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연님 수필 중에서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그대는 내게 사랑을 주셨다는 걸 못 느끼십니다. 그게 얼마만큼이나 고마운 일인
지 이 세상 언어로는 표현하기가 버거운 것인데, 그대는 사랑을 주셨다는 것조차
모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놓고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 주신 것으로도 가슴 벅찬 일인데, 그대는 이
따금씩 제 가슴을 터뜨려 버리기라도 하듯이 작은 마음에 담고 살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사랑을 심어 주고 계신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해주고,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해주고, 나를 만나고 있지 않아도 내 표정을 떠올리고 있어 주신 답니
다.
어딘가 몹시 바쁜 일로 뛰다시피 걸으실 때 내가 쓰는 로션향이 스쳐 지나가 그
몹시 바쁜 일 잠시 잊고, 똑같은 로션인데 쓰는 사람에 따라 그 향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실 때,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는 걸, 이
사람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그대는 알고 있으신 겁니다, 내가 바라는 사랑을. 이 험한 세상에 핏줄이 다른
사람이 내 건강을 걱정해 주고, 내 성격을 파악해 주고, 늦은 시간 어디에 있는지
연락 안될 때 저녁뉴스 시간에 들려왔던 교통사고 소식이나 강도 소식이 내 얼굴
과 함께 떠올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준다면 그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
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가끔 눈물이 나와 줄 때가 있습니다. 그
눈물의 가치가 너무나 소중해 함부로 닦아 낼 수 없어 눈가에 그리 보기 좋지만
은 않은 얼룩이 남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따뜻하게 데워진
가슴을 만져보곤 합니다. 그대가 이 마음 안에 들어와 내 감정들을 만들어 주는
것을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괜히 웃게 되고, 암기가 많이 필요한 수업시간에 수업 내용
대신 어젯밤 전화 내용을 떠올려 보고, 친구 생일날 그 친구가 받은 선물 중 어
느 하나가 그대에게 어울릴 것 같으면 어디서 구입했는지 얼마인지를 붇게 된답
니다. 그러니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별일 아닌 것에도 미안해 해주고 알게 해
주는 그대에게.
그 마음이 얼마큼의 감사함으로 내게 느껴지는지 그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알고
하는 행동이 아닌 생각 없는 어느 행동들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의 크기들을.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나는 그대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를 생각해 봅니다.
얼마큼일까?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러나 나는 모릅니다. 하루종일 생각해 봐도 알아지지가 않습니다. 그저 이 사
람이 내 주위에서 없어지면 큰일나겠구나, 살아가기 쉽지 않겠구나 정도로밖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사랑을
베푸는지를.
우리 사랑은 그 크기 따위를 생각지도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면 뭘 하겠습니까? 이만큼 해주었는데 그만큼 돌려 받고 싶어질 수밖에. 그저
우린 서로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아프지 말고
미래를 가꾸고 걱정시키는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시간이 흘러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만들다 언젠가 올 마지막 순
간에 그저 그대의 손 한 번 잡아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겁니다.
이승의 마지막을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