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는 삶, 열린 시어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교육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온 중견시인 김진경의 새 시집 『슬픔의 힘』이 출간되었다.
김진경은 교사 시인이다. 그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시 속으로 많이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늘 열린 자세로 자신의 실천과 시를 대면시켜왔고, 그런 자세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삶과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을 한층 깊은 시선으로 챙기고 어루만지는 원숙을 얻고 있는 듯하다.
김진경은 다섯번째 시집 『별빛 속에서 잠자다』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집이 파산지경에 몰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을 때 무언가를 끼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였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끼적거렸던 것 같다.”
이 진술은 김진경의 시쓰기를 포함한 글쓰기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그는 첫 시집 이래로 자아와 세계의 전면적 대결이라는 긴장된 구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에 어려 있는 풍요로운 그 무엇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아 세상을 시화(詩化)하려는 아름다운 꿈을 밀어오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 도정에서 이루어낸 한 가경(佳境)이다.
결코 비껴날 수 없는 삶에의 기투(企投)!
새 시집 『슬픔의 힘』의 전반적인 구도에는 “부재하는 삶의 진정성, 그로부터 야기되는 슬픔, 슬픔을 바탕으로 쏘아올리는 그리움의 몸짓, 그것이 마침내 닿아 불현듯이 짧게 드러나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삶의 편린들, 진정성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진정성을 흘낏 엿볼 수 있게 하는 매개들이 내재”(김상욱, ‘해설’에서)되어 있다.
시집 『슬픔의 힘』은 모두 다섯 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저마다의 선명한 빛살로 존재하고 있다. 1부의 시편들은 낮은 곳으로 깊이 침잠하는 듯한 어조와 의미의 반복과 상승으로 리듬을 획득하는 긴 호흡의 시편들을, 2부는 진정성의 편린들을, 3부와 4부는 진정성이 부재하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그에 맞서고자 하는 기투(企投)들을, 5부는 그 진정성과 직결된 빛살들을 제각기 더듬고 있다.
시집에 교차하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희망, 부정과 긍정, 회의와 확신. 이러한 이항대립의 존재는 무엇보다 그에게 80년대의 기억과 90년대의 현실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장년이 된 그에게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현실적 표정이란 비껴날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두를 여전히 품고서도, 이번 시집이 변화의 도정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전의 직설적인 단호함이 소거되었고, 그 빈자리에 정밀한 묘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대상 세계를 신랄하게 조소하던 풍자의 자리에는 결 고운 내면의 읊조림이 대신하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대상에 쏟아붓던 비판의 날카로움도 한결 누그러져 전반적인 구도 속에서 개별적인 시편들을 적절히 배치하고자 한 깊은 배려를 느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백제와당연화무늬에서 어머니의 미소를 겹쳐 떠올리거나 남자애와 살림을 차린 여중생의 무심한 눈빛에서 백제 미륵반가사유를 보고 마는 시인의 마음자리에서부터 마포 껍데기집의 첫눈 풍경에서 스러져가는 것들을 일으켜세우려는 저 서늘한 연대의 의지까지, 혹은 산길 안개 속에서 보았던 ‘그 작은 붓꽃’의 안부를 묻는 마음까지 김진경의 시는 오랜 싸움 끝의 가경(佳境)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나종영 시인의 발문은 그것의 확인이다.
저 멀리 거대한 초원을 향하여 모래사막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의 서늘한 눈빛 같은 시,
물빛처럼 맑고 별빛처럼 아름다운 영혼으로 인해
밤새워 그의 시를 읽는 내 마음이 거울 속처럼 깊고 고요하다.
―나종영(시인)
김진경(金進經)
195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과 및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양정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 투옥 후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시집 『갈문리의 아이들』(1984) 『광화문을 지나며』(1986) 『우리 시대의 예수』(1987) 『별빛 속에서 잠자다』(1996)과 장편소설 『이리』(1998), 산문집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1995) 등과 어른을 위한 동화 『은행나무 이야기』(1998) 등이 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교육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온 중견시인 김진경의 새 시집 『슬픔의 힘』이 출간되었다.
