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책을 덮은 난 파비안의 노래에 나름대로 음을 붙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R&B? 랩? 발라드 당첨! 한개의 메르장~반짝이는 금화(바이브 넣고).....텅빈 주머니(고음처리에 신경쓰고)..구음꼬~...잠드니만(감정절제) 낫지 않겠는가(다시 음울하게)..아..정말 감동적이다. 내가 뭐하는 것이지...지금은...새벽 4시다. 고쳤다고 생각했던 야행성 생활을 원상태로 돌린 책...그것이 바로 '세월의 돌'이다. 추천 또한 강력했지만 세월의 돌이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왜냐하면 기냥 말이 좋다..세월이랑...돌이랑;;)에 끌려 첫 페이지를 넘기던 것이 몇일 전의 일이다.
첫장에는...작가 소개가 있었다. 난 당연히 전민희라는 사람을 모른다. 사진속 얼굴을 한번 훓어본 후 넘긴 페이지에는 세월의 돌 지도가 있었다. 나름대로 충실히 이곳도 넘기고..14아룬드 달력이 나왔다. 음유시인, 암흑, 아르나, 타로핀, 키티아, 인도자, 약초, 파비안느, 환영주, 방랑자, 점성술, 문자, 황금, 노장로. 총 14개의 아룬드는 이 책의 목차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이 순간 부터일지도 모르겠다. 판타지 소설의 재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얼마나 그 세계에 빠져들어 그 속의 수많은 가능성에 동감하며 상상과 모험을 즐기는가에 있어 14아룬드는 세월의 돌 세계의 창조에 어느정도 작가가 빠져들어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파비안에게서 전염된 예지 덕분인가?(앗! 그땐 읽이 전이었군;;) 책을 읽으며 난 나의 예감의 적중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1권을 다 읽어갈 즈음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부엌쪽으로 걸어가던 난 문득 아까 전자랜지에 들어가기전 호빵녀석 표정이 영 별로였어. 녀석! 하얀피부에 흠이라도 생길까봐 그러나? 아~수분 부족해질까봐 겁좀 먹은건가. 나라고 그 피부에 수분 뺏고싶진 않지만 쩌먹는 건 꽤 귀찮은 일이라서 말이야. 라면서...중얼 중얼. 바로 파비안 처럼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물론 소리는 내지 않았다)...문득 깨달은 난 '세월의 돌' 책 한번 째려보며...녀석! 꽤 쎈걸(이번엔 소리까지..내서..어쩌면...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미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일지도...)라고 중얼 거렸다. 과히 병수준이군. 사물을 보는 것이나 상상은 뇌에서는 같은 작용을 한다고했던가... 세월의 돌이라는 녀석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는 그 세계의 파비안에 대한 상상이 생겨나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난 그들과 대화하게 되었다. 마치 유리와 파비안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자처럼... 돌아다니다 여관에 들어가는 부분이면 편안해지고...진수성찬에 기뻐하며 어떤 맛일까..궁금해 하고 그들이 다시 길 떠나면 나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며...그렇게 여행의 행로를 따라 돌아다니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한권의 책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라는 것인가?
같이 여행하며 즐기기에 이야기의 진행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적당히 숨 돌리며 그렇게... 걸어서 여행하기 적당하게 그렇게 흘러가는 속에서 파비안은 많은 고통과 만나게 되고 사랑, 우정, 희망....그리고 절망...삶의 의미를 되풀이하여 끊임없이 말한다.
호그돈을 만나러 갔다오며 갑자기 만나게 된 악령들과의 싸움의 장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무기를 잡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의 뼈를 집어 다시 그들을 공격하는 잔인한 장면에 이르러 문득 '왜 이렇게 까지 이 장면은 잔인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그들은 나의 마을을 없앤, 집어 삼켜버린 나에게 더할수 없는 악령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난 어떤 존재이겠는가. 나 또한 그들에게는 나만큼이나 적일 수 밖에 없어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 악령들 속에는 파비안의 하비야나크 고향 사람들 또한 섞여 있었다. 나와 적. 나와 날 방해하려는 것. 옳은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의 기준에서의 세상은 옳은 것일까...
내가 살고자 하면 적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 난 처해보지 못했다. 아니..어쩌면 항상 그러한 상황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난 무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험에서 나 한명이 붙는다면 그 자리를 원하는 다른 한명은 떨어져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첫번째 혼돈속에 빠져버린 난 그들이 살아난 것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에 그저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의 동료들은 차차 늘어간다. 언제나 엄마같은 편안함과 아기같은 귀여움(외모의 영향이 아주 큰)을 지닌 주아니에다가 은빛 머리의 긴머리소녀에 냉정한 판단력과 함께 파비안의 심장이 되어준 유리, 많은 얼굴속에서도 우정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나르디, 사랑이라는 단어아래 가슴 아파하면서도 언제나 꿋꿋한, 질문에 답 잘해주는 미카(물론 답의 쓸모에 대한것은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듬직하면서도 위엄있고 자상한면 또한 숨겨진...엘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게다가 돈까지 많으니...부럽기까지;; 이들 모두는 아주 뚜렷한 개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파비안의 옆에 있어주며 모험을 해쳐나간다. 이들은 다양한 생명의 형태를 넘어서 모험에 뛰어든 한 인간에게 있어 전재산이요, 의지가 된다. 나의 의지가 곧 그들의 의지가 되듯이 그들의 의지 또한 내것이 되는 그런 관계가 과연 생애를 통틀어 몇번이나 있겠는가... 파비안은 복받은 녀석이다!!
