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은 이충섭이 누워 있는 카트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충섭의 몸에는 정맥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마취제가 주입되고 있었다. 주원과 서윤은 수술용 베드 위에 이충섭을 눕히고, 팔과 다리를 붕대로 묶었다. 그리고 서윤은 한쪽 귀 끝에서 반대편 귀 끝까지 두피를 절개한 후 피부를 얼굴에 덮고, 두개골 위에 수술용 톱을 올리고 썰기 시작했다. 뼈가 쓸릴 때마다 뼛가루가 떨어졌고, 핏물과 뼛가루는 섞여서 찐득찐득해진 상태로 바닥에 눌러 붙었다. 라텍스 장갑은 이내 땀에 젖어 서윤의 손등에 달라붙었다. 쓱싹쓱싹 뼈가 갈리는 소리와 마스크로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소리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예상보다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드디어 두개골이 쩍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주원은 베드를 접어 이충섭이 앉은 자세가 되게끔 만들었다.
“윽!!”
그 때, 갑자기 이충섭이 눈을 뜨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근육이완제를 주입했기 때문에 몸을 완전히 움직이진 못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조금씩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서윤은 이충섭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핏발선 공포와 두려움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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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오고 조명이 꺼졌다.
“선진 뇌과학 연구소 여주원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억력 향상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아이들의 기억력과 학습 능력 신장에 쓰이는 약물들이 있지만, 저희가 이번 연구에 이용할 것은 약물이 아니라 미생물입니다. 미생물 중에서도 생명의 근본 법칙이라는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에 위배되는 복제능력을 가진 프라이온입니다.”
송 교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미생물을 이용한 기억력 향상 프로젝트라고 하기에 프라이온을 떠올리긴 했었다. 프라이온이 인간의 뇌 중 기억에 관여하는 부위를 집중으로 파괴하는 것은 물론, 생체에 원래부터 존재하여 장기기억과도 관련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온과 기억력의 관계는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에릭 캔델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세로토닌이 뉴런을 반복해서 자극하면, 뉴런에 있는 CPEB 단백질이 프라이온 형태의 단백질로 변하게 됩니다. 즉, 이 감염형 프라이온이 붙어있는 뉴런에 있는 정보는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기존의 기억력 향상 약물인 리탈린과 프로비질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시키지만, 이 프로젝트는 감염형 프라이온 자체를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염형 프라이온은 다른 비감염형 프라이온들을 감염형으로 변환시킵니다. 많은 단기기억들이 신경전달물질의 자극 없이 장기기억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홀 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광우병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데, 광우병의 원인체인 프라이온을 단지 기억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몸에 직접 투여한다? 과연 이 생체실험을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누가 실험 대상자로 선택될 것인가.
“이 프라이온 투여에 있어서 공여자(Donor)와 수혜자(Recipient)의 매칭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뉴로넷을 이용해 투여 전에 공여자와 수혜자의 신경회로망을 비교하고, 겹치지 않는 부분의 뇌조직에서 프라이온을 추출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이 프라이온이 단지 기억력만 향상시키는 것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라이온은 꺼져 있는 신경회로망을 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어쩌면, 뇌사 환자의 뇌를 살려낼 수도 있는 것이죠.”
기억력 향상에서 더 나아가 뇌사자,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뜨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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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의 전두엽이 발달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고 한다. 인간의 뇌가 좌뇌가 우세하게 발달해 온 것은 다 그 이유가 있을 것. 진화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에 더 나을 것이라고 선택한 것이다...... 좌뇌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우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결국, 좌뇌가 삶을 향해 있다면, 우뇌는 죽음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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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 사람은 사랑을 불편한 감정이라 했었지. 그리고 그 불편함의 정체는 바로 욕망이라고. 서로의 시공간에 침범하고 싶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인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 섹스란 하나가 되고픈 인류의 염원을 담은 몸부림일 뿐.
_<프라이온> 본문 인용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