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책을 읽기를 시작한 이래에 자주은 아니지만 도서관을 일주일에 한번은 찾고 있었다. 전에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문학보다는 흥미위주인 판타지나 무협따위들을 즐겨 읽고 있었기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소설을 읽었다고는 볼 수는 없었을것이다. 흥미위주인 소설들은 읽기 쉽고 재미있지만 어디까지나 즐기기위한 소설들이기때문에 소설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벤트로 매꾸는 방식의 소설이 많다보니 쉽게 질려버린 특성때문인지도 모른다. 장르마다의 소설의 특성은 있기야 했겠지만 독후감에 별 상관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도서관에서 눈에 띈것이 바로 이문열님이 엮어낸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이라는 책이였다. 이문열의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은 솔직히 없을거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학의 어머니로 불리우는 한국 문학의 거장이기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칼레파 타 칼라' 그외 단편 5편만 봤을뿐 그외는 보지 못했다. 칼레파 타 칼라의 소피클레스의 '칼레파 타 칼라'-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라는 구절로 소설의 끝 마무리를 짓는데 가끔 내용을 떠오르면 그 구절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한다.(제목이니까 당연할테지만;) 나는 단편 몇편을 봤을뿐이였지만 순간의 가슴 깊이 떨려오는 그 미열을 잊을 수 없었다.)아직 제대로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서 아직은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관심이 가장 많은 작가임에 틀림없을것이다. 또한 단편집이긴 하지만 그 글마다 작가가 틀려 작가 마다 다른 매력이 있는 글을 보게 될것이라고 생각되어 뽑아 본것이 이 책였다. 하지만 단편집이라 하지만 여러 단편집들을 모아놓았기때문에 장편 못지 않은 총 10권으로 주제에 따라 엮어 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 2권의 죽음의 미학편의 두번째 이야기는인 '숲속의 죽음'은 그리 행복하지 않던 인생을 살다 숲속 조그만 공터에 잠들다 싶피 죽은 어느 노파의 이야기 였다. 제 3자가 그려낸 노파의 대한 이야기는 노파를 주심깊게 관찰하며 이끄려가는 이야기보다는 제 3자인 '나'가 후 일 노파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내면서 이야기를 되감은 비디오처럼 노파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였다. 그녀는 젊은 적 독일인 농장주인의 계약된 소녀였으며 그 곳에서 농장주인은 그녀에게 흑심을 품어왔다. 결국 그녀는 농장주인를 피해 제이크와 결혼했지만 그녀가 제이크를 먹여 살려야 했고, 그의 아들또한 아버지를 닮아 훌륭한 아들이 되지 못해 아버지를 따라 밖에 나가 살기 일쑤였고, 그녀는 삐적 마른 개 몇마리와 배고픈 가축들을 먹여 살아왔던 외롭고 쓸쓸했던 그녀의 삶속에서 슬픔이나 운명에 대한 노함보다는 그리 살아왔던 회환같은것을 느꼈다.
'굶어 죽다니? 아니지, 다들 먹여야지, 사람도 먹여야 하고, 쓸모는 없지만 팔아 치울 수 있을지 모르는 말들도 먹여야 하고, 석 달 동안 젖 한 방울 짜내지 못하는 삐쩍 마른 불쌍한 젖소도 먹여야지. 말, 소, 돼지, 개, 사람들, 모두들 다 먹여야지.'
노파의 생각일런지 모르는 이 글귀를 보아서라도 노파의 생각과 일생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위 글귀처럼 노파는 평생 동물의 생명을 먹이고 살아갔던 인생이였것이다.
노파가 숲속의 작은 공터에서 숨졌을 당시에도 가축에게 먹일 곡식부대를 앉고 한 숨의 휴식이였던 처럼 노파는 눈속에서 의미모를 개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졌을테고, 노파가 죽은 다음 개들이 노파의 곡식부대를 먹으려고 노파의 육신을 한올 상하지 않고 옷만 찢겨 다른 이들에게 발견된 노파의 육신은 노파가 살아 오면서 쪼글쪼글해지며 흉한 나무껍질같았을 흉한 육신을 흰 눈에 얼어 마치 아름다운 여자의 나체로 탈바꿈하여 그 주위를 돌던 의미모를 개들의 행동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의식으로 비추어주고 있었다.
노파의 쓸쓸한 삶의 종부지인 노파의 죽음은 잔잔한 파문같은 아름다운 죽음이였으며, 또다른 죽음의 미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