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올려 지는 건 인도이다.
난 실제로 인도에 가본 적은 없으며, 인도의 코끼리를 본 적 또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인도 코끼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천국에 가본적은 없지만 천국을 알고 있는 것,과 같다.
포근한 하늘빛이 감도는 오월의 햇살 아래에서
난 가끔 서울대공원이나 건대 근처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가만히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다.
20분이 2시간 처럼이나 느껴지도록 그렇게 바라본다.
코끼리는 내게 있어 비현실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원안의 코끼리 우리 옆에 매달려 서울하늘을 올려다 보면
묘한 애틋함에 젖어 들어 '공기'처럼 말로 표현할 수없는 감정이
내 몸안 가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이라 불리는 생활,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 안이나
해야할 업무가 늘어놓아진 사무실 안에서, 가끔 코끼리가 떠오른다.
코끼리는 하나의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제주도에 직접 가보기 전엔, 제주도도 내겐 비현실적인 쉼터였고
혼자서 직접 여행을 해보기 전에도 그것은, 내게 비현실적인 일탈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이곳저곳을 힘들게 이동하면서
그건 학교앞에서 떡볶이를 먹는것과 아무런 차이도 지니지 못함을 느꼈다.
그제서야 환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코끼리는 사람들의 자아가 요란하게 숨을 쉬는 지하철 안이나
사무실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을 두드릴때 더욱
그 환상의 힘을 발휘한다.
알면서도 난, 코끼리를 떠올리면 쉼을 갖게 된다.
'환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오늘 퇴근하고 지하철안에 앉아 꾸뻑꾸뻑 졸다가
그 문장이 지하철의 가득 찬 사람들을 뚫고 내 머리속으로 들어왔다.
난 어느 날 갑자기, 마치 공기를 역행이라도 하듯이 무거운 다리를
앞으로 꿈뻑꿈뻑 내딛는 인도의 코끼리를 보겠다고 짐을 싸서
인천공항버스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새끼코끼리의 코를 자신의 꼬리에 잇고 느릿느릿 행진하는
코끼리를 보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달랑 워커하나를 새로 장만해서
아프리카행 비행기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아프리카 공항에 내려 숨막히게 하는 희뿌연 먼지 속에 기운이 빠진다 해도
인도안에서 이리저리 힘들게 헤매이다가 다시 서울하늘 아래로 도피해 온다 해도.
그것들을 경험해 보지 않은 지금
코끼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환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환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현실속에 없는 환상이 현실을 지배할수 있다는 것,
현실의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것이야 말로 비현실적인 듯.
어쩌면 환상은, 죽음이 삶에 내재하는 것과 같은 문제의 방식으로
현실을 움직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코끼리, 나의 코끼리 역시 그런식으로 내 삶에 내재해 나를 움직이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