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내용
⑴뫼비우스의 띠: 아이들이 신뢰하는 수학교사는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에게
뫼비우스의 띠와 굴뚝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이, 곱추와 앉은뱅이는 헐값에
팔아버린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입주권을 산 사내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곱추와 앉은뱅이는 사내의 이득 몫을 뺀 나머지 이십 만원을 자신들의 몫이라며
찾아온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한 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는 곧
우리가 갇혔다고 생각한 세상도 갇히지 않는 곳이며, 억압되어 있다고 느껴 탈출을
시도해도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수학교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제군은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문학과 지성 76년 여름호, 세대
76년 2월.
⑵칼날:꿈 많고 총명했던 신애는 책을 쓰는 게 소원이었던 현우와 희망을 품고
결혼한다. 그러나 죽어라 돈을 벌어도 허덕이게 된 부부는 이제 가족간의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문만 보는 현우,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옳지 안다고 믿는 큰 아들, 라디오를 켜 놓고 공부하는 딸. 이들 가족은
공무원, 제과 회사 차장 집들에 둘러 싸여 있다. 그들은 다 돈이 많이 드는 자가
수도를 놓고 밤에 물 받는 걱정을 안한다. 신애는 수도꼭지를 낮춰 달면 물받기가
수월해 진다는 난쟁이의 말을 믿고 그에게 일을 맏긴다. 화가 난 자가수도 설치하는
사내들은 신애네 집으로 찾아와 난쟁이를 폭행한다. 신애는 부엌의 생선칼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내들은 살의를 갖고 있는 신애가 두려워 도망간다.
수도꼭지를 단 그날 밤 난쟁이의 말처럼 정말 수돗물이 흘러 나왔다./문학사상 1975
12월.
⑶우주여행:윤호의 아버지는 윤호를 A대학 사회계열에 보내기 위해 지섭을
가정교사로 데려왔다. 윤호는 지섭을 알게 된 후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지섭은 윤호에게 날개를 쓰지 않아 퇴화된 도도새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우주인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윤호를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갔다.
난쟁이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날밤 윤호와 지섭은 달나라에 관한 얘기를
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산소가 없고, 권태로운 달나라 얘기를 한 윤호와 달리
지상에 없는 행복이 달에 있을 거라고 지섭은 말했다. 윤호는 대학에 떨어졌고
지섭은 쫓겨났다. 윤호는 학원에 나가 강의를 받고 개인그룹을 지어 족집게
특수지도를 받았다. 윤호는 특수지도를 받는 아이들 가운데 맑고 깨끗한 은희를
알게된다. 예비고사날 윤호는 특수지도반 아이들중 타락하고 쓰레기 같은
인규로부터 답안지를 보여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대신 인규가 은희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는 일종의 거래였다.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 윤호는 자살하기 위해 아버지가
숨겨둔 권총을 찾았다. 그 때 은희가 윤호를 방문하고, 윤호는 은희에게 권총을 쏴
자신을 달나라로 보내달라고 한다. 은희는 권총을 쏘는 대신 어머니가 없는 윤호를
어머니처럼 두 팔로 감싸안았다./뿌리깊은 나무 1976 9월. 문학과 지성 1977 봄.
⑷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장이 가족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에 이십 일 안에
자진 철거하라는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동생 영호는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버티었고, 울기 잘하는 영희는 훌쩍훌쩍 울기만 하고,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간직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행복동 주민들은 하나, 둘씩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다. 입주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갔다. 난쟁이네 집도 입주권을 팔고 전셋돈을 빼 주어야 했지만 난쟁이네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을 이어 나르고 시멘트를 직접 발라 만든 집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이웃 집 명희 어머니는 명희가 죽고 남긴 통장에 든 돈을 난쟁이네
집에 전셋돈 빼주라고 빌려주었다. 명희는 나(난쟁이 집 큰 아들 영수)를 좋아했다.
