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내면들의 상처를 보듬는 잔잔한 치유의 이야기『별과 빛과 날개와 기나긴 여름』
이은비 장편소설『별과 빛과 날개와 기나긴 여름』은 불행의 나락에 떨어진 소녀가 집을 떠나 이모 부부와 살게 되면서 평범한 행복과 일상을 찾아가는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서린은 작가인 아빠와 배우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자식이다. 엄마는 무대에 서는 일로 위태로운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왔지만 결혼 후에도 배우 일을 하게 둘 수 없다는 아빠의 요구에 따른 결과 서서히 망가져간다. 아이를 낳으면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었지만, 서린이 태어난 후에도 엄마의 상태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는 몇 번이나 어린 서린을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더 이상 그녀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판단한 아빠는 엄마를 정신병원으로 보내지만 시간이 지나도 엄마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급기야는 난산의 고통을 안겨준 딸 서린이 ‘악마’이며,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원흉이라 여기게 된다.
마침내 엄마는 소중히 여겼던 동생도, 나이를 먹어버린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서린을 치워달라고 애원할 때만은 뭔가 기억해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아빠는 그걸 놓치지 않고, 웬만큼 자란 딸을 매주 엄마와 대면시킨다. 사랑받고 싶은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저주의 말들은 서린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서린의 방문을 두려워하던 엄마는 더 이상 서린으로 인해 고통 받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없애버리기로 마음먹는다. 숨겨두었던 가위로 목을 찔러 죽이려던 엄마의 계획은 또다시 실패한다.
이것이 방아쇠가 돼 서린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아빠에게 저항하지만 아빠는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부녀 사이에 정이 없어 대화마저 거의 하지 않는 사이인데, 말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아빠는 참지 못하고 딸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이 일은 부녀 모두에게 상처로 남으며, 서린이 자살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서린은 다음날 연못에 뛰어들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이모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다. 언니를 파국으로 내몬 형부를 원망하며 살아온 이모는 조카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없다며 서린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간다. 흥분해서 조카를 데려왔지만 남편이 반대할까 하는 마음에 이모는 임시로 빌린 아파트에서 조카와 함께 살게 된다.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 못하고 늘 신경쇠약에 외톨이에, 정서불안, 대인관계 문제 등을 안고 지내던 서린은 같은 반 태하와 한신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관계의 폭을 열어간다. 또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 역할을 하는 태하와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불안한 한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자신에게 진심어리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것처럼, 자신 또한 그들에게 어느 새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다. 어른들의 따뜻한 이해와 보살핌, 무엇보다 친구들의 진실한 서로 간의 우정과 애정으로 인해 서린은 안정을 되찾고 동시에 훌쩍 커 있다. 도저히 화해할 수 없던 아버지와, 자신과 아빠로 인한 극도의 피해의식으로 증폭된 정신분열증에 걸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린 엄마마저 이해하게 된다. 서린은 엄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엄마가 웃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린은 자신과 화해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불행하고 쓸쓸한 어머니의 구원을 진심으로 희망한다. 마침내 서린은 자신만 보면 망상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타자이자 자신의 일부인 엄마를 다시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작품 개요만 놓고 보면 여느 청소년 소설이나 성장기 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래의 예처럼, 이 소설을 여느 소설과 차별화시키는 힘은 바로 작가만의 시적이고 서정적이며, 감각적이고 낭만적인 ‘문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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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 쓴 트로키를 입에 물고 상현과 함께 걸으며, 나는 주말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가령 그 바다에서 지냈던 주말이나, 고양이 가족을 찾으러 나섰던 그날처럼, 즐겁고 행복할 땐 왠지 그 순간이 얇은 유리를 통해 보는,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고. 나의 현실은 다른 곳에 숨 쉬고 있을 것만 같고, 눈을 뜨면 나는 잠시 상자 속 세상의 일원이 되는 꿈을 꿨다.
*
“지금도 생각난다, 눈을 감고 집중하면 어느새 나는 그곳에 있다. 시원한 물이 발을 감싼다. 맑고 푸른, 우리의 바다가 여기 있다.”
나는 책장을 넘기는 것도 잊고 서린이 목소리에 집중했다. 서린이 목소리가 큰 편이 아닌데 교실을 가득 메우는 걸 보면 다들 이 목소리에 매료당한 모양이었다. 보통 선생님이 수업을 해도 몇 명 정도는 웅성거리기 마련인데, 아무도 떠들지 않았다.
“나는 어렸다. 하지만 나를 지배했던 가슴의 통증, 그가 유빈을 볼 때마다 느꼈던 그 죄어드는 듯한 아픔을 생각해보면, 아마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까.”
서린은 계속 읽어나갔다. <요양소 앞 바다>, 좋은 책이지… 나는 생각했다. 20년쯤 전에 나온 이 작품 원작의 드라마를 <블루>라는 제목으로 다시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도 그리운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는 책장을 넘겼다.
“왜 진작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내 가슴을 가득 메웠다. ‘사랑해요’는커녕 ‘좋아 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사랑해요. 나는 소리 내서 말해보았다. 사랑…”
아, 서린이가 손을 입에 갖다 댔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둘째는 너무나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비일상의 설정이다. 특히, 고등학생 1학년인 서린과 같은 반 남학생인 태하와 한신.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이의 관계 설정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관계망이다. 고등학생 1학년 정도이면 한 여자애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질 법한데,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질투나 소유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의 대화처럼 두 남학생은 서린을 친구로서 서로 대등하게 ‘공유’하며, 완벽하고 절묘한 우정과 애틋한 ‘사랑’의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다.
“누구 여자 친구예요?”
태현이 뜬금없이 물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얼굴을 하자, 태현이 태하의 방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누구의 여자 친구도 아니야.”
내가 말했다.
셋째는 이 소설이 그간 한국문학이 잘 다루어오지 않는 무의식이나 관념, 우울한 정신의 한 부분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엄마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증과 망상, 자주 출몰하는 환영. 애정이나 사랑, 의지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아빠와 엄마를 둔 탓에 딸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인관계 기피, 정서불안, 공황장애, 발작, 신경쇠약, 감정 표현 장애 등이 그 예이다. 엄마가 배우이기 때문에 딸은 감정표현이나 대인관계 등에 능할 것 같지만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 현실에 의해, 강하게 억압돼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나듯, 서린은 엄마의 끼를 드러낸다. 바로 엄마로부터 타고난 재능인 ‘연기’이다. 서린은 직접 엄마 앞에서 자신의 연기를 연출해보이며, 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정신분열증상의 엄마와 마침내 태어나서 최초인 내면의 소통을 하게 된다. 여전히 과거 속을 헤매며, 세월과 커버린 딸을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서린은 태어나서 엄마가 처음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서린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화자의 시점이 바뀌며 여러 사람의 내면 갈등이나 입장을 이해하게 하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 역할을 하는 태하와 이혼까지 고려 중인 부모를 둔 한신. 두 소년의 내면과 일상들 또한 현대의 가족의 의미와 부모와 자녀의 사이를 다각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청소년기 급격한 내면 변화와 그 시기만의 소중한 관계, 이들만의 투명하고 소소한 추억,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고독한 어른들의 쓸쓸한 내면. 그래서『별과 빛과 날개와 기나긴 여름』은 이 모두를 위한 한 편의 서정적인 전원 교향악이자, 외로운 각자의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잔잔한 치유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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