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외국에 가면 문화 충격(Culture Shock)을 받는다. 문화 충격은 긴장과 갈등으로 둔갑하여 삶을 윤택하게 하기보다는 더욱 더 어려움 속으로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타 문화권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외국 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나라 국민으로부터 가치관과 생활 방식까지 다 습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설사 수년동안 살아오면서, 그 곳 문화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게 되면 실수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즉 어릴 적부터 체질화되지 않은 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는 말은 모든 환경에 적절히 대처할 줄 알아야 살기에 편하다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든지 그 나라의 문화를 터득 수용(受容)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우리 한국인이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무시하고 산다면 아마 오래있지 않아 그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들, 즉 의식(儀式)이나 가치관이나 에티켓 등이 있어, 타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팁 제도는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문화이기 때문에 여간 기장을 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식당에는 손님이 종업원들에게 팁을 주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팁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아시아인들은 외국의 호텔에 가서 하루 밤을 자고나면 팁을 주기는 커녕 호텔 방에 있는 일회용 화장품이나 비품 따위를 가지고 오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할 페습이라 하겠다. 미국에 있는 대다수의 종업원들은 팁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조금씩 받는 월급으로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그들의 자녀를 양육해야한다. 그리고 매달마다 집세를 내어야 한다. 그들의 직장의 월급이 적은 대신 팁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일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 오래 산 사람들은 팁을 주는데 인색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나는 미국 LA 에 있을 때 K 목사님이 담임하는 ‘로고스교회’에서 사역자한 일이 있다. 그 분은 가끔 팁 문화에 대해 말씀하곤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식당에 갔을 때는 식당종업원들에게 관대해야합니다. 호텔에 가서도 물건을 들고 나오기보다는 오히려 베개 위에 몇 달러정도 올려놓고 나오는 것도 삶의 멋이요 관대함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나는 그 때 참으로 큰 삶에 도전을 받았다. 생활이 곤궁하다보니 넉넉한 마음을 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대함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팁을 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관대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과 분별없이 낭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구두쇠 스쿠르치와 사랑의 화신인 산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움켜쥐는 것과 펴는 것과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움켜쥐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산물이요, 손을 펴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어느 날 오후에 파사데나에 있는 집에 돌어서는 순간 나의 코를 즐겁게 하는 냄새가 풍겼다. 피자냄새였다. 그동안 아이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숙제와 방 정리를 잘 한 탓에 아내가 그 상급 형식으로 피자를 선물했던 것이다. 집 근처에 피자가게에서 주문 배달이 된 비자였다. 냄새를 맡는 순간 내 배는 ‘코르륵’ 하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피자박스를 열어제쳤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아이들이 얼마나 배가 많이 고팠던지 한 조각도 남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웠던 것이다. 깨끗이 비워진 피자박스를 보며 침만 꿀꺽 삼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이들이 즐겁게 마음껏 먹은 것을 보니 내 마음은 절로 흐뭇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였다. 아내에게 팁을 주었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워낙 남에게 관대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필시 무슨 곡절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서 왜 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아내는 피자가격에 팁이 포함이 되어 있는 줄 착각했다고 했다. 아차 실수를 했구나... 사실 팀은 반드시 주어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이고, 다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 마음 편할 뿐이다. 그래서 주지 않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그 배달원은 멕시칸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는 당연히 팁을 줄줄 알고 문밖에서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를 마치 스쿠르치와 같은 구두쇠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 길로 피자가게로 달려갔다. 메니저에게 우리 집에 배달해준 멕시칸 할아버지를 찾는다고 말했더니, 그 메니저가 무슨 일이 있냐고 반문했다. 나는 그에게 피자는 정말 맛있었는데 우리가 조금 실수 한 것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한참 이야기 하고 있는 사이에 그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메니저는 이미 나의 말과 행동에 감동을 받았는지 흥분된 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이 한국인이 당신에게 팁을 드리려고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왔답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너무나 반갑고 놀라는 표정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하면서 내가 건내 주는 팁을 받아 들고 너무나 좋아했다. 나는 서슴없이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기독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랍니다."라고 했더니, 그 메니저와 할아버지는 “한국인 최고, 크리스챤 최고!” 라고 외치며 그들 특유의 제스춰를 취해 보였다. 내가 그 할아버지에게 준 팁은 하찮은 돈이었지만, 그 일로 인하여 나는 그들의 마음을 사게 되었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 가게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관대(寬大)함은 친구를 만들면서 또 내 마음을 넓혀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의 신뢰 두텁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성경 말씀에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라고 했는데, 정말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남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폭넓게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모든 것을 공유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은 또 ‘모든 것을 품는다’는 의미도 들어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독인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가 아닐까.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이것만 제대로 지닐 수 있다면 새삼스럽게 문화충격 따위엔 신경 쓸 필요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