그녀가 바라던 건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공장에 가지 않고 공부를 많이 해 큰
회사에 취직하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명희는 다방
종업원에서 캐디로, 버스 안내양으로 전전하다가 통장에 십 구 만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나와 동생(영호)은 아버지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인쇄
공장에 나가게 됐다. 아버지는 당신의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길건너 고급 주택에서
가정교사를 하는 지섭과 얘기를 나누곤 했다. 지섭은 사랑이 없이 욕망만 떠도는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말하고 "일 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빌려주었다. 인쇄 공장 사장은 불황이라는 단어를 빌미로 삼아 우리에게 쉬지 않고
일할 것을 강요했다. 나와 영호는 사장에게 가서 힘든 노동 시간에 대해 사장과
협상하려다 일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났다. 아버지는 나와
영호에게 큰 일을 한 거라고 추켜 주었다. 입주권 가격이 자꾸 올라가자 난쟁이네
가족은 이십 오 만을 받고 검정 승용차를 타고 온 남자에게 입주권을 팔았다. 집은
헐리고, 영희와 아버지가 사라졌다. 영희는 검정 승용차를 타고 온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영희에게 대꾸하지 않고 말만 잘 듣는다면 많은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영희는 남자를 따라가 좋은 음식을 먹고 남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영희는 자신이랑 환경이 많이 다른 남자의 집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
곳에서 뭐하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영희에게 들려왔다. 영희는 남자의 금고에서
자신의 집 대문에 달려 있던 알루미늄 표찰을 되찾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희는 표찰을 내고 아파트 입주 신청서에 아버지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적어
넣었다. 신애 아주머니는 열이 나 아파하는 영희를 방에 데리고 가 간호를 해 주며
말했다. 아버지가 굴뚝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 됐다고/문학과 지성 1976 겨울.
⑸육교 위에서:신애는 위가 나빠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혼잡한 사람들을 헤집고 육교를 지나가던 신애는 동생과 단짝 친구가 일하는 직장의
건물을 보고 동생과 동생 친구의 대학 생활과 또 소원해진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동생과 동생 친구는 학교 때 제대로 자신들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대학 신문에 기고하기로 결정하고 교수였던 주간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주간은
불온한 글이라며 싣지 못하게 했다. 둘은 몰래 등사를 해 교내에서 학생들에게 그
글을 나누어준다. 주간은 둘의 행동에 대해 사태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으며
이제 현실을 파악하라고 충고한다. 둘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마저 떠나고
둘 만 남은 느낌을 받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만난 동생과 동생친구는 입장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친구의 직장에 주간이 우두머리가 되어왔고 주간은 자신이
끌어 줄테니 함께 일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후 동생 친구는 변했다. 좋은 집에,
아내와 아이를 기르며 안락한 생활의 길로 접어들었다. 신애는 병원에 들려 동생의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세대 1977년 2월.
⑹궤도 회전:아버지의 기대와 어긋나게 셋째 해 예비고사에서 떨어진 윤호는 철사로
매를 맞았다. 아버지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진 윤호는 "노동수첩"이라는 책을
읽었다. 윤호는 행복동에서 북한산으로 이사간 깨끗한 동네에서 이 책을 읽었다.
어느 날 길 건너 집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 경애를 알게 되었다. 경애는 윤호를
"십대 공원"이라는 토론 주제 모임에 참가시킨다. 윤호는 이 모임에 나가 자신이
만난 난쟁이 가족에 대해 얘기해 준다. 은강시 공장에서 일하는 난쟁이의 아들,
딸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으나 아이들은 지루해 하고 색다른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었다. 윤호는 경애에게 말한다. 십대 공원이라는 이 모임을 빌미로 너는 불쌍한
아이들을 팔았다고. 또 회사 대표였던 경애의 할아버지가 공원들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으며, 경애 또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고통 받는 걸
몰랐다는 것 조차 죄라고 말한다. 경애는 윤호와 함께 있고 싶었던 것도 죄인가로
되묻고 집으로 돌아간다. 경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치뤄졌다. 윤호는
이 해 자신이 가져야 할 사랑. 존경. 자유...와 같은 과제를 떠올려
보았다./한국문학 1977년 6월.
