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어디 다녀올까..? 아이들의 설레는 눈동자는 이 곳의 아름다운 축복. 장난스레 꺼낸 이야기를 마술같이 풀어내던 목소리와 함께. 잠자코 그 곳에 서 있던 나 역시 한 순간 그러한 눈으로 귀를 기울인다. 확실히 이 아이는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것을 안다. 단순히 능수능란하게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울림을 전할 줄 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익숙하게. 이미 대화라는 것에 무감각해진 내게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저 여유롭게 다가와서 손을 내민다. 그리고 나 역시 무심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많이 춥죠? 서글서글한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차를 건네신다. "괜찮아요.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금방이라도 이 추운 날씨에 소매라도 걷을 태세로 싱긋 웃어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녀석이라서 아주머니와 함께 생글생글 웃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대화를 시작할 게 분명하다. "근데 어디를 가나요?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쭉 궁금했던 그 물음을 난 여기에 와서 잠시 잊었던 것이다. 나 역시 궁금한 눈으로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그냥 이곳저곳 가는 거죠. 하며 대충 얼버무리면서 앞에 놓여진 차를 마시기 시작한다. 차는 무척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모든 것이 잊어질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걸었을 뿐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길 삼아 우리는 걸었다. 걷고 또 걷다가 지치면 좀 쉬었다가 그렇게 계속 걷기만 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할까. 허탈하다는 듯이 내뱉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힘들면 그만 걸어도 되잖아. 나는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앞서 나가던 걸음은 잠시 멈춰졌고 고개를 돌렸다. "그만 걷고 싶니?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다. "그건 아냐. 힘들지 않으니까. 여전히 걸어오는 나를 보며 배시시 아이처럼 웃는다. "그래. 넌 그렇지. 내 자신이 지칠 때까지다. 단지 힘들어서도 아닌 그저 지쳐올 때까지. 난 아무렇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언제나 그렇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내 자신에게 격려하듯이 해주고 나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난 걸을 것이다. "넌? 그만 걸을까? "아니. 숨이 가빠오는 순간마다 그렇게 우리는 걸어왔다. 힘이 들면 잠시 쉬면 되고. 그것이 꽤 시간이 걸리면 걸리는 데로 놔두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걸어가면서 그러한 갖가지의 생각을 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네가 같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약간 숨이 찬 듯 띄엄띄엄 말을 건네온다. 얼굴을 보니 뺨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럼 왜 물어본 건데? "그냥. "바보녀석. 혼자서 가는 길이 지루하고 힘들다면 상대하기 즐거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나와 같이 걸어가고 있기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짧은 건 당연한 거다. 그래도 그 잠시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걸어가는가. 이따금씩이라도 좋은 건 좋은 거니까. 홀로 걷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 역시 그러한 시간을 견디고 있음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역시 내가 그렇게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걸어간다는 것이 외롭고 힘든 여정이 아니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을 뿐이다.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들에서 괜찮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순간이 있기에 나는 언제까지나 걸어나갈 수 있다고 느낀다. 언제까지 걸어야 할까.? 힘이 들면 그만 걷고 싶겠지. 그러면 잠시동안 걸음을 멈추어 본 후 내가 얼마나 걸어왔는지를 뒤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너무 앞을 향해 걸어오다보니 지친 것 뿐일 테니. 뒤 돌아 본 그 곳은 내가 지금 보는 곳과 달라져있어서일 테니. 익숙하지 않아서일 테니까. 그리고 잠시 앉아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껴보는 거야. 바람도.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도.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도. 그리고 괜찮아지면 난 또다시 걸어가는 거야. 닿아야 할 곳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걸음의 속력을 내는거지.. 이따금씩 옆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웃기도. 힘을 내기도 하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난 아직 이 곳에서 쉴 수 없으니 또다시 걸어갈 수 밖에.
02.01
걷는 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입니다.
가끔 걷다가 내 숨소리를 들으면 조금은 더 살 맛이 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