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보면 제일 불편한 것 중에 하나가 책을 사는 일이다.
특히 영어권에서 자라지 않은 나같은 사람으로선 영어 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에 어째도 한국 책으로 나의 상식의 해소를 풀어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주간마다 발행하는 교민잡지나 아니면 한국 책 대여 점에서 일정기간 책을 빌려서본다.
책이란 게 무겁기까지 해서 몇 권만 손에 넣어도 나같이 무거운 것 들기 무서워하는 사람은 딸아이들의 힘을 빌려서 책 대여를 해 오곤 했다.
그때 마침 한국에선 여자들이 포도 다이어트들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포도다이어트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딸들에게 공포했다.
나는 내일부터 안방에서 한발도 나가지 않을 것이니 맛나는 음식냄새를 풍기지 말것과 하루에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니 일주일치 책을 빌려오라고 명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일주일치를 대여해왔고, 대여비가 여간 비싼 게 아니기에....
딸아이에게...."야들아 엄마도 한국에서 신간 아닌 구간들 모두 몰아다놓고 책 대여나 할까...그러면 너들이 엄마 책 빌려다주지 않아도 되고, 돈도 벌고, 일거양득이 아닐까...?
작은 아이는...엄마 좋은 생각이네요...그때 큰아이가 대뜸 하는 말...."엄마는 어찌 배고픈 장사만 하려고 해요...글쟁이들 배고파요...그렇다고 나역시 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엄마 괜히 돈벌려고 책 대여하다가 집에 강도 들면 어쩌려고...그냥 힘들어도 얼마든지 빌려다 드릴테니 걱정 마세요....일격에 침을 놓는다.
"야야 너는 우째 침쟁이 공부한다고 한번에 침을 놓아버리노 ?
"그럼 서점 하는 사람들은 하루 몇끼 묵는고 ?
나는 조금은 뒤틀려서 내방에 들어가선 또 책을 들고 누어버렸다.
그렇게 방에 들어간 그날부터 나는 포도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사실 한끼를 앞두고 나의 다이어트가 실패를 하고 말았지만, 이틀하고도 두끼를 물과 포도만 먹다보니 나중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만 밝아졌고, 코는 개코 이상으로 감각적이었다.
그때도 역시 내 귀에 들리는 소리....작은딸은 저러다가 엄마 죽는 것 아니냐고 했고, 큰딸은 아니야 엄마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냐 엄마는 한다면 하시니까 괜히 뭘 잡수시라고 말했다간 혼만나니까 걱정 말란다....
저 인정머리 없는 것이....동생이 괜찮다고 해도 지가 나한테 저럴 수가....큰딸이 저럴 수가....제발 먹어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못이긴 척하고 먹었으면 좋겠구만....아이고 역시 책도 배가 불려야 되겠구만....배고프면 좋은 것이 없구만...그래도 참아야하느니라....설마 15일 굶고도 살았다고 하지 않던가...3일 굶고 초상이야 치것나....좋다 이거야 끝까지 가보자...
딸아이들은 내방에 포도와 물을 넣어주고 눈치를 살피려고 한번씩 들여다본다.
3일을 한끼 앞두고 기운이 빠져 더 이상 포도도 먹지 않고 누어있는 나를 보고는 밖에서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나더니...미역국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아이고 저것들이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해묵네....큰딸아 제발 엄마에게 못 이긴척하고 밥 먹어라고 빌어라...알것냐...너는 큰딸이잖아 큰딸이 그럴 수가 있냐...!
한 참 있다가 딸들이 들어온다, "엄마 약속시간 지났으니 이젠 조금 드세요?
"그래...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냐...나는 의식적으로 시계를 보지 않고 숟가락부터 들었다.
둘이서 눈웃음을 웃었지만, 나는 일단 먹고 난 후에 시간은 계산하기로 했다.
그날저녁 큰아이가 엄마가 한끼를 앞당겼다나.....실패의 원인은 너들이 음식 냄새를 풍겼기 때문임을 나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지금까지....나의 오류 중엔 한끼를 못 참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면서도 딸들이 가끔씩 나에게 약올리려는 의도의 말....."엄마 책도 배가 불려야지 눈에 들어오지요 ?
"야야 너들이 책값은 더 많이 쓰잖아 내 책은 싼 책이지만 너들 책은 전문서적이니까 모두가 비싼 책이고...
내 여동생과 까르푸로 쇼핑을 갔다. 들어서면서 남편과 내가 서점 쪽으로 들어서니 동생은 자기는 다른 것 구경 할 테니 보고 나오란다.
쇼핑이 끝나고 계산하고 나오면서 우리내외를 쳐다보더니...."아이고 부끄럽어라 늙은이들이 물먹고 책만 보면서 사는 집이지...반찬 꺼리는 없고, 물하고 책뿐이네, 책에서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우리내외는 서로 쳐다본다. 남편은 멋쩍어하면서..."나야 언니가 좋다니까 따라다닐 뿐이지...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 그러네...매일 이렇지는 않아요.
이번에 내가 등단을 하고 책을 만드는 일도 형제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안 되는 장사 왜하려고 하냔 소리 또 나올게 뻔하니까....
그러면서도 나의 가난한 후원자인 내 남편 한사람만이라도 알아주는 것에 크게 행복해하면서....
나는 크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나의 삶을 글로 쓰고, 책을 만들고, 이 모든 것들을 해나가면서 조금은 배가 고프더라도 보람을 느낀다.
남들은 땅을 사고 집을 크게 늘려가지만, 나로선 그럴 만큼의 여유도 없거니와 나의 땅 넓히기 집 짖기는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깊고 넓고 온화한 땅...
내 딸아이의 말처럼 강도나 도둑도 들지 못하는 땅....내 가슴 안에 이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