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 때, 높은 빌딩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자연은 도시와 동떨어진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분법적으로 둘을 나눴습니다. 도시면 도시이고 자연이면 자연이지 둘이 함께 존재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이 합쳐져서 사람들이 그 안에 잘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앨라배마의 대학도시가 워낙 아담한 지방 도시라서 그 곳만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또 버지니아에 와 살면서 미국이 전체적으로 자연 친화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도시는 자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도 도시 속에 있습니다.
여섯살때 시골에 성묘갔다가 해질 무렵 보았던 반딧불은 이후 30년 동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미국에 유학와서 보게되었습니다. 캠퍼스를 가로질러 밤길을 걷는데 자꾸 깜박이는 것들이 여기 저기서 날아다녔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나 공기가 깨끗하면 반딧불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다람쥐는 도시의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고, 토끼도 집 주변에 많이 삽니다. 사슴이 자주 나오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도로에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 중 사슴과 충돌하여 차 수리를 받아야합니다. 저도 퇴근 길에 길가를 서성이는 사슴을 보면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리 조심해도 동물들이 조심하지를 않으니 도로변에는 늘 차에 치여서 죽어있는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운전 중에 보게되는 쓰러져있는 동물들은 주로 다람쥐, 사슴, 너구리 등입니다. 가끔은 새들도 그런 일을 당합니다.
나무들은 철따라 색다른 옷을 입으면서 자연의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도로변과 집 주위에 서있는 나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늘 푸른 색을 느끼며 살게 합니다. 이제는 푸른 색이 주는 안정감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는데, 어딜 가나 자연과 어울리게 멋지게 조경을 한 집과 도로들이 사람과 자연의 화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년전에는 겨울에 눈이 와서 도시가 완전히 정지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나라이다 보니 눈니 몇 센티 쌓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관공서도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눈이 자그마치 50 센티는 왔습니다. 도로변 바람에 몰린 곳은 눈이 허리를 잡았습니다. 차량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제설 작업이 잘되는 이 곳에서 보통 눈이 와도 다음 날이면 교통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 때는 이틀 동안 도로가 마비되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처럼 눈으로 덮힌 마을에서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며 뛰어놀았습니다.
종로구에서 자란 제가 이런 곳에서 자라는 아들 다은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은 아들의 마음을 제가 잘 모르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다은이는 이미 자연과 도시가 하나이고, 그 안에서 사람도 함께 하나가 되어 사는데 익숙한데, 저는 그런 것을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어색한 것입니다. 숲 속의 집을 보며 그렇게 집이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고 아빠는 생각하는데, 아들은 주변의 숲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나이 삼십이 훨씬 지나 이국 땅에서 배웁니다. 비가 오는 것, 낙엽이 지는 것, 달이 뜨는 것 등이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길가의 동물들과 뒷산의 나무들도 사람들과 하나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