⑺기계도시:윤호는 삼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가 보았던 난쟁이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를 잊지 못한다. 윤호와 사귀는 은희도 윤호가 난쟁이 가족이 일하고 있는
은강을 큰 부피로 떠올리고 있다. 은강은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 반도부에 위치한
곳으로 금속, 도자기, 화학, 유지, 조선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면적은 백 구십 육
제곱킬로미터에 인구는 팔십 일만명이다. 공장은 북쪽 지대에 있고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불기 때문에 매연이 이동을 했었는데 어느 날 공장 지대
상공에 머물던 매연이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량의 폐수는 바다로 흘러갔다. 은강에서 일하는 대다수
공원들은 빈곤 때문에 일자리를 얻었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이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 이 곳 생활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난쟁이의 큰 아들
영수는 윤호에게 은강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윤호의 옆집에 사는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일 수 있도록 자신을 윤호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한다. 윤호는 난쟁이의 큰
아들 혼자??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도울 생각을 해 본다./대학신문
1977년 6월
⑻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영희는 나(영수)에게 독일에 있다는 릴리푸트읍 얘기를
한다. 억압, 공포, 불평등이 없는 난쟁이 마을 얘기였다. 벽돌 공장 굴뚝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는 릴리푸트읍 같은 마을에 사셨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은강 자동차에서, 동생 영호는 은강전기 제일 공장에서, 막내 영희는
은강방직 공장에서 일한다. 특별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우리는 그곳에서도 제일
낮은 계급에 속했으며, 어머니는 우리가 벌어주는 돈으로 빠뜻하게 생계 유지를 해
나가셨다. 하루 아홉 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잠깐의 휴식이 우리 생활의
전부였다. 나는 월급을 탄 날 지부장을 만나러 가 시간외 근무 수당의 부적절한
지급과 동료의 부당해고 문제에 대해 항의 했다. 그는 나의 말에 모두 동의했지만
회사 사람이었고 노동자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자 명단에 오르기
전에 은강자동차에서 나와 은강방직 공장으로 옮겨갔다. 은강에서는 생존을 위해
죽어라 일해야 했다. 우리의 생존비용으로 가득 채워진 어머니의 가계부를 덮으며
나는 릴리푸트읍에 대해 생각했다./문학사상 1977년 10월.
⑼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아버지가 꿈꾸던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법을 가져야 하는 세상이라면 이 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고 나(영수)는 생각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영희는 섭씨 30도 이상되는
공장 내부에서 졸면서 일했고 작업반장은 조는 영희에게로 다가와 빨간 피가 배어
나게 옷핀을 찔렀다. 나는 그곳에서 기사 조수로 일했다.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공원들이 죽어갔다. 노동조합 지부장이 끌려가고 공원들이 무더기로 해고 당하는
안좋은 사태가 공장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새로 선출된 지부장인 영이를 어느 날
영희가 내게 데리고 왔다. 영이와 나는 자주 만나 사용자측과의 만남을 대비한
준비를 했다. 노사대표가 만나는 회의가 열렸다. 근로자측은 임금인상과 정당한
이윤분배를 요구했다. 사용자측은 근로자측을 사사건건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로 규정짓고 들어줄 것이 없다고 답했다. 나는 사랑을 갖지 않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던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잘 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문예중앙 1977
겨울
⑽클라인 씨의 병:나(영수)는 은강방직에서 노동 조합 운동을 하게 된다. 교회
목사로부터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의식화 교육을 받는다. "근로자의 손해는 경영주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지적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부의 증가는 저임금 근로자의
수의 증가와 비례해 왔다는 역사를 그가 들춰냈다. 우리는 그를 믿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내가 공장 일만 하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동
철거반원과 몸싸움 끝에 끌려갔다온 지섭이 노동운동가로 변해 나를 만나러 왔다.
지섭은 내게 노동현장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 준다. 지섭이 떠나고
나는 과학자가 만든 이상한 병을 보게된다. 안과 밖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형상을 한 클라인 씨의 병이라고 이름 붙은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따라서
안,밖의 구별이 없으므로, 우리의 세계도 갇혀있지 않으면서도 갇힌 것이고
갇혔다는 것도 착각이라는 명제를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게된다./문학과 지성 1978
봄.
⑾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숙부를 은강그룹의 회장으로 착각한 공원의 칼에 맞아
숙부는 죽었다. 사촌은 미국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나(은강그룹 경영주 아들 경훈)와 함께 법정에 참석한다. 범인은 은강 방적 기사로
일하던 난쟁이 가족 큰 아들이었다. 사람이 죽은 엄연한 사실을 갖고 변호인측은
은강 그룹 회장이 노동자의 억압의 중심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죽여야 했다는,
부정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투사적 논리까지 펴나간다.
변호인측 증인으로 등장한 손가락이 여덟 개 뿐이 없는 지섭은 난쟁이의 큰 아들은
이상을 펴려다 고생을 했으며 지금도 난쟁이 큰 아들과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집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논리를 편다. 마음 약한 사촌은 그들의 논리에 열심히 귀
기울이고 무엇이 사실인가를 나에게 설명한다. 공판은 끝나고 사촌 형은 떠났다.
