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책이 있습니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밤,
잠시 책을 읽다 잠 들려고 펼쳐 든 책에 빠져 불면의 이 밤을 꼬박 새워버렸습니다.
쉬이 읽혀지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란한 언어와 난해한 이론을 구사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몽환적인 공간을 노래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너무도 잘 아는, 평소 우리네가 잘 쓰곤 하는 그런 말들임에도
쉬이 읽혀지지 않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결코 쉬이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그렇다고 책장을 덮을 수도 없는 책이 있습니다.
손이 아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여졌기에 맑디 맑은 마음으로 피눈물 나는
실천으로 한땀 한땀 수를 놓고 새겨 넣었기에 그 언어들은 아픈 자책으로,
한없는 부끄러움으로 제 가슴에 다가와 박혀 버리기에 결코 쉬이
책장을 넘길 수도, 덮을 수도 없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줄을 긋고 긋고 또 긋고 마침내는 모두 줄을 긋고야 마는 책이 있습니다.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필요한 것만 추리고 또 추려 줄을 그으려 해도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마디 말도 도무지 피해 갈 수 없는, 아니 피해 갈 수록
더욱 마주치게 되어 결국엔 책장이 아닌 내 마음에 줄을 긋게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읽고 난 후 말이 없게 하는,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게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알량한 지식 나부랭이,
내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닌 그것을 부끄럽게 하고 제 가슴을 비우도록 만드는
그리하여 그 비움 속에 더 너른 세상을 앎이 아닌 느낌으로,
완전한 새로움으로 품을 수 있도록 하는 잊고 지내던, 아니 애써 잊으려 했던
진정함에 귀의하도록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 사람 박노해.
선연한 부르짖음이 아닌, 날카로운 외침이 아닌 그 잔잔한 그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다시 또다시 노래합니다. 사람만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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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노해
출판사: 해냄출판사
정가: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