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바쁜 탓인지 요즘은 그저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는 것이 내 외출의 전부다.
신기한 일이다.
주말엔 집에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듣고, 글을 읽고, 그리운 얼굴을 그려보고, 습작을 끄적이고...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지낸다.
오늘은 할일이 쌓여 있는 데도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멀리는 못 가고 그저 아파트 주위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볼이 붉은 대여섯살 쯤 되어보이는 소년이, 곁에선 엄마를 향해 빤히 그려내는 웃음도 보이고,
급히 주차했는지 앞바퀴가 삐뚫게 서있는 하얀색 승용차도 보이고,
높은 아파트 곁에서 더 작아보이는 정원의 키작은 들꽃도 보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들꽃을 심은 손길은 따스할 것이다.
나른한 오후답게 꼬박꼬박 졸음의 고개를 떨구시는, 우리 101동 경비아저씨도 보이고,
똑같은 교복을 맞춰 입은, 막 하교하는 요란한 여중생들의 잔 걸음도 보이고,
천천히 시선을 돌리니, 옅은 안개구름이 하늘을 비끌어져가는 조용한 모양도 보였다.
그렇게 작은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머리가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은 고요한 시선으로 시끄러운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리라.
이름도, 고향도, 취미도 모르지만 나와 함께 내 그림의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악의없이 한 번 쳐다보고,
내가 사는 곳이 어떤 고유한 향기를 가졌는지 새삼 시선을 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그림의 가장 위에 칠해진 하늘 색깔을 올려다보는 여유...
요즈음 날 괴롭히는 것들에게서 벚어나려면 ...
특이하지 않은 일상적인 것들에서부터 쉼표를 얻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먼 바다나 푸른 들판으로 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앉아 있는 가까운 배경에서 숨을 한 번 내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 저편에 그리운 얼굴을 보고싶다는 소박하고 행복한 상상도 한 번쯤 해보는 유치함도 가졌으면 좋겠다.
무심한 주변을 영화처럼 둘러본 잠깐의 그 시간을,
금새 돌아와 책상위에서 잊어버릴지라도 괜찮다.
잠시 맡은 사소한 그 향기들이 머리칼에 배어있어, 가슴이 조금 트일 것이기 때문에...
행복이란 건 그렇게
세수할 때 잠시 스며드는
비누냄새 같은 것 같다.
힘들게 고른,
황홀한 향수냄새가 아니라
늘 곁에 있는
일상의 냄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