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의 계절에
수요일 아침 6시에서 10시
우리아파트 재활용 분리배출 시간입니다.
어느덧 은퇴한 남자들의 의무가 되었다는 일.
부스스한 반백의 머리, 츄리닝 차림의 아저씨가
한 아름 들고 온 도자기 그릇들
종이, 플라스틱, 캔, 유리병, 스티로폼
어느 곳에도 낄 데가 없는데
“사장님, 그것들은 종량제봉투에 버리셔야 합니다.”
외국계 어느 은행에 근무했었다던가.
경로당에도 도서관에도, 공원에도 어울리지 않은
아직은 쓸 만한 나이
재활용이 되지 않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백자그릇들을
다시 안고 돌아서는
그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
명예퇴직자.
잎샘바람에 웅크리고 걸어가는 아저씨의 등 뒤로
몇 번씩 재활용을 하고 있는
나이 든 청소부 아주머니의 비질이 서글프다.
밤새
함지에서 목욕하고 나온 말간 태양을 향해
버선 코 닮은 목련 꽃봉오리들이
새물새물 웃고 있다.
깍두기 아저씨들의 머리처럼 정돈된 네모난 울타리
노란 개나리 종소리도 시끄럽다.
눈만 흘겨도 티밥처럼 터질 것 같은 벚꽃도
가지마다 더넘스런 봉오리 그득하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 재활용걱정이 없잖아
내년에도 필 테니까”
상춘; 봄을 즐김. 새물새물; 자꾸 웃는 모양. 더넘스럽다;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