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판타지 세계관 풍으로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똑, 똑
"그 인간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당연하지. 세이렌 최고의 신성력을 가진 의사 세바스찬이 내일까진 정신을 못차릴 거랬잖아? 후후"
"그치만 빠르면 오늘 정신을 차릴지도 몰라. 이자는 몸이 아주 튼튼해 보이니까 말야."
"괜찮아. 내가 내일 육지로 데려다 줄 건데 뭐. 이자는 우리를 보지도 못했으니, 흔히 인간들이 그런다는 것처럼 신의 가호를 받았다,라고 생각하겠지 뭐."
"큭큭, 그럼 우리가 신이 되는 거냐?"
"그건 그렇네? 후후"
에리얼이 그를 구한지도 오늘로써 일주일 째였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 피가 철철 나는 것을 에리얼이 이 동굴로 옮긴 것이었다. 이제 대충 치료가 되어 위험한 고비는 넘겼기에, 세바스찬의 생각대로 바티칸 상회가 한달에 한번씩 운항하는 크로노스 국 해안에다 데려다 놓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에리얼의 병간호는 극진했다. 거의 하루종일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좋다는 물풀은 모조리 뜯어다가 먹였다. 그리고 밤엔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 주었다. 보통 세이렌의 노래는 다크 세이렌들과는 다르게 치료의 힘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그가 이처럼 빠른 회복을 보인 것엔 에리얼의 노래도 한 몫 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에리얼..저 잔, 너의 무엇이지? 네 노래..나에겐 한 번도 불러 주지 않은, 애틋한 마음이 담긴 네 노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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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대는 파도를 타고 들어온 해안에는 다행이 아무도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수색대도 아직 나오지 않은 듯 했다. 에리얼은 이름도 모르는 그를 조심스레 모래위에 뉘였다. 눈 한번 마주쳐 본 적 없고, 말 한마디 나눠 본적 없지만 일주일동안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그에 대한 감정은 동경을 넘어선 듯 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감정은 동경이었다. 자신은 생소하기만 한 바깥세계의 멋있는 인간, 바다를 사랑할 줄 아는 인간, 아름다운 하프선율을 그련내는 인간... 하지만 일년이 지나고, 곁에서 지켜 보면서 어느새 그 감정은 조금씩 자라, 이제 다시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떤 목소린지도 모르겠죠? 내 노래도 듣질 못했겠죠? 나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는 시간조차... 기억에 없을 테지요?"
그의 눈가가 살짝 떨렸으나, 에리얼은 알지채지 못하고선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살짝 스다듬어 보았다.
"내가 지금 가버리면, 당신은 약혼녀와 결혼할 테고, 난 세바스찬과 결혼하겠죠. 여전히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 존재를 모를 거고요. 만약...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아채길 바란다면, 날 기억하길 바란다면..."
에리얼의 뺨위로 두줄기 눈물이 흘렀다. 생전 처음흘린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또르르 굴러 그의 이마에 떨어졌다.
"하아- 그건 내 욕심이겠죠? 후후.. ...에.리.얼. 내 이름이에요.. 이거라도 알아줄래요? 이 단어만이라도, 기억해 줄래요?"
에리얼은 검지손가락으로 모래위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한자 또박또박하게 썼다. 하지만 이 자가 깨어날 때 쯤이면 이미 파도에 씻겨가 버렸으리라.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에리엘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이 인간에게 전하고 싶었다.
"안녕. 바보 인간"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쓰윽 훔친 에리얼은 뒤돌아보지 않고 바다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다속 깊이 들어가 에리얼이 보이지 않자, 이제껏 가만히 누워 있던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따가운 햇살에 눈을 찌푸리던 그의 입술 사이로 그에겐 낯서나 낯설지 않은 한 단어가 새어나왔다.
"에..리얼, 에리얼.."
그리곤 그는 힘겹게 뜬 눈을 다시 감으며 의식의 끈을 놓쳤다. 전보다 조금 큰 파도가 덮쳐와 그 물결이 남자의 어깨정도까지 밀려와 에리얼이란 이름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 이름은 모래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깊이 새겨져 있기에 상관 없었다. 파도가 아닌 해일이 덮쳐와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깊이 가슴속에 새겨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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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에리얼을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 세바스찬, 지금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야?"
에리얼의 방만큼이나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어딘가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방. 그 방에는 시종들을 물려 다크 세이렌의 수장 피에나와 세바스찬만이 있었다.
"에리얼을 살리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안그럼.. 에리얼은 죽어. 크윽."
잇사이로 낮은 신음성을 낸 세바스찬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인간을 크로노스 국의 해안에 데려다 준 뒤로 에리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선은 항상 카이논 쪽을 향한 채 멍했고, 물풀도 아무것도 입에 대질 않았다.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고, 어쩌다 대답을 하면 온통 그의 이야기로 횡설수설했다. 벌써 그런채로 20여일이 지났다. 이젠 뼈에 살가죽만 붙은 것 같이 야위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래서 세바스찬이 선택한 것이 피에나에게 부탁하는 것이였다.
피에나는 다크 세이렌이지만 자신과 어릴 적부터 남몰래 친구로 지내왔다. 아직 어린 나이로 수장직을 무리없이 이어받았을 만큼(다크세이렌은 실력위주다) 흑마법에 능통했기에 인간이 될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세바스찬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친구사이라 이런말 하기가 좀 거북했던 탓이다.
"대가가 필요해? 좋아, 뭘 원하는데? 플라톤님께 말씀드리면 왠만한건 다 들어주실 거다."
"필요없어. 난 단지 내 흥미만 충족시키면 되니까. 그게 대가라면 대가랄까? 인간을 사랑한 세이렌, 전부터 내 흥미를 자극했던 소재거든. 근데 넌 에리얼을 이렇게 놓쳐버릴 거야? 그 둔팅이는 몰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잖아. 네가 에리얼 무진장 좋아하는 거. 인간이 된다는 건 널 떠나 그에게로 간다는 건데.. "
"알아. 하지만 걘 날 친구로밖에 보질 않는걸. 그렇다면 그냥 친구로 남을래.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흐음, 좋아! 이 내가 사랑의 챠밍(사랑과 미의 여신 그레이스 챠미아네의 개인 천족. 로마 신화의 큐피트)이 되어 주지. 에리얼은 인간이 되겠지만 결국은 그를 떠나 네게로 돌아올 거야."
"어떻게..?"
"아무리 에리얼이라도.. 죽은 시신 붙잡고 천년만년 인간으로 남아있겠어? 그 인간이 죽으면 에리얼은 다시 돌아올 거야. ...네게로. 쿡쿡, 인간이 되는 약은 에리얼을 네것으로 만들 챠밍의 화살이 될 거야."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방, 그것보다 더 어두운 계획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한 세이렌의 장난 속에, 한 세이렌의 사랑 속에.
"세바스찬, 그거 알아? 챠밍의 화살은 두 개라는 거. 사랑의 화살 하나, 나머지 하나는..."
멀어져가는 세바스찬의 등뒤로, 굳은 얼굴로 뒤틀린 웃음을 짓는 피에나의 독백이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에리얼의 가슴에 박힐 이별의 화살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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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 베드니스 이블이시여, 여기 태초의 운명을 거부하는 이가 있나니, 그 율법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당신의 피로 윤회의 사슬을 끊고 새 삶을 살려고 하나니, 그 피는 족쇠가 될 지라. 당신께 재물로 이후의 영혼을 바치나니 그것이 제약이 되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사랑하는 이의 핏방울은 붉나니 그들을 걸고 당신과 계약을 하렵니다...."
여러명이 있음에도 세바스찬의 주문 외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에리얼의 방. 에리얼이 인간을 사랑하게 됐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엔 놀라 대경실색 했지만 다 죽어가는 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되어 떠나는 것을 허락한 플라톤의 심정은 착찹하기만 했다. 처음 세바스찬이 인간이 되는 마법을 알아냈다는 말을 했을 때, 에리얼은 그와 헤어진 뒤 처음으로 눈에 생기를 띄었다. 의술에 특히나 밝았지만 이런 마법쪽의 조예도 깊은 세바스찬이었던 지라, 며칠 동안 그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 방법을 찾고자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실은 피에나에게 강습받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이윽고 주문을 외우기 전 미리 말해둔 대로 가족들의 피를 한 방울씩 들고있던 병에 넣었다. 주둥이가 가늘고 길며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작은 병이었는데, 피를 넣을 때 마다 투명하던 액체가 조금씩 붉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에리얼의 피를 세바스찬의 주문과 함께 병 속에 떨어뜨리자 이때까지 붉었던 액체에 들어간 붉은 피가 갑자기 검은 색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잠시후 병 속의 액체는 기분나쁜 검붉은 색이 되었다. 누가 보던지간에 흑마술에 쓰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꿀꺽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속에 액체가 에리얼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눈을 꼭 감고 삼킨 에리얼은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이내 스르르 스러져 세바스찬의 팔 안에 안기게 되었다.
"이제 한시간 후면 인간으로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원래 베드니스 이블 님께서 제 주문에 응답하셨다면 마지막 에리얼의 피에서 완전한 검은색이 되어서야 할 텐데, 검붉은 색이 되다니... 아무튼 전 에리얼을 육지로 데려다 주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주술을 받게 될 자의 피가 들어갔을 때 액체의 색은 마신이 이들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의미한다. 변화없이 그대로 붉은 색이라면 거절, 검은색이라면 승낙. 하지만 검붉은 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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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글을 길게 늘여쓰는 편인데(별로 좋지 않은 버릇이죠. 아직 초보라 그런가봐요.) 이 글은 최대한 줄였습니다. 자르고 자르고 토막내서 올려도 이정도죠.
다른 곳에 올린 글인데, 외전으로 나온 거라 지면(이라고 하긴 이상한데... 아무튼^^;;)을 많이 할당할 수 없었거든요.
재미있게 읽으시고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