하지만 '프랑드의 별', '세르네즈의 하늘', '모나드의 눈동자'....그리고 마지막 아룬드나얀의 보석인 '니스로엘드의 심장'을.....찾으러 간 곳에서 만난 테아칸에게서 듣게되는 모든 진실 앞에 파비안과 그와 함께 여행해오던 난...무너지고 만다. 모든 것이 200년 전의 에즈에 의해 준비된 틀에 맞추어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인형이라는 외침에 나 또한 심장이 죄어왔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 난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우스운 것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떤 일이건 간에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버린 것에 대해 먼저 심한 거부감부터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날 위해 애쓰신 부모님에게 생기는 반항심과 같은 그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며 난 쓴웃음을 삼켜버렸다. 세상을 위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그 곳에서의 파비안의 역할 또한 변함이 없는데도 느끼게 되는 파비안의 첫 감정의 표현에 난 작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수 밖에 없었다. 200년을 넘어 오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미카의 말과 함께 파비안 또한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똑같이 처해진 상황속에서도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야 말로 내 의지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균열. 생소하게만 들려오는 균열은 실제로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듯이 마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무질서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이 법칙을 오래전 처음 들었을땐 그 나름대로 꽤 쓸만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포함한 모든것은 모두 무질서하게 되려고 하는 힘이 있다. 저 방대한 우주에서 하나의 원자핵에까지... 존재하는 이 법칙은 자연의 법칙과 일치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것이 바로 이 법칙에 힘들여 거스르며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먹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데... 나에게 있어 이 법칙을 응용할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청소. 청소 또한 무질서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 쓰레기는 떨어진 그 자리 그대로 무질서하게 흩어져 가야한다. 내가 모아 담아서 다른곳으로 옮기고 물로 씻어 낸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며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어찌어찌하여 환경오염까지 들먹이는데 써먹던 그 법칙이 이 책에서 모험을 떠나게 되는 주인공들의 최종 목적일 줄이야...거참...세상이란 정말 재미난 곳이다. 사실 이 법칙에서 본다면 인간의 죽음이야 말로 무질서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해가 간다. 결국 노화라는 것 또한 이와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맞설수 없는 커다란 법칙이라 명명되는 것에 있어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인간다운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균열이라는 것에 대한 방책으로서의 아룬드나얀의 존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과 함께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속 전개이다. 아니 어쩌면 그저 조금 열린 방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듯한 이야기속에서 작가는 좀더 다른 것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머리속에서의 이 세계는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좀더 뒷부분에서 느끼게 된 것으로 갑자기 우리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유리의 말에 이르러 작가는 어쩌면 '세월의 돌'의 세계와 지금 우리의 세계가 같이 현실세계에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했다.
이제 세월의 돌의 마지막, 피아예모랑드의 의식의 장소에 이르렀다. 의식 장면에서 엘다와 미카의 말을 난 계속 되풀이해서 읽었다. "되풀이 된다면, 모든 것이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그것은 매 생애 동안 전생애에서 하지 못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 "맞닥뜨린 어려움이 넘기 힘들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어려움을 반드시 넘어야만 한다는 의미..." 그들의 의지가 모인 결정체와 같은 말. 말. 균열에 순응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항해야 하는 가를 떠나서 한 존재하는 가치로서의 그들의 신념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결국에 약간의 반전과 함께 아버지의 배신으로 깨어진 의식과 함께 죽어가는 아버지의 고백. 그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또한 균열의 일부분이라고 읖조리는 미카의 말에 난 섬뜩함을 느꼈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며 그 운명에 저항해가는 과정이야 말로 그 정해진 운명에 다가가는 과정이라...... 문득 얼마전 보게된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 한 엑스트라의 대사가 떠오른다...'운명의 뜻은...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던가. 작가는 운명이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약간의 혼동속에서 아니 어쩌면 너무나 혼동이 커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속에서 난 수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면...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많은 고통 또한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로 정해져 있었다면...난 무엇때문에 하루하루를 위해 또다시 웃어야 하는가....문득.... 왜 운명이란 것에 그토록 연연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이 모든 것들이 아닐까.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을지도 모를 운명보다는 결국은 존재하며 반항도 해보고 순응도 해보며 어울려 살아가는 나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작가의 맺음말에서 그는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생각하며...라고 했다. 과연 어떤 노래일까...가장 평범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귓가에 언제나 들려올꺼 같은 나도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정도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의문으로 왜 유리는 파비안은 파비라고 부르지 않았을까...파비~ 좋은데~~풋! 축복 깃든 생명, 영원한 여행, 가는 길마다 익은 과실....어제처럼 좋은 하루.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