재판결과는 난쟁이 큰 아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기대를
품었던 공원들은 혼란과 착각에 빠졌고 재판에 승소할 것처럼 기세 등등하던
변호인은 낙담했다. 이번 일로 나는 공원들의 행복과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창작과 비평 1978 여름.
⑿에필로그:수학선생은 예비고사 성적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윤리교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런 상황으로 몰리게 된 제도적 문제점과 그래서
그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여행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뫼비우스의
띠에 등장했던 꼽추와 앉은뱅이는 약장사를 따라 떠났으나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앉은뱅이와 꼽추는
자신들을 따돌리고 도망쳐 버린 사장을 찾아 한 밤중 떠난다. 도중에 그들은 난쟁이
큰아들이 갇혀있다 죽어 나온 형무소를 보게된다. 꼽추는 앉은뱅이에게 사장을
죽이기 위해 품고 있는 칼을 버리라고 말한다.)/문학사상 1978 3월.
2.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
사랑, 존경, 진실, 자유라는 이상적인 덕목들 때문에 인간이 고생하고 또
고통받는다면 과연 이런 덕목들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할까?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사랑으로 얻을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도, 우리가
의지해야 할 하나의 것이 사랑이라는 가슴 아픈 진리가 난쟁이 가족의 비극적 삶을
통해 조명되어진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병은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으며,
안과 밖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억압받고 있는 세상의 안을 떠나 밖으로
나간다 해도 결국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이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이며 클라인씨의 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성된 노동 계급과 자본
계급 사이의 격차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안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근소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격한 대립으로 맞설 때도 있고, 서로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기도
하며, 이상을 실현하려는 지식인과 노동자의 허망한 패배로 끝나기도 한다.
난쟁이가 꿈꾼 세상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가 꿈꾼 세상도 사랑을 갖지 않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서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이상사회가 아니었다. 큰 아들 영수가 꿈꾼 세상은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랑을 갖도록 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결국은 영수도 아버지의 말이 옳다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한다. 은강그룹의 아들 경훈은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는다.
사랑에 대한 난쟁이와 난쟁이의 큰아들, 은강 그룹의 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통해
우리는 결국 사랑이나 진실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추상적 세계나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추악한 세계를 떠받쳤던
제도나 법을 빌려와야 한다는 모순된 명제와, 가진 자들의 사랑에 대한 거짓믿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하며 따뜻한 가슴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 행복 뒤에 숨은 불행과,
안락.풍요 속에 감추어진 빈곤, 사랑이라는 얼굴의 이면에 붙어 있는 추악함과
더러움, 자애로 위장한 억압과 폭력, 정말 하등짝에 쓸모 없는 교만한 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반성해 보아야 한다.
난쟁이 큰 아들의 공책에 적혀 있던 글은 지식이라는 것, 권력이라는 것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으켜 주고 있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이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난장이..."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70년대의 죄가 자본이 빚어낸 타락하고 거짓된 세계와, 개인의 안락과 행복
추구에만 열중해 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게 죄라면, 세기를 넘어가는 이 시점
한국사회의 죄는 무엇일까. 도덕, 양심, 정의가 증발되어 버린 사회의 죄는
무엇이란 말인가. 불감증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판단력 이 無인, 그래서 이상적
덕목들이 사라진 황야의 무법지에서 죄의 개념은 사라졌는지 모른다. 선이 없는
상황에서 죄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사랑이 충만했던 난쟁이 가족과 사랑 없는
욕망만 안고 있던 자본가 계급의 대립은 사랑 없이 욕망만 안고있던 사람들의
승리로 기울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그 실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
추상적인 단어가 주는 가슴 아픔은 사랑을 실천하려다 형무소에 죽어 나온 영수에
대해 꼽추와 앉은뱅이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절실히 다가온다. 결국 역사나 현실이란
쓸모 없는 지식과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의해, 그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왔으며,
지옥에서 천국의 생활을 그리며 하루하루 고통을 참아내다 더 이상 참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 도전한 자는 그가 살아온 비참한 생활만큼의 죽음뿐이 없다는
현실인식은 냉정하기만 하다. 꼽추는 난쟁이의 큰 아들 죽음을 얘기하면서
앉은뱅이에게 그러니까 사장을 죽이기 위한 원한의 칼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힘을 다 합쳐 죽인 개똥벌레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지만 살아남아
곱추와 앉은뱅이 눈앞에 보인다. 난쟁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은 그래도
진실을, 사랑을, 존경을, 자유를, 윤리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세대를 뛰어 넘어 존재하고 있으며, 난쟁이와 난쟁이 아들이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려다 죽어갔는가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넓은가에
대해 얘기해 주고 있다. 이 사랑의 힘은 난쟁이가 말한 사랑과 맞닿아 있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난쟁이가 가족들에게 심어준 참된 사랑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까.
