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을 것인가.... 제 죽음에 피어날 꽃처럼..
고통에게1...
문득 그 짧은 구절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더니 이내 자신의 목소리를
작게나마 내고 있었다.
일부러 귀기울여듣지 않아도, 그리 작은 목소리로 말할지라도
자취를 쫓으려는 마음으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는 것.
이미 만났다고 생각해온 너는, 기억이라는 말로 묻어두려 하였다.
네 이름만큼이나 충분히 기다릴 수 없는 것이라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사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너를 거치기 이전부터.
너무도 간절히, 믿고 싶었던 너라는 존재가 있었다.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희미한 그림자도.
얼핏 베인 상처에 피가 맺히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다
너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사실 너는 누구도 보려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나, 나는 왜 그리
보려 하였을까. 믿고 싶었을까.
묵묵히 눈을 감아버리면 보이지 않아도 그 머문 자리만은 있었을 테니.
누구도 모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지워나갔던 걸까.
숨을 고르고 저 멀리 다가올 너를 기다린다.
언제부터 그리 고독한 여정 한 편으로 내 곁에 다가오려 했는가.
나의 기다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너는 떠나온 것인지.
너의 지친 걸음에 잠시 숨을 고르며.
아마 이번에도 나를 다만 스쳐지나갈 테니.
누구도 듣지 못할 초조한 걸음으로 홀로 걸어온 길을 이번 역시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새겨놓을 것이다. 너는.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대로 새긴 네 발자국에
더이상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다.
그 흔적 역시 잠시 스쳐 지나갈 순간에 불과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