김진경은 교사 시인이다. 그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시 속으로 많이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늘 열린 자세로 자신의 실천과 시를 대면시켜왔고, 그런 자세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삶과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을 한층 깊은 시선으로 챙기고 어루만지는 원숙을 얻고 있는 듯하다.
김진경은 다섯번째 시집 『별빛 속에서 잠자다』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집이 파산지경에 몰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을 때 무언가를 끼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였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끼적거렸던 것 같다.”
이 진술은 김진경의 시쓰기를 포함한 글쓰기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그는 첫 시집 이래로 자아와 세계의 전면적 대결이라는 긴장된 구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에 어려 있는 풍요로운 그 무엇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아 세상을 시화(詩化)하려는 아름다운 꿈을 밀어오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 도정에서 이루어낸 한 가경(佳境)이다.
결코 비껴날 수 없는 삶에의 기투(企投)!
새 시집 『슬픔의 힘』의 전반적인 구도에는 “부재하는 삶의 진정성, 그로부터 야기되는 슬픔, 슬픔을 바탕으로 쏘아올리는 그리움의 몸짓, 그것이 마침내 닿아 불현듯이 짧게 드러나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삶의 편린들, 진정성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진정성을 흘낏 엿볼 수 있게 하는 매개들이 내재”(김상욱, ‘해설’에서)되어 있다.
시집 『슬픔의 힘』은 모두 다섯 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저마다의 선명한 빛살로 존재하고 있다. 1부의 시편들은 낮은 곳으로 깊이 침잠하는 듯한 어조와 의미의 반복과 상승으로 리듬을 획득하는 긴 호흡의 시편들을, 2부는 진정성의 편린들을, 3부와 4부는 진정성이 부재하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그에 맞서고자 하는 기투(企投)들을, 5부는 그 진정성과 직결된 빛살들을 제각기 더듬고 있다.
시집에 교차하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희망, 부정과 긍정, 회의와 확신. 이러한 이항대립의 존재는 무엇보다 그에게 80년대의 기억과 90년대의 현실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장년이 된 그에게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현실적 표정이란 비껴날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두를 여전히 품고서도, 이번 시집이 변화의 도정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전의 직설적인 단호함이 소거되었고, 그 빈자리에 정밀한 묘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대상 세계를 신랄하게 조소하던 풍자의 자리에는 결 고운 내면의 읊조림이 대신하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대상에 쏟아붓던 비판의 날카로움도 한결 누그러져 전반적인 구도 속에서 개별적인 시편들을 적절히 배치하고자 한 깊은 배려를 느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백제와당연화무늬에서 어머니의 미소를 겹쳐 떠올리거나 남자애와 살림을 차린 여중생의 무심한 눈빛에서 백제 미륵반가사유를 보고 마는 시인의 마음자리에서부터 마포 껍데기집의 첫눈 풍경에서 스러져가는 것들을 일으켜세우려는 저 서늘한 연대의 의지까지, 혹은 산길 안개 속에서 보았던 ‘그 작은 붓꽃’의 안부를 묻는 마음까지 김진경의 시는 오랜 싸움 끝의 가경(佳境)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나종영 시인의 발문은 그것의 확인이다.
저 멀리 거대한 초원을 향하여 모래사막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의 서늘한 눈빛 같은 시,
물빛처럼 맑고 별빛처럼 아름다운 영혼으로 인해
밤새워 그의 시를 읽는 내 마음이 거울 속처럼 깊고 고요하다.
―나종영(시인)
김진경(金進經)
195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과 및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양정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 투옥 후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시집 『갈문리의 아이들』(1984) 『광화문을 지나며』(1986) 『우리 시대의 예수』(1987) 『별빛 속에서 잠자다』(1996)과 장편소설 『이리』(1998), 산문집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1995) 등과 어른을 위한 동화 『은행나무 이야기』(199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