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od Daughter
- By Caroline Hwang
●번역: 칼스
●출처: "Reading & Writing Sourcebook" p.13 - p. 17
●출판: Great Source Education Group
※ 이 글은 허가 없이 가져온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 번역본이므로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원문도 같이 올립니다.
※ 아마추어가 번역한 것이므로 번역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내가 그 세탁소에 들어갔던 순간, 나는 곧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여자가 한국인 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부모님처럼. 나는 그녀에게 우리가 같은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있을지도 모르는 같은 나라 출신이라고 주는 할인 혜택을 얻기 위해서, 나는 전통적인 인사를 수줍게 따라 하며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서양 나라에선 머리를 앞으로 굽히며 인사를 하지 않는다-역자 주)
“이름은?” 그러나 그녀는 내가 시도한 겸손함을 깨닫지 못하며 무감각하게 물었다.
“와-왕(영어 권 사람들은 ‘황’을 발음하지 못한다-역자 주) 이요.” 나는 대답했다.
“왕? 중국인이세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이런 질문을 모든 아시아인들은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비아시아인들에게서는 받은 적은 있지만 같은 나라 사람에게 받아본 적은 절대로 없었다. 물론, 내가 아는 한국인들이란 오직 내 부모님들과 그들의 친구들뿐이고, 그들은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기에 나에게 어디 사람이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나의 머리 속에서 내가 누군지 알려주기 위해 한글 단어들을 열심히 뒤졌다. 내가 “나는 한국인입니다.”를 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언어보다 스페인어, 독일어, 심지어는 라틴어로 더 잘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우울한 의미에서) 슬프게 만들곤 한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영어로 말했다.
세탁소 여인은 나에게서 풍겨오는 낯선 감각을 곁눈질로 응시하며 나의 이름을 작게 불러보았다. “아, 황” 곧 그녀는 웃으며 목소리를 두 배로 하여 말했다. “자기 이름도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는군요.”
나는 움찔했다. 아마도 나는 갓 학교를 그만둔 이때 특히 민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오직 내가 어디에 있는 지만 알려줄 뿐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 내 인생의 지도를 찢어버렸다. 내 정체성에 대한 감각은 이미 붕괴되었다.
내가 집으로 왔을 때, 나는 내 부모님을 불러 왜 그들이 나를 제대로 고쳐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거 참 대단한 일이구나.(주로 비꼬는 표현이다. 원서에서는 Big Deal로 표기되어 있다.-역자 주)” 어머니께서 말했다. 그녀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들리는 말을 하면서.(교실에서 영어를 배운 많은 사람처럼, 그녀는 숙어를 상황에 맞지 않게 자주 쓰곤 했다.) “그래서 네가 네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면 어떠니? 너는 이미 미국인이란다.”
비록 내가 그녀의 설명에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의 부모님들께서는 이 나라에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인 30년 전에 오셨다. 그들은 종종 나에게, 내가 자라는 동안에 만약 내가 원한다면 나는 어느날 대통령이 되어서 내가 닿는 데까지 오래도록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이 나라의 모든 이익을 내가 확실히 거둬들이기 위해서, 내 부모님들은 나를 완벽히 미국인들에 흡수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모든 나의 세대의 미국인들처럼, 나는 내 청춘을 몰을 돌아다니며, 전화로 이야기를 해가며, 앤드류 맥캐시의 푸른 눈을 보며 흥얼거리며, 홈커밍 미식축구 게임(홈커밍: 미국 고등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교 행사 중 하나로, 역할을 바꿔 여자들이 미식축구 복장을 하고 경기를 하며, 남자들은 치어리더 복장으로 갈아입고 여자를 응원하며 다른 학교와 미식축구 경기를 벌인다. 일종의 축제와도 같은 학교 대 학교 대항전 식의 경기.-역자 주)으로 차를 태워주는 상급생의 의도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빈둥빈둥 보냈었다.
