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말로는 구체적인 언어형태를 가지고 있든 없든 시라는 한 개의 말로 부르고 있지만, 영어나 불어에서는 편리하게 두 개의 말로 구별해서 부른다.
즉 '포엠'과 '포에트리' 혹은 '포에지'가 그것이다. 일정한 언어형태에 그것이 담김으로써 한 편의 시가 되는 개념상의 실질, 혹은 내용이 '포에트리'나 '포에지'요, 이에 대해서 그것이 구체적인 언어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하면 일정한 언어 형태 속에 그것이 담긴 것, 즉 개개의 시작품이 '포엠'이다.
따라서 '포엠'은 객관적으로 펜을 들고 종이 위에 문자를 쓰기 시작하는데서시작하며, '포에트poet' 즉 '시인'이라는 것은 비교적 '포엠'을 잘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을 '스포츠맨'이라고 부르듯이 부르는 명칭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라는 것은 운동선수나 마찬가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운동선수가 이른바 어깨 노릇을 하고 다닌다면 인간적으로 팬들의 인기를 잃게 될 수 있듯이,시인도 그의 인간적 결함으로써 독자들의 실망 내지 경멸을 살 수 있다.
허나, 일반적으로 기능과 인간을 우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현대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운동선수가 대체로 건강하고 민활하듯이 시인도 비교적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며 민감하고 순수해야 되리라. 운동선수에게 '스포츠맨 십'이 있듯이 시인이라면 그에게는 특유한 '워크맨 십'이 있을 것이며,거기서 시인이라는 인간형의 공통적인 특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 시인이라는 것이 이천 년이나 혹은 그 이상의 오랜 동안 필요 이상으로 경외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왈, 시인은 천래의 것이니, 예언자니, 무공인의 입법자니 운운. 허기야 이러한 관념이 실상은 앞서 말한 팬들의 사랑 이상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허황한 관념은 현대시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으며, 시를 현대적으로 생각하는 데는 우선 이러한 허망의 베일을 걷어치우는 것이 중요하고도 손쉬운 출발이 되는 것이다.
고대 희랍 사람들은 시인을 '제작하는 사람', 시를 '제작된 것' 이라는 말로써 불렀다. 이것이 '포에티' 니 '포엠' 이라는 서구어의 어원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시를 '힘찬 정감의 유로' 로 보기보다는 의식적인 작업으로 보고, 정념에 대한 기교의 우위를 주장하는 등의 현대시에 있어서의 관념과 태도가 그것이다.
-박남수 선생님의 강의 중..필기한 것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