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며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복 중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피부에 와 닿는 때 이른 서늘한 바람에
한나절 이렇게 더위를 피할 수 있겠구나 고마운 맘이 생긴다.
늘 버릇처럼 입에 대는 커피가 가슴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숨겨둔 사랑을 꺼내 놓기라도 하듯
그려내지도 못할 그리움으로 지그시 눈을 감아보게 된다.
반듯이 금 그어놓지 않아도
날 보여줄 수 있었던 지나간 순수의 흔적들
소중한 보물인양 가슴에 품고 적어내려가던
몇 줄 되지 않았던 시 한 소절의 수줍은 손길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사랑을 알아가던 조심스러운 발걸음의 설레임이
저 바람을 타고 커피 잔 가득 날개를 달고 내려 앉는다.
어느새 푸르른 잎사귀 키워 훤히 속살을 내 보이던 등산로를 반쯤 가려놓은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서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순 없어도 발걸음마다 쌓이는 희망의
그림자만큼은 늘 날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이곤 한다.
나에겐 희망을 얘기하게 만드는 친구가 하나 있다.
물론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이며 어딜 가서든 자랑삼기를 좋아한다.
세상이 그에게 준 선물이라곤 강단 하나 밖에 없는 사람처럼
늘 어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친구이다.
학벌이나 경제적인 요건들이 삶의 수준을 정해주는 건 아니지만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에 졸업과 동시에 보장된 일터까지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갔다면 지금쯤 안락한 가정을 꾸며
편하게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부족한 소견으로 그 친구가
다른 길로 돌아 갈거라는 의심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늘 새로운 꿈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낯선 길을 찾아 떠나는 친구는 어딜 봐도 잘못된 선택을 한 바보같아 보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와 돌이켜 보면 어떠한 길이든 쉬운 길은 어디에도 없다라는 걸
그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같다.
편한 길을 가기 위해 내 소중한 꿈과 미래를 탕진해 가는 나와는 달리
항상 어려움 밖에 없었지만 생명과도 같은 꿈을 꾸는 그 친구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이제 알 수 있을거 같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불어오는
바람 너머 전해져오는 사랑스러운 친구의 얼굴이
늘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정체되어 있는 나에게
일어나 한 발 내딛어 보라는 손짓은 아닐까...
희망과 멀어져 있는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비쳐보게 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늘 빛이 나는 그 친구에게
커다란 나무 그늘 삼아 쉬어 갈 수 있는 넉넉한 여름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