팔려고 5개의 도시를 방문하려고 한다. 한 도시를 한 번만 방문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짧은 경로는 120개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가 10개가 된다고 하면 그 경우의 수는 3,628,800 으로 늘어난단다. 만약 25개의 도시를 방문해야 하는 세일즈맨이 가장 빠른 경로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할까? 1초에 1백만 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에게 이 일을 시킨다고 해도 무려 4,900억 년이 걸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나이는 약 100억 년. 짐작이 가는가? 이런 세일즈맨의 이동 문제를 토대로 해서 1억 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산타클로스가 가장 빠른 경로를 찾으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하는지를 짐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수의 계산 문제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그의 세심한 배려에 웃음으로 보답할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다시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올해는 무슨 선물을 받게 될까’ 라는 기대가 아닌 ‘1억 6천만 킬로그램이나 되는 선물 꾸러미를 썰매 뒤에 싣고, 106만 마리의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0.007초 만에 굴뚝으로 들어가 선물을 나누어주고 나오는 모습, 그리고 중력의 14억 배나 되는 힘을 이겨가며 31시간 동안 1억 6천만 가정을 쉬지 않고 방문해야 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또 말한다. “몇 년 후 크리스마스 아침, 내게도 산타클로스의 선물에 즐거워 할 아이들이 생긴다면 녀석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것인지를...”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던진다.
:-)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이 2000년 우리나라에도 <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단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영국의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과학기자인 로저 하이필드의 계산 - 착한 어린이냐 나쁜 어린이냐, 종교가 무엇이냐에 상관없는 계산 - 에 비해 자신의 계산은 아이들에겐 다소 가혹했으나 산타클로스에겐 더없이 인자한 계산이었다고 말이다.
나도 이제 이런 계산에 익숙해 졌다. 비록 이런 계산들이 다 쓸데없는 것이고,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큰 값을 나오게 하는 것들이지만 이렇게 해서 그것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작은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른이 되었다는 하나의 증거임에 불과하다. “어른들은 그 사람의 집이 몇 평이고, 가족이 몇 명이며, 재산이 얼마인지를 좋아한다.” 어린 왕자의 따끔한 충고이다.
이 한 가지 제목을 읽은 뒤에 어떤 사람이건 다른 주제로 눈이 가게 되어있다. 적어도 책을 좋아하고 과학을 좋아하고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곧 다음 페이지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는 이렇듯 여러 가지 예와 함께 흥미로운 주제, 약간은 비현실적인 값이 나오는 계산 등을 통해서 독자들의 머리 속에 정보를 꽉꽉 채워준다.
이런 주제의 글들을 20개나 읽으면 그 보람과 희열은 오죽하겠는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 나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휴일에 롯데백화점에 가게 됐을 때도 상품 구경이 아닌 상품 진열의 원칙과 각 층의 나열된 상품의 종류, 여성 의류 매장에서의 의자의 위치나 상품 진열의 눈높이 등 과학적인 분석으로 백화점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며, 복잡한 차로에서 차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내가 있는 차선이 아닌 다른 차선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착시 효과도 확인해 보았고, 패스트푸드 점의 의자가 딱딱한 이유와 빠른 음악을 틀어준 이유를 몸소 체험하면서 들어갔을 때부터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해보았다.
책 속에서 얻은 것은 인생의 반이고, 책 속에서 얻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그 나머지 인생이라고 하였다. 이 책을 다시 보는 지금 책의 두께는 더욱 더 두꺼워 보이고, 표지의 빨간색 무늬는 더욱 더 빨갛게 보인다. 정재승 저자 자신의 소개가 나오는 첫 장 표지 디자인에서 저자는 여러 포스터가 있는 번잡한 도심 속의 한 벽에 기대어 서 있다. 과학의 산물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사물을 대하지 말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나의 제 1의 과학 교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