3.내용과 형식
화려한 수식어와 풍푸한 묘사와, 비유로 써 내려간 글들에 감탄하며, 또
주늑들어하며 책을 읽던 나는 작년 언젠가부터 간결하고 그러면서도 핵심만 찌른
문장에 흥미를 갖게됐다. 가이코 다케시라는 일본작가가 쓴 "푸른 월요일"은 그런
나의 관심사에 흥미를 배가 시켜준 글 이다.
"1945년, 나는 오사카에 있는 구제 중학교 3학년이었다. 할아버지와 여동생이
숙모와 함께 후쿠이 현으로 소개한 뒤에, 어머니와 나는 오사카에 남았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빈번한 공습으로 시가지는 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학도 동원으로 국철 조차장에서 일하고 있던 "우리"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그리고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고 전쟁은 끝났다.
거리에는 갑자기 암시장이 출현했고, 생선, 고기, 야채, 쌀, 간장, 카레가루, 설탕,
통조림, 담배, 이것 저것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낸
마른 나무 같은 열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일본의 어디에, 이 만큼의 정력과 부가
숨겨져 있었을까하며, 나는 다만 눈을 크게 뜨고 놀랄 뿐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돈을 모아서 암시장에서 사온 정어리를 먹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수수나
감자 잎이나 옥수수등 줄줄이 거친 것밖에 맛본 적이 없는 혓바닥은 자글자글
기름이 튀는 정어리 한 조각을 놓고 떨었던 것이다."
다케시의 문장은 골격만 남은 것처럼 건조하지 않다. 그는 한 단락 안에 주인공
소개와 시대배경, 전쟁 후 일본의 궁핍했던 상황과, 그러면서도 모순되게 존재하는
뒷골목 시장의 물질적 풍부함과, 정어리 한 입의 감동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한다면 조세희의 문장은 짧은 단문에 단호한 근본주의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 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는 이 단락에서 타인이 아버지를 보는 외적인 시선과 그러나 그들이 아버지의
내부를 들여다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난쟁이
가족의 생활과, 어머니의 품성에 대해 직설적이면서 아주 꼭 필요한 부분만을
기술하고 있다.
"아들은 벌써 전부터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고 있는 눈치였다.
학교 교사들은 무엇이든 좋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일반 사회에서 인정하는 사고
방식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 동안 충분히 일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우리는 사랑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마침표가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문장 사이의 여백에서 우리는 사유의 공간을
획득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고 있고 학교 교사들은
무엇이든 좋다고 가르친다라는 이 상반되는 이분법은 그 동안 우리가 배운 교육,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회의와 정말 한 번이라도 진실이 무언가 곰곰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하는 사고의 시간을 부여한다. 행과 행 사이의 이 대립관계는 백이냐
흑이냐, 좌냐 우냐, 유냐 무냐라는 기본적인 논리에서 보다 확장된 인생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장은 단순한 소설 읽기 차원이
아니라 많은 의미 함축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래서 이 간결한 문장은 우리에게
명백한 진실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곰곰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여기 실린 12개의 단편 소설은 하나의 장편으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라는 일인칭은 난쟁이 가족의 맏아들 영수로 그려질 때도 있고,
은강그룹 아들 경훈일 때도 있으며, 부잣집 아들인 윤호일 때도 있다. 조세희는
노동자 계급에서만 사회를, 가진자를 평가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또 노동자 계급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려 했다고 본다. 그러나 결국 그 두 계급의 관계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날마다 천국을
생각했다."라는 문장에서 나타내주는 바처럼,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서 근로자의
진심 어린 말들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자의 말로 단정하는 것처럼 단절적이다.
과거의 시간이 불쑥불쑥 현재의 시간을 침범하며 들어오기도 하고, 각각의 소설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이 다시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다시 결합하고 또 해체되기도 한다.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보여준 미학적 접근과 성공은 그래서 사실주의 범주의 소설이라는 선을 넘어서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