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 후이징 장편 소설 (후이징? 이름에서부터 독특한 향이 나지 않는가?)
박민수 옮김 (이 사람도 독특한 사람을 것이다.)
문학동네 (이 출판사는 독특할까?)
정가 : 8천원 (밝혀도 되겠는가?)
“그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성찬이다.” ― 아마존 리뷰. “플라톤 니체 루소 칸트 벤야민 리히텐베르크 비트겐슈타인 롤랑 바르트 패터 한트케 등 수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텍스트로 엮인다.” ― 보헨포스트 베를린.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책, “책벌레.” 얼마 전, 교보문고에 들렸을 때, ‘클라스 후이징’이라는 독일의 베스트셀러 저자가 써낸 마법의 책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껴 사게 된 이 책이 나는 그렇게도 신비한 책인 줄은 몰랐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문장)들로 이루어진 글들은 그저 독자들을 그리로 따라오도록 유도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 독서의 불황기에 빠져든 나에게 내려진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후루룩’ 마실 수 있게끔 중간 중간에 소괄호와 여러 가지 기호들을 사용하면서 인도하고 있는데, 그는 마치 한 사람의 꼬마 아이를 대하듯이 타이르거나 혹은 한 사람의 동갑내기 친구를 대하듯이 농담을 ‘툭’ 던지고는 (바로 옆에 있는 한 친구를 대하듯이 말이다. 독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는 세상에 몇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내 정색해버리는, 말하자면 “웃긴” 작가이다. (이 ‘웃긴’이라는 단어의 뜻을 외모에 빗대어 나타내는 비꼬는 말로 생각하지 말기를...)
그의 제시에 따라서 양탄자를 타고 이 책을 후루룩 마시면 독서는 이미 끝나버린다. 굳이 책을 읽는 ‘독서’라는 개념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 책에서 언급한 대로 ― ‘마셔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신비하게 읽히는 책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것도 소설책 분야에서는 말이다. 그의 박식한 머리와 놀라울 만큼 뛰어난 문장력으로 독자를 이미 책 속으로 빠뜨린 그는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와 ‘팔크 라인홀트’ 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들을 우연치 않게 만나게 함으로써 이 이야기의 결말을 짓는다. 두 사람은 ‘책벌레’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는 내성적인데 반해서 ‘팔크 라인홀트’는 그와 정반대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책인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기묘하고 교훈적인 삶’을 통해서 ‘팔크 라인홀트’ (이름의 언급이 신경 쓰이는가? 그럼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를 Y로, ‘팔크 라인홀트’를 L로 줄여서 생각하라. 어떤가? 더 쉽지 않은가? 거추장스럽다면 가능한 한 기억하기 쉬운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도 나쁘진 않다.) 는 ‘최후심판은 언제, 어떻게 도래할 것인가’와 그것과의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박식함을 위해서 장사꾼과 박사를 사상(부상과 사망인가? 사망과 부상인가?) 시킨 ‘Y’이 언급한 세상의 종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커튼을 열어본다. 아무 일도 없다. 하지만 라디오에서는 ‘환경오염’, ‘테러의 난행’, ‘시민 폭동’과 같은 “예언” 상에 언급된 일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L은 더욱 더 흥미를 갖는다. (L, Y가 편한가? 대답하라.) 하지만 그도 1991년 9월.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더 많은 텍스트들을 빨아들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했던 두 사람의 최후가 이렇게 쓸쓸하고 고독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에게는 그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클라스 후이징의 악한 성격 때문에 이런 죽음을 맞이하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분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언급을 통해서 소설 상에서 주인공인 Y와 L의 행동을 보며 그들에 대한 생각이 180도 전환되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곤 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술사이다. 그의 생각에 열심히 끌려 다니다가 215쪽의 ‘책벌레’를 끝냈다. 그는 나에게 책을 후루룩 마시게 한 것이다. 너무나도 원통하다. 분하다. (왜 그런지 짐작 했는가?) 책을 이렇게 홀라당 다 마셔버리다니... 보통 책은 밤을 새우면서 꼬박 읽는 맛으로 읽는다. 하지만 단 3시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 두 주인공 (Y와 L)의 입장이 되어서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나로 돌아왔다. 억울하다. (이 ‘억울하다.’ 라는 말을 웃으면서 한다면 진짜 억울해 보이겠는가?)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 책을 마신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