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명 이해 빗장을 열다
마테오 리치(1552~1610)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중국에 들어 온 최초의 서양 기독교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의 삶이 진정한 동서 문명 교류를 염원하는 시대적 열망을 탄 탓인지 새롭게 재조명받고 있다.
서양 인문주의 전통.자연과학 지식과 함께 동양의 사서삼경이 한 머리 속에 공존했던 4백년 전의 인물, 다시 말해 동양과 서양에 양다리를 걸쳤던 선구적 삶을 통해 오늘의 화두를 풀어보려는 작업이다.
리치에 대한 가장 방대한 연구서라 할 신간 [마테오 리치]는 '동서 문명 교류의 인문학 서사시'란 부제처럼 색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27년간 중국에서 살다 타계한 이탈리아 출신의 리치를 기독교 포교사란 관점을 넘어서서 바라본다.
리치라는 인물에 관한 전기물이자, 16~17세기 동서 문화 교류사로도 읽히는 이 책에서 리치는 "첫 세계인"으로 규정된다. 또 리치 이전과 이후의 동서 교류가 구분된다고 보는 저자는 리치에게서 문화 상대주의의 실마리도 발견한다.
히라카와 스케히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의 30년 역작인 9백여쪽 분량(원본은 3권)의 이 책에선 특히 "이성의 속임수"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역사철학 분야에서 많이 쓰는 용어인 이성의 속임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는 개개인이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지만 결국 그 행위가 개인이 알 수 없는 초개인적인 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다. 저자가 볼 때 초개인적 힘은 문명의 교류와 융합이다.
라틴어와 중국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복안(複眼)의 선교사" 리치는 두개의 사상과 문화를 동시에 수용하고 해석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모습이자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인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중화주의 자부심으로 가득찬 당시 중국 지식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리치는 절충적 자세를 견지했다.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우려 했다.
'논어' '맹자''대학''중용' 등 동양의 고전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던 리치는 중국 고전을 인용하며 기독교를 설명한다. 하느님을 뜻하는 천주(天主)라는 말 대신에 중국 고전의 용어인 상제(上帝)를 사용하며 유교와 기독교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책의 장점은 리치에 관한 풍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치가 로마로 보낸 보고서와 편지들을 기본 줄기로 해 '천주실의(天主實義)' '교우론(交友論)' 등 리치가 한문으로 쓴 대표작들이 해설된다.
저자는 리치가 중국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타자(他者)를 발견했고 그것을 각종 보고서와 저술을 통해 서양에 소개함으로써 "유럽문명 자체를 상대화"했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리치를 통해 동양만 서양을 접하고 개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문화는 결코 일방적 흐름이 아니다. 근대 이후 동양이 서양에 밀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양을 통해 서양 자신도 재해석되는 과정을 밟아 온 것이다. 리치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리치를 통해 기독교 유일신도 세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상대화되는 계기를 맞는다.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중국인에게 선교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교의 상제를 하느님 대신 사용했지만 이의 결과는 리치 이후 진행되는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의 사상운동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치의 중국발(發) 리포트를 읽은 서양의 지식인들은 또다른 의미의 '개화'를 했다. 중세 기독교의 폐쇄성을 비판하는데 리치가 인용된다. 저자는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볼테르 등이 기독교에 관용정신이 부족함을 비판하며 다른 문명권을 인용하는 것은 리치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이는 중국에도 적용된다. 리치의 한문 저서를 읽은 중국 지식인들이 기독교에 본격 귀의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들도 당시 중국의 사회적 폐단을 새롭게 보기 위한 방편으로 자연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리치의 견해에 귀를 기울였다.
리치가 기독교와 공통성을 발견한 유학은 주자학이 아니라 공자시대의 유학이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주자학이 과거시험 과목이 된 후 유학 본래의 도덕적 실천성을 상실한 점을 비판하는 당시 지성계의 분위기를 꿰뚫어본 리치의 순발력과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제의 폐단을 비판하는 당시 중국 지식인들과 달리 '시험에 의한 관리 등용'을 체험해 보지 못한 리치가 과거제의 우수성을 찬양한다는 점이다. 문화란 보는 이의 관점에서 얼마나 새롭고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고 상세한 소제목에서 관심있는 부분부터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리치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접했다면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도 참고할 만하다.
국내의 연구도 활발하다. 신뢰할 만한 '천주실의' 번역본(서울대출판부)이 중견학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최근 선보였다.
또 정약용 등 실학자의 사상에 미친 리치의 영향이 집중 연구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삶이 수백년 전의 '세계인'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와 문명을 조명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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