나의 부모님들에게, 나는 미국인이었고, 그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희생한 것들-나의 발음할 수 없는 이름까지 포함되어-을 나에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다 주었다. 그들은 내가 두 문화 사이에 걸쳐서 한쪽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오직 한 나라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보지 못한다. 나는 미국인들과 함께 분류되어 있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은 나와 같이 분류하지 않는다. 나는 한 공동체에 속해져 있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다. 큰 것이든 가족 같은 작은 것이든. 나는 내가 실수로 떠나게 된 내 조상들의 대륙보다 유럽에 대해 더 많이 안다. 나는 때때로 그 세탁소의 일이 있었던 날에서, 내 부모님들이 한국에 살고 계셨다면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다.
나는 내가 학교를 졸업해야 할지 결정하게 되었을 즘 이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협정이었다: 나의 부모님들께서는 나를 법과에 보내시길 원하셨다; 그러나 나는 비즈니스맨의 평화로운 한 때를 버리고 배고픈 작가가 되기를 더 희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소원을 따르고 그들의 기대를 지켜온 그 20년 후에, 나는 그들에게 불복종하거나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생각하기에도 작가의 길은 법의 길보다 더 위험했다. 만약 내가 실패하고 내 인생이 깨끗이 씻겨나간다면, 내 부모님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많은 내 친구들이 부모님께 잘 해주는 것과 그들 자신에 솔직해 지는 것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민자의 경우에 선택은 더욱 복잡하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나를 많은 의무에 묶이도록 하셨고, 나는 그들의 나에 대한 희망에게 완벽히 복종했다.
나는 나의 꿈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를 찢어버렸다.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영어 문학 과에 보내졌고, 나는 내가 완벽하게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소한 졸업 학위를 동안까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도, 나는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내가 열정이 없는 일에 5년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겠는가? 내가 결국 학교를 떠났을 때, 내 부모님들은 실망하셨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아주 망연자실하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또 다른 경우에서, 내가 지옥의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내 반 정도 지나간 삶에서, 약속되고 계획된 나의 삶에서 돌풍이나 결함을 보았다.
나는 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대해서도 또한 부모님들께 양보하기 위해 막연한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비록 그들은 나를 미국인으로 키웠지만, 내가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인 손자, 손녀를 그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14살 때까지만 해도 큰 요구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데이트해 본 남자와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고, 내가 사랑한 남자와 데이트해 본 적도 없다. (내가 내 자신을 끌리는 비 한국인들과의 결혼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도록 자제했기 때문에, 나는 오직 내가 깨끗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만 데이트했다.) 그리고 내가 모든 대인관계에서 결혼의 의문이 따라다니는 나이에서, 나는 어쩌지 못했고 다만 내 부모님들의 기대가 내 삶에서의 무기력함에 책임이 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할 뿐이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그들의 딸을 한국인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들의 딸이 완벽한 미국인이 되기도 원치 않으셨다. 이민자들의 아이들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은 그 첫번째이자 마지막 세대이다. 우리는 단지 우연히 지금 이 나라에 있지만, 자식으로써의 도리가 우리를 묶고 있다. 부모님들께서 비행기에 올라 탔을 때, 그들은 위험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자기 이름조차 발음 못하는 그들이 딸이 딸의 앞길에 무거운 바위에 힘들어 할 거라고 예상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문===================================
“The Good Daughter” by Caroline Hwang
The moment I walked into the dry-cleaning store, I knew the woman behind the counter was from Korea, like my parents. To show her that we shared a heritage, and possibly get a fellow countryman’s discount, I titled my head forward, in shy imitation of a traditional bow.
“Name?” she asked, not noticing my attempted obeisance.
“Hwang,” I answered.
“Hwang? Are you Chinese?”
Her question caught me off-guard. I was used to hearing such queries from non-Asian who think Asians all look alike, but never from one of my own people. Of course, the only Korean I knew were my parents and their friends, people who’ve never asked me where I came from, since they knew better than I.
I ransacked my mind for the Korean words that would tell her who I was. It’s always struck me as funny (in a mirthless sort of way) that I can more readily say “I am Korean” in Spanish, German, and even Latin than I can in the language of my ancestry. In the end, I told her in English.
The dry-cleaning woman squinted as though trying to see past the glare of my strangeness, repeating my surname under her breath. “Oh, Fxung,” she said, doubling over with laughter. “You don’t know how to speak you name.”
I flinched. Perhaps I was particularly sensitive at the time, having just dropped out of graduate school. I had torn up my map for the future, the one that said not only where I was going but who I was. My sense of identity was already disintegrating.
When I got home, I called my parents to ask why they had never bothered to correct me. “Big Deal,” my mother said, sounding more flippant than I knew she intended. (Like many people who learn English in a classroom, she uses idioms that don’t always fit the occasion.) “So what if you can’t pronounce you name? You are American,” she said.
Though I didn’t challenge her explanation, it left me unsatisfied. The fact is, my cultural identity is hardly that clear-cut.
My parents immigrated to this country 30 years ago, two years before I was born. They told me often, while I was growing up, that, if I wanted to, I could be president someday, that here my grasp would be as long as my reach.
To ensure that I reaped all the advantages of this country, my parents saw to it that I became fully assimilated. So, like any American of my generation, I whiled away my youth strolling malls and talking on the phone, rhapsodizing over Andrew McCarthy’s blue eyes or analyzing the meaning of a certain upperclassman’s offer of a ride to the Homecoming football game.
To my parents, I am all American, and the sacrifices they made in leaving Korea-including my mispronounced name-pale in comparison to the opportunities those sacrifices gave me. They do not see that I straddle two cultures, nor that I feel displaced in the only country I know. I identify with Americans, but Americans do not identify with me. I’ve never known what it’s like to belong to a community-neither one at large, nor of an extended family. I know more about Europe than the continent my ancestors unmistakably come from. I sometimes wonder, as I did that day in the dry cleaner’s, if I would be a happier person had my parents stayed in Korea.
I first began to consider this thought around the time I decided to go to graduate school. It had been a compromise: my parents wanted me to go to law school; I wanted to skip the starched-collar track and be a writer-the hungrier the better. But after 20-some years of following their wishes and meeting all of their expectations, I couldn’t bring myself to disobey or disappoint. A writing career is riskier than law, I remember thinking. If I’m a failure and my life is a washout, then what does that make my parents’ lives?
I know that many of my friends had to choose between pleasing their parents and being true to themselves. But for the children of immigrants, the choice seems more complicated, a happy outcome impossible. By making the biggest move of their lives for me, my parents indentured me to the largest debt imaginable-I owe them the fulfillment of their hopes for me.
It tore me up inside to suppress my dream, but I sent to school for a Ph.D. in English literature, thinking I had found the perfect compromise. I would be able to write at least about books while pursuing a graduate degree. Predictably, it didn’t work out. How could I labor for five years in a program I had no passion for? When I finally left school, my parents were disappointed, but since it wasn’t that they wanted me to do, they weren’t devastated. I, on the other hand, felt I was staring at the bottom of the abyss. I had seen the flaw in my life of halfwayness, in my planned life of compromises.
I hadn’t thought about my love, but I had a vague plan to make concessions there, too. Though they raided me as an American, my parents expected me to marry someone Korean and give them grandchildren who look like them. This didn’t seem like such a huge request when I was 14, but now I don’t know what I’m going to do. I’ve never been in love with someone I dated, or dated someone I loved. (Since I can’t bring myself even to entertain the thought of marrying the non-Korean men I’m attracted to, I’ve been dating only those I know I can stay clearheaded about.) And as I near that age when the question of marriage stalks every relationship, I can’t help but wonder if my parents’ expectations are responsible for the lack of passion in my life.
My parents didn’t want their daughter to be Korea, but they don’t want her fully American, either. Children of immigrants are living paradoxes. We are the first generation and the last. We are in this country for its opportunities, yet filial duty binds us. When my parents boarded the plane, they knew they were embarking on a rough trip. I don’t think they imagined the rocks in the path of their daughter who can’t even pronounce her own name.
=====================================================================
요즘 이민문제가 많이 심각해지고 있죠?^^
제가 보기엔 이민에 대해 너무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갔더군요.
이민에 대해. 조금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또한 나중에 제가 이 글들을 인용할 일이 있기에 올립니다.
'좋은글' 란에 가야할지 '수필' 란에 가야할지 모르다가 그냥 '수필' 란에 올립니다. 가야할 곳을 아시는 분은 리플 달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