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에 학창시절을 오랜동안 함께 해온 내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몇권 이나 되는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일기장들은 내가 그동안 무관심 했던 정도 만큼의 먼지를 표지위에 얹고 있었다.
내가 직접 썼던 일기들이지만 무엇을 썼는지 바로 떠올려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호기심에 의해, 책장을 펼쳐 떠넘겨 보게 되었다.
첫사랑의 아픔과, 그 시절 날 괴롭히던 고민들이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이
색이 바랜 종이 위로 묵묵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련하게 기억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몇번이나 되읽어보아도
그때의 그 감정들은 와닿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로부터 난 멀어져 있다는 것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번 뒤척여보던 일기장들을 다시 서랍구석에 정리하면서, 난 삶의 줄타리를 떠올렸다.
과거, 현재, 미래의 줄타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지만, 결코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줄타기다.
그 줄타기 위에서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연연한다면 뒤로 넘어질 것이고
너무 앞으로 향해 내딛는다면 다리가 꼬여서 앞으로 넘어질 것 같다.
나는 그 균형을 잘 잡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내 자신은 과거형 사람 쪽에 가까울 것이다.
지난 일들을 마음에 담고, 지난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나마 망각은 자연 정화제 처럼 날 과거에서 꺼내 들어 주는 것 같다.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이 잊혀지고, 앞으로 앞으로 날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앞으로 밀어준다.
친구 중 한명이
'사람은 어제 일의 40퍼센트를 잊고, 한달전의 60퍼센트를 잊고 산다는데, 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야'
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엔 '그렇구나. 나도 내가 잊고 있는 중요한 기억이 어딘가에 있는 것일까?' 라고 되새겨 보았지만
잠시후엔 만약 기억이 난다고 해도 그건 이미 지난 일이라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없을 텐데,
더 답답해 지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되새겨 보려는 시도를 그만 두게 되었다.
과거의 일을 들추고, 매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가며 상처받고, 잊었다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은 그렇다. 그리고 그럴때의 내 모습을 보면, 투명한 새장속의 새가 떠오른다.
없는 새장속에 갇혀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그 좁은 틀 안에서만 몸부림 치를 새를..
새는 새장을 잊어버리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망각은 결국, 새의 기억에서 새장을 완전히 지워내어 날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달전의 40퍼센트를 기억하고, 그리고 60퍼센트를 잊어버린다는 건, 나로써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01.20
망각^^*....선택할 수 만 있다면...장단점이 있겠죠? 40%와 60%는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기억하고 싶은 것이 40%, 잊고 싶은 것이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