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다은이가 지난 봄에 합창발표회에 참가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하는 것도 아닌, 카운티 전체의 초등학교 대표 6학년 어린이들이 모여 합창을 했습니다. 그 날, 무려 800명의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합창을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6학년이 되던 가을, 학교에서 카운티 6학년 합창단에 보낼 대표를 뽑는 오디션에서 뽑힌 다은이는 학교에서 다른 여섯명의 친구들과 음악 선생님의 지도로 연습을 하다가 종종 한 중학교에 가서 합창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날에는 몇개 학교의 어린이들이 모여 그동안 연습한 것을 맞추어 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00개가 넘는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표회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8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연습시켜 합창을 한다는 것부터가 무척 놀라왔습니다. 과연 어떻게 어린이들을 지도해서 소리를 다듬고 아름다운 합창을 할 것인가? 어떻게 무대를 꾸밀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발표회 장소는 우리 카운티의 명문 학교중 하나인 로빈슨 고등학교 체육관이었습니다. 체육관 앞 주차장부터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800명 어린이들의 부모만 와도 1,600명이되는 셈이었습니다.
그 날, 공연장은 빈틈 없이 꽉 차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찬찬히 보니 체육관 안의 한쪽 관중석이 무대였습니다. 800명의 어린이들을 한 곳에 모아 발표회를 하려니 무대에 단을 만들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계단식으로 된 관중석에 줄을 그어 어린이들을 파트별로 세워 노래를 하는 기발한 방법이었습니다. 800명의 어린이들이 입장해 자리를 잡고난 후 등장하신, 콧수염을 기르신 멋진 지휘자는 연습 때 이미 어린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는지 어린이들은 큰소리로 자기들의 지휘자가 등장하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드디어 합창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귀에도 친숙한 미국 민요와 라틴어로 된 옛 성가 등을 노래하는 어린이들은 그 동안의 연습을 그 자리에서 모두 쏟아붓기라도 하는 듯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노래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간간히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쳐서 박자를 맞추는 동작도 섞어가면서, 어린이들은 노래를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 노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선율이 체육관을 메우고 청중을 감동시켰습니다. 이 지구상의 사람들 중에 800명의 어린이가 노래하는 합창을 들어 본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다은이는 그 곳의 800명 중 드문드문 보이는 아시아계 어린이였습니다. 백인과 흑인 또는 남미계 어린이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어린이들은 그 숫자도 적지만, 그렇게 음악과 합창을 즐기는 경우는 더욱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교 시절, 중창을 하며 노래하기를 즐겼던 저는 다은이가 그 날, 그렇게 800명 중에 서서 웃는 얼굴로 노래하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언젠가는 다은이도 아빠가 되어 그 날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노래를 하겠지요. 노래는, 음악은, 그렇게 아빠와 아들을 이어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은이의 인생에서 6학년 시절, 학교를 대표하여 참여했던 카운티 어린이 합창단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