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보름이
정월대보름 하루 전 늦은 오후
어쩌다 혼자 있게 된 짧은 시간. 망중한의 즐거움.
산책길에 나섰죠.
덩굴장미 울타리를 벗어나서부터일까
좀 덩치가 있는 요키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길래
만져주니까 가만히 있네요.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도 아무도 주인이 아니라네요.
아직 짧은 겨울 해 뚝뚝 떨어지는 기온
그냥 둘 수 없어 안고 캡스상황실(경비실)에 데리고 갔죠.
우선 물부터 주고 마켓에서 스팸 한 덩이 사다 먹이고
보름에 만났다고 보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죠.
동물보호센터 구조팀 아저씨에게 그 녀석을 넘겨주고 들은 말
홈페이지에 일주일 유기견 공고, 주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이주일 입양공고, 이어 4대 질병검사에 한 가지라도 걸려 있으면
안락사를 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일곱 살까지 살게 한다네요.
안락사라는 말에 도로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 게 낫겠다하니
밤에 얼어 죽는다고 안 된다고 하데요.
조금 아까 열어본 홈페이지, 보름이는 아직 공고중...
유기견 사진이 참 많기도 하데요.
한 시간 남짓한 인연
어쩌자고 나를 따라와서
부지깽이도 춤춘다는 가을처럼 바쁜 날들 속에서도
내 머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녀석의 눈동자.
예쁜 옷까지 얻어 입었던 보름이는 왜 떨꺼둥이가 되었을까?
새 봄엔
지구를 따라다니는 달처럼
달을 데리고 다니는 지구처럼
늘 변하지 않는 관계를 꿈꾸고 싶다.
요키; 요크샤테리어 잡종
떨꺼둥이; 의지하고 살 던 곳에서 쫓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