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멀어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 줄 수 있는 건
뒷모습 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 뿐일 것이니
.............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기억의 자리 - 나희덕
기억은 다시 기억을 만든다.
조금은 슬프게, 그리고 아름답게 다시금 남아 차마 지워내지를 못한다.
그것이 숨겨져 있거나 고이 담아두었더라 하더라도.
찾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은 기억 속의 향기가 은은히 그 자리마다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부분 차갑고 메마른 향이 났다.
그리고 너무 멀리 있었다.
언젠가. 그래, 언젠가.. 라는 막연히 내뱉은 그 말처럼 시간에 기댈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나칠 수 있는 가벼움만 남아 있는 것이라면.
시들어버린 꽃잎처럼 쉬이 흩어져서 또다시 피어나는 붉은 꽃잎을 볼 수 없을 지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자취를 차마 지워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후회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몇번이고 멈춰서서 여전히 그자리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눈부심은 이미 저 멀리 남아 더이상 쫓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해도.
소리없는 발자국만이 내 뒤에서 홀로 지친 걸음을 재촉하려 한다면
그리 할 수 밖에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