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계시다는 정재서씨의 평론집이다. 따라서 다른 문학장르보다 읽혀지기가 좀 어려운 것이사실이다. 예전 대학다닐때 어느 교수님이 권하셔서 사두기는 했지만 과제를 위해 산 책은 아니기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문득 눈에 띄어 정독해 보니 정말 잘 사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우리것이 좋다는 신토불이가 유행이었다. 그것은 농산물만 해당되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문화, 생활관습등 모든것을 포함한 하나의 이슈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잦은 교류이후 그들의 경제가치, 막대한 물량의 물자,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은 우리의 눈을 멀게 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 할 수 없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풍부한 자원, 엄청난 인구, 거대한 땅덩어리.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가졌고 아마도 그들이 고속질주 해 버린 어느날 예전 과거의 어느 시기처럼 다시 한번 우리를 정신적 속국으로 지배하려 들지 모른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이 책은 우선 동양학(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로 시작된다.
순수한 의미의 동양학이란 존재치 않는다라는 전제아래 서구인에 의한 동양에 대한 편견의 소급은 이미 플라톤에서 시작된다. 공자가 시경을 편집할때 플라톤은 그의 세계에서 시인을 추방한다. 이후 헤겔에서 마르크스 그리고 현대까지 이르는 학자들의 계보를 밝히며 최근 서양의 학자들이 동양사상을 수용, 인용, 연구하는 것이 동양의 손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수백년간 축적한 동양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자기네의 지적, 문화적 전통에 대한 반성적, 상보적 매커니즘으로 활용하고 더욱 중요한 점은 새로운 형태의 지배 즉, 정신적 재화의 장악을 통한 지배를 위한 점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중심주의 -화이론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에게 있어 형제의 나라, 부모의 나라로 과거의 어느 시절 불려졌던 중국. 현대 사회에서 들어먹힐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지난 월드컵때 중국인들이 4강까지 간 한국을 엄청나게 미워한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 미움과 시샘의 이면에 도사린 그들의 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국의 화이론은 주변문화지배론을 정당화해왔다. 저자는 중국의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과 고구려 벽화의 재해석을 통해 중국의 신화및 고전이 '중국적'이 아닌 여러 '주변'문화가 공존했던 다원적 문화현실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 민족이 속한 동이계문화와 신화가 중원 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는 재해석을 위해 우리가 중국의 것이라 여겨온 새를 탄 신선이라든지 연단술로 이어지는 도교적 문화구조가 사실은 동이계의 그것이란 점등을 예를 들어 증명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서양에 의한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에 의한 중화주의는 매우 비슷한 양상을 띤다. 주변화를 통한 타자의 고유한 문화가치는 모두 비정상적이고 저열하고 낙후된 것으로 규정된다. 저자는 말하다. 역사적으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중국의 동아시아 국가에 대한 문화우월의식은 이렇게 강화되어 왔다고....
그럼 이제 우리가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여기서 그는 중문학을 전공한 학자의 입장으로 고전에 대한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성과 중화주의에서 벗어난 주변문화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책으로 전통 한학의 계승을 이야기한다. 고구려, 백제등의 한학 연구를 비롯해 이이, 이황 , 많은 실학자들로 이어지는 그들의 생각과 사상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고 실례를 들어가며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아직까지도 얼마나 피해가 심각한가에 대한 일침을 잊지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자랑스러움과 착잡한 마음이 뒤섞인 미묘한 기분을 느낀다. 과거의 어느시기 우리 조상들은 대륙의 중국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문화적 영향을 주고 받았고 그 이후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세계를 펼쳐나간 멋진 조상들이 있었다. 비록 일제시대와 현대화 과정에서 많은 가치를 상실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학자나 전문가가 해야할 전문적인 일들을 할 수는 없다. 오직 우리의 과거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자각...그것만이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 중국, 일본은 물론 서양의 우리에 대한 편견과 경멸을 불식시키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