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따스한 봄이 바로 문 밖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놀이터에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 유난히 또렷이 들려오고, 페허같은 아파트 단지엔 봄볕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밥 먹은 후 늘어지는 눈꺼풀을 비벼대는 아이의 손 끝에 봄기운이 묻어있다.
모든 피조물들이 신의 섭리에 따라 술렁술렁 일어나려하고, 기지개 켜려하고, 춤추려한다.
근래들어 우리집 전화기가 바빠졌다.
겨울동안 하루라도 수다 떨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친구와의 통화외엔 거의 잠만 자던 전화기.
봄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들뜨게 하는 마술사인지 여기저기서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벗들의 전화가 이어진다.
사느라고 바빠서, 통화후엔 왠지 내가 초라해보일 것만 같은 자격지심에,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하기를 미루고 또 잊었던 인연들.
막상 전화를 받으면 왜 그렇게 반갑고 기쁜지...
이제는 30대를 넘어서일까, 서로 왜 연락하지 않았냐면 다그치지 않는다.
그냥 바쁘게 살아가는 거 뻔히 알기에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엔 "사는 게 그렇지." 라는 이해의 말 건네고 서로의 흉금 털어놓고 이야기 한다.
수화기 내려놓고 왜 그런 말 했나 일말의 후회는 있을 지언정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리곤 다음엔 꼭 내가 먼저 잊지 말고 연락해야지 다짐을 한다.
봄이기에 겨울처럼 꽁꽁 얼었던 마음 조금씩 녹으며 틈 벌어지는 것도 이해가 되나보다. 서로의 틈 밉게 보지 않고 너그러이 이해하는 이 봄의 여유로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