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속에선 >
사방은 겨울을 터질 듯 압축해놓은
무거운 함박눈 송이들이 쌓이고 있었다.
돌이켜 보기엔 너무도 버거운. 나 걸어온 뒤안길엔
내리는 눈 들이 아지랑이 처럼 고요한 속삭임으로
쌓인 눈 들은 아지랑이 처럼 울렁대며 요동치는 뜨거움으로.
어찌보면 나의 비겁함들이 내리고, 쌓이고 있었다.
매 순간을 내 가슴 밑바닥까지 헐벗어 부딪혔더라면
나리는 눈 속에서. 이 서늘한 고요에서.
비틀대는 몸짓 속으로 '나 왕년에' 를 외쳐대는
서글픈 중년의 빛 바랜 신화처럼
첫 사랑을 울부 짖고 있진 않겠지.
뺨 언저리엔 찬 바람이
그녀의 키스자국을 메만지고 지나버려
뜨겁던 잔상이 남아있던 내 볼은
잊었노라. 속여오던 그것들이 들켜버려
붉게 달아올라 새하얀 사막 속 장미 한 송이 처럼
모든 것 들을 백(白)의 세상에 고해성사 하고 말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히 눈만 쌓이고 있어
더 무거운 그리움들이 온 몸에 젖어드는 이겨울, 눈 